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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우리 사회의 화두는 '김진숙' 씨였다. 적어도 물 폭탄이 쏟아지기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희망버스와 같은 응원들은 여러 갈래로 더 진화할 것 같다.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는 후마니타스에서 펴낸 <소금꽃나무>에 잘 나와 있다. 말을 꾸미거나 포장하는 것 없이 손가는 대로 써내려간 게 특색이다.

 

술술 읽히는 가운데도 계속 맴도는 단어가 있었다. '소금꽃', '개밥', '박근혜 씨'가 그것. 그녀가 속한 용접공들은 55도가 넘는 여름철에도 온 몸에 불똥을 뒤집어 썼고, 손톱 밑과 등허리까지 차오르는 소금꽃을 벅벅 문질러가면서 일을 했다. 생존권 때문에 몸담긴 했지만, 1986년의 개밥거부 운동 때부터 권리투쟁을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멀리서 바라 보는 나로서는 그런 눈짐작이 간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원하는 수준만큼 회사가 그것을 들어주지 않는 까닭에. 더욱이 1980년 즈음에는 공돌이 공순이들이 모두 개밥에 도토리 수준이었다. 그 당시 서울서 공순이로 살던 내 누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박근혜 씨에게 공개편지를 띄웠던 걸까? 그 역시 뻔한 게 아닐까. 차기 대통령 감이니까. 하여 박근혜씨가 바라보는 이상 사회와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 사회를 대비해 주려고 쓴 것일 터다. 진짜 대통령에 오르면 노동자들을 위한 공공선을 베풀도록 당부하고자.

 

"한 겨울에도 치마 입고 '빨각다리'로 궁궐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공주님한테야 장외에서의 장장 한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오? 대권이 걸린 일이라 사나흘 만에 접기 뻘쭘하면, 그건 어떻겠소? 눈만 내 놓은 채 천원짜리 장갑 하나를 팔기 위해 혹은 배 추 한 포기를 팔기 위해 또는 신발 한 켤레를 팔기 위해 간절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어 보는 건, 그건 어떻겠소? 근혜 씨도 이 나라에서 예순 번 가까운 겨울을 지내면서 적어도 살을 에는 추위가 어떤지는 겪어 봐야 하지 않겠소."(206쪽)

 

그녀를 지지하던 뜨거운 열기가 지금은 잠시 식었다. 서울과 지방 곳곳에 물 폭탄이 쏟아진 까닭에. 그런데 그녀를 향한 비난도 무차별로 쏟아지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한진중공업 '소금꽃나무' 김진숙이 드리는 글> 아래에 쓴 댓글들이 그렇다. 그녀를 '미친 개'에 빗대기도 하고, 노사합의를 무시한 무단점거가 부산시민들에게 피해가 된다고 하고, 그녀의 행위를 친북좌파 색깔론으로 몰아붙이는 이들도 있다. 참 가관이다.

 

왜 그들이 쏟아붓는 견해를 내가 곱씹는 걸까? 그건 고바야시 마사야의 <정의 사회의 조건> 때문이다. 그녀가 쓴<소금꽃나무>를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한 '정의론'에 기초하여, 우리 사회가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지 생각해 보고자 하는 뜻에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사람들은 그가 주장한 정의사회를 알고 있다.

 

그건 공리주의 사회만도, 자유시장 사회만도 아니다. 그는 '공동선을 고민하는 사회'라야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회라고 했다. 그에게는 공리주의든 자유시장 사회든 단점이 있었다. 공리주의는 정의와 권리가 원칙이 아닌 계산에 치우칠 수 있고, 인간의 행위 가치를 도량형으로 환산하는 획일화를 범할 수 있기 때문. 자유시장 사회는 자유 이론으로 첫 번째 것을 해결한다지만, 둘째 것은 해결하지 못하는 치명타가 있다고 했다.

 

고바야시 마사야도 바로 그 점 때문에, 마이클 샌델이 품고 있는 것은 '공동체주의적인 공공철학'이라고 풀어 썼다. 그걸 동양철학으로 말하면 유교의 공동체주의적인 공공철학, 곧 '인,의,예,지,신'에 해당된다. 그러니 생각해 봐야 한다. 김진숙의 타워 크레인 농성이 공리주의 사회나 자유시장 사회의 잣대로 딱 자를 수 있는 것인지. 그녀의 몸부림치는 행위로 우리사회의 근로자들이 나아진다면, 우리는 좀더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공동체주의적 공공선을 고민하는 사회인 까닭에. 김진숙씨 같은 노동자를 위해 공공선을 베푸는 사회라야 진정 정의로운 사회이지 않을까?

 

"샌델은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공공체와 공동선을 더욱 중시한다. 단, 이 공동체의 공동선은 개인의 자유나 권리에 대한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와 타자에게 공통적으로 좋은 것(선)으로서 인간이 도덕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적이다."(383쪽)


소금꽃 나무

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2007)


태그:#정의로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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