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배우와 소통의 거리가 더욱 가까운 소극장
▲ 마방진 소극장 가는 길목 배우와 소통의 거리가 더욱 가까운 소극장
ⓒ 김경미

관련사진보기


낭만유랑단이 히가시 켄지 작 <뼈의 노래>(마방진 소극장, 4.15~5.8)를 무대에 올리면서 관객에게 '옛 풍습과 현실의 뒤섞임'을 한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이 작품은 2007년 아시아연극연출가 워크숍을 통해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올해 극공작소 마방진이 선정한 2011 최고의 기대주 중의 한 극단인 낭만유랑단에서 <뼈의 노래>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작품의 기본 틀은 오래된 풍습으로 대표되는 완고한 뼈세공기술자 아버지(김병철 연기)와 새로운 문화로 대표되는 큰 딸 카오루(남정원 연기), 그 사이에서 충돌하며 아픈 둘째 딸 시오리(송경화 연기)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네 가족의 모습을 투영시켜 보여준다.

첫 장면은 큰딸 카오루와 시오리가 죽은 엄마와 이별하는 '죽음'에서 시작한다. 죽음이 가득한 무대 위에는 아버지가 아픈 엄마를 돌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카오루의 분노가 흘러넘친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뼈로 세공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가 고집하는 것은 센보마을의 풍습과 전설을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아버지가 포기하지 못하는 마을의 전설은 이렇다. 사람이 죽으면 바다가 보이는 산에 묻고 그 주위를 바람개비로 꾸민다. 시간이 흐른 후 뼈를 파내 거기에 조각을 하고 간직하는 기묘한 풍습이다.

큰딸 카오루는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뼈세공을 하겠다고 말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카오루와 아버지 사이에 소통되지 않는 이야기가 오고 가는 사이, 둘째딸 시오리가 가지고 놀던 바람개비에 사고를 당한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엄마의 죽음과 동시에 일어난 것이다. 삶이라는 하나의 틀이 존재하지만 그 안에 죽음이 소용돌이친다.

소극장 앞 마당에 만들어져 있다.
▲ 뼈의노래 포스터로 만든 바람개비 소극장 앞 마당에 만들어져 있다.
ⓒ 김경미

관련사진보기


죽어야만 볼 수 있는 뼈

아버지는 유일무이하게 마을에서 인정받는 뼈세공기술자다. 살아 있지만 죽음을 다루는 장의사 같은 역할이다. 죽은 사람들이나 마을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환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직업 때문에 큰딸 카오루는 진저리가 나서 18년이라는 시간을 떠나 지냈다. 카오루는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동생 시오리가 고향으로 왔기 때문에 다시 데려가려고 돌아왔다. 그런데 아픈 둘째 시오리가 자신의 뼈를 죽으면 세공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유언장과도 같은 말이다.

여전히 그녀에게 고향은 정붙이기 어려운 곳이다.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지만 서로 소통이 안 된다. 아버지와 집은 그대로지만 고향조차도 시대를 쫓아 변해간다. 관광마을로 바뀌는 중이라 에뮤 마을과 같은 새로운 상품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과 현재의 뒤섞인 변화

밝고 쾌활했던 둘째 딸 시오리는 자주 기억을 잊어버린다. 18년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시오리는 실명한 왼쪽 귀에서 자주 '뼈의 노래'가 들려 괴롭다. 시오리에게 변화란 존재는 의도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빼앗아갔다. 그녀는 쉴 새 없이 뼈의 노래에 귀 기울이면서, 에뮤의 환영에 시달린다. 그리고 쓰러진다. 사랑하는 딸 때문에 아버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시오리의 환영에 맞춰 광대 짓을 해야 했고, 아무것도 보이진 않지만 동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동화되어가는 카오루의 모습을 담아낸다.

변화는 아픔을 수반한다. 시오리 때문에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아버지와 큰딸은 서로를 수용한다. 일단 카오루는 어렸을 때부터 잘 만들지 못했던 바람개비를 동생을 위해 천 개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실력이 늘었다. 가족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아내가 아팠을 때는 아무것도 못해주었지만 시오리를 살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애쓴다. 죽은 아내를 많이 닮은 딸이기에 더욱 마음이 애틋하다.

하지만 끝내 변화는 멈추고 만다. 세 명의 가족은 더는 못하겠다는 아버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뭐하는 거냐는 큰딸의 소리 그리고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환영에 지쳐버린다.

결국 시오리는 뼈의 노래에서 누누이 이야기했던 규센보의 신기루를 보기 위해 죽음에 몸을 맡겨버린다. 그러므로 세 가족의 변화는 끝이 난다. 옥상에 올라간 시오리가 죽음을 맞는 순간, 없다고 믿었던 신기루를 큰 딸과 아버지는 함께 보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신기루를 함께 본 아버지와 큰 딸은 서로에게 미래를 의지한다. 아버지는 큰 딸 카오루에게 자신보다 더 오래 살아달라고 당부한다. 그 말에 큰 딸은 눈물을 꾹 참으며 그러겠다고 다짐한다. 풍습이나 전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존재하지만 지키지 못할 뿐인 것이다. 전통이 없으면 현대도 의미가 없다. 현대가 있어도 전통이 없으면 그것 또한 힘이 없다. 전통과 현대는 적절한 조화 속에서 융화되어 가야 한다.

바람개비 다르게 보기
▲ 뼈의노래 중요한 모티브 바람개비 다르게 보기
ⓒ 김경미

관련사진보기


바람이 없으면 쓸모없는 바람개비 

무언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람개비와 바람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공연에서 '바람이 죽었다' 거나 '에뮤가 바람개비를 갉아먹는다는 문장을 던져준다. 그러한 대사 속에서 현실이 풍습을 끊임없이 덮치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것을 지켜내려는 인간의 고군분투가 힘겹다.

시오리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아버지와 카오루는 천 개의 바람개비를 만든다. 천 개의 바람개비는 신기루가 나타나면 모든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고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전설을 향한 마지막 희망 때문이다. 뼈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오리는 매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같은 이야기를 아버지와 언니에게 이야기한다.

바람과 바람개비는 함께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그런 것처럼 아버지, 시오리, 카오루도 소통하지 못하는 부재의 아픔이 있지만 그것을 격한 싸움으로 함께 넘고 또 넘을 뿐이다. 가족이 언제나 행복할 순 없다. 공연 도중에 눈물을 보이는 관객이 있었다. 소통하지 못하는 가족의 모습에서 아픔을 투영해서 봤을지도 모른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연극에서 계속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경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연극뼈의노래, #공연, #마방진소극장, #낭만유랑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쓰는사람. 프로젝트 하루5문장쓰기 5,6기 진행자. 공동육아어린이집 2년차 워킹맘.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