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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살다 별 황송한 일을 다 겪는다. 지금껏 살면서 국가로부터 받은 우편물이라고는 세금 내라는 쪽지가 전부였던 것 같은데 최근 한 달 새 색다른 우편물을 벌써 세 번째 받았다.

세종시정부지원협의회에서 보낸 두 번의 홍보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가장 압권은 11일 날아온 정운찬 국무총리님의 장문의 편지다. 하늘같은 총리께서 우리네 군민들에게 이처럼 긴 장문의 편지를 보내시다니 황송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총리께서는 교수 출신이라 그런지 편지 내용도 어찌나 구구절절하던지 하마터면 '뜻대로 하셔야지요' 하는 마음이 들 뻔했다.

연기군 지역 각 가정으로 배달된 정운찬 총리의 편지.
 연기군 지역 각 가정으로 배달된 정운찬 총리의 편지.
ⓒ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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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군민이라면 누구나 다 받았을 테지만 그 내용을 조금 소개해보자.

총리께서는 가난을 면해보려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고향땅을 떠나서 그런지 설날 무렵이면 고향이 간절히 그리워진다고 우리네 감성을 자극했다. 이어서 혹독했던 타향생활의 아픔을 회상하며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들 생각에 앞만 보고 달려온 부모님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세계 아홉 번째 수출대국이 되었다고 했다.

이런 서두를 꺼내신 이유가 다 있다. 총리께서는 국무총리로 지명되던 날 다짐한 바가 있다는데 '경제를 되살리고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곳에 먼저 다가가겠다'는 것이란다. 그래서 우리 세종시를 사람과 돈이 몰려드는 21세기형 경제도시로 만들려는 깊은 뜻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총리께서는 "뭐가 됐든 싸게 싸게(빨리 빨리) 만들라"고 당부하는 고향어른들을 뵈면 세상 뜨신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다시 한 번 가슴을 울리셨다. 그러면서 세종시를 설계하는 동안 "백성들에게는 밥이 하늘(食爲民天)"이라는 세종대왕의 가르침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도 하셨다.  마치 세종대왕과 정 총리가 세종시 건설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감성 자극하는 총리의 편지

이어지는 총리의 설명은 참으로 간절하게 느껴진다. 가난의 고리를 끊는 가장 확실한 길은 인재를 키우고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라며 인재양성과 과학기술이 선진국가와 일류국가로 가는 디딤돌이요 도약대라고 설명하며 세종시에는 유치원부터 명문대학까지 140개가 넘는 교육기관이 문을 연다고 소개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세종시 원안에는 교육기관이 안 들어서는 줄로 알 것 같다. 또 세계적 과학기술센터가 세워져 대를 물려가며 먹고 살 '기적의 쌀'을 만들며 '미래의 쌀로 밥을 지어 대한민국을 풍요롭게 해줄' 최첨단 기업들도 들어온다고 비유적 표현까지 멋지게 쓰셨다.

총리께서는 또 지금 우리에게는 인구가 늘지 않는 행정도시가 아니라 활기찬 경제도시가 필요하다며 2020년 모든 계획이 마무리되면 25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 충청도가 변할 것이라고 설득에 나섰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는 "왜 충청도에만 특혜를 몰아주냐"고 항의하는데 충청도에서는 세종시 발전안에 대해 비판이 적지 않아 안타깝다고 심경을 고백하셨다.

이어서 약속이나 신뢰가 소중한 가치이고 자신도 약속을 생명으로 여겨온 사람이지만 국가대사를 맡은 자로서 개인의 명예보다 국민 행복이 우선한다는 게 또한 소신이라고 밝히셨다. 정치적 약속 때문에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고도 하시며 오늘 돌을 맞더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게 책임있는 공직자의 자세라는 입장을 밝히셨다.

총리께서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온 5천만 국민이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추켜세우시며 충절의 고장, 충청의 후예들로서 '금강의 기적'을 창조하는 데 다시 한번 깃발을 들어달라고 호소하셨다. 세종시의 보람을 전 국민들과 고루 나눌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는 말씀도 남기셨다.

길고 긴 편지 대신, 원안추진을 해주시지요

세종시 수정안에 협조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장문의 편지.
 세종시 수정안에 협조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장문의 편지.
ⓒ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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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총리님의 편지를 읽고 나니 '참으로 많이 고심하고 계시는 구나'하는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직접 쓴 것은 아닐지라도 일국의 총리가 시골 마을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낸 일이 우리 역사상 과연 또 있었을까 생각하니 안쓰러움이 더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교수님처럼 주민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는 구구절절 긴 편지가 아닌 당초 약속대로 해주겠다는 말 한마디라는 사실은 모르시는 걸까? 우리 군민들의 마음 하나 헤아리지 못하고 쓸데없는 데 힘을 빼시다니, 시간도 아깝고 집집마다 배달된 우편물의 발송비용도 아깝기만 했다. 수정안을 발표하고 한 달 동안 쓴 홍보비용만 해도 수십 억 원에 이른다고 하는데 정부가 몸이 달긴 단 모양이다.

그래도 직접 편지까지 보내는 것을 보면 군민들과 충청인들이 수정안을 반대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아시는 것 같다.  그래서 총리님께 연기주민을 대신해 답장성격의 간절한 바람을 전하고 싶다.

"총리님, 현실을 아신다면 제발 수정안을 거두어주시옵소서. 마음 편히 설 명절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태그:#세종시,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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