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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씨가 지난 3일 81년의 삶을 마감하고 아들 전태일 곁으로 가셨습니다.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어머니 이소선'을 추모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

어머니, 가십니까? 가십시오. 더 붙들 수가 없습니다. 눈도 못 뜨고 말도 못하시면서 48일간 버티셨으니, 어떻게 더 계시라고 붙들 수가 있겠습니까? 이만큼이나 버티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어머니께서 살아오신 삶을 생각하며 많은 것을 깨닫도록 해주셨으니, 더 계셔 달라고 매달릴 수가 없습니다.

약속 120% 지켰으니 기쁜 마음으로 만나실 겁니다

어머니, 잘 살아오셨고, 많은 것을 이루셨고 많은 것을 남기셨습니다. 무엇보다 아들 전태일과의 약속을 120% 지켰으니, 하늘나라에서 전태일을 기쁜 마음으로 만나실 겁니다.

노동운동의 노자도 꺼내기 힘들던 시절, 아들의 시신 인수까지 거부하면서 마침내 민주노동운동의 초석이 된 청계피복노조를 건설해냈습니다. 그 후 청계피복노조는 노동운동의 보루만 된 게 아니라 이 나라 민주화운동의 견인차가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어머니께서 하신 역할이 얼마나 큰가는 세상이 알고 있는 바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비약적 발전은 마침내 민주노총의 건설에 이르렀으니, 한 시대의 완성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어머니의 삶과 투쟁과 헌신을 어떻게 노동운동의 발전만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결국 어머니는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서 인간적인 정을 나누면서 사는 세상'을 이루고자 한 전태일의 뜻 곧 인간해방운동의 초석을 놓은 것입니다. 청계천에 세워진 전태일 동상이 인간해방운동의 영원한 횃불이 된 것이야말로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공적이요 교훈이 될 것입니다.

어머니,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어머니가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시려고 하니 한편으론 믿기지 않으면서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제일감은 '너무 고생하셨구나' 하는 겁니다. 어머니,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투쟁과 투옥과 고문으로 인한 고난도 엄청났지만 가난과 질병과 고뇌로 인한 고생도 엄청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참고 이기면서 뜻한 바를 온전히 이루셨으니,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주신 크나큰 교훈입니다.

어머니께서는 해방된 삶을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삶과 사랑과 생각과 공적을 비교적 잘 아는 사람으로서 어머니의 삶이 주는 교훈을 정리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난에 찬 삶에서 사랑을 얻고,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함으로써 지혜를 얻으며,

그 사랑과 지혜를 통해

참된 자유, 참된 평화 곧 해방된 삶을 얻는다는 것.

어머니! 그렇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참된 자유, 참된 평화 곧 해방된 삶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살아계실 때 '우리들은 고생도 많이 했지만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사랑을 받았으니 말이요'라고 거듭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그 고마운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걸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어머니! 70년대 중반 엄혹한 시절 제가 쫓기는 몸일 때도 우리들 몇 사람이 만나 삼립 빵 몇 개와 사이다 한 병을 놓고서 엄청난 행복을 느꼈던 우리들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신 일은 한 아들을 잃고서 수천수만의 아들과 딸을 얻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성경의 사도처럼 전태일 정신을 선양하는 데만 선구적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효도를 해왔으니, 이것 같이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그리고 청계의 아들딸들은 지금 상주노릇을 하고 있으니 무슨 말을 더 보탤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수천수만의 아들 딸을 얻으셨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맥박이 멈추고 호흡까지 멈추었을 때의 너무도 편안한 모습을 보면서 '아, 이 어른이 이제 세상을 떠나셨구나' 하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41년 동안 이어진 저와의 온갖 인연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갈 땐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아무리 하신 일이 많고 이룬 일이 많을지라도 어찌 회한과 부탁이 없겠습니까! 이 세상에 대한 걱정도 있을 거고, 가족들에 대한 걱정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니의 부음이 알려진 지 다섯 시간도 안 됐는데도 수많은 분들이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고자 이 곳 빈소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이미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거니와, 특히 어머니가 편찮으신 동안 자랑스러운 아들딸이 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어머니! 이승에서의 이별은 한 없이 슬프지만 저승에 가시면 어머니께서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전태일과 여러 동지들을 만날 것이니, 어찌 슬퍼만 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편히 쉬소서! 편히 쉬소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태일재단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이소선, #전태일, #장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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