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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309일간의 크레인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소금꽃나무> 저자 김진숙. <소금꽃나무>는 2008년에 이어 2011년에서 국방부 불온도서로 중복선정됐다.
 10일 309일간의 크레인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소금꽃나무> 저자 김진숙. <소금꽃나무>는 2008년에 이어 2011년에서 국방부 불온도서로 중복선정됐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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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도서 목록에 후마니타스 책이 세 권이나 포함됐대요."

이 소식을 전하는 이의 표정을 보니, '불온'이라는 단어에서 마땅히 감지해야 하는 긴장감은커녕,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좋아해야 하는 거야?'

<시사IN>이 2011년 군에서 통용되고 있는 이른바 '최신 불온서적 목록', 정식 명칭 <장병 정신 전력 강화에 부적합한 서적>을 공개했다(관련기사 : <군 '불온서적 리스트'... 19권 더 늘었다>). 2008년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도서' 23권에 19권이 새로 추가되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3종(구갑우의 <비판적 평화 연구와 한반도>, 김진숙의 <소금꽃나무>, 하종강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후마니타스의 책이다.

2008년에 반정부·반미 부문에 포함되었던 <소금꽃나무>가 이번에는 반자본주의 항목에 추가된 걸 보면, 저자인 김진숙이 당시에 "차라리 '반자본주의' 코너로 옮겨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국방부 장관에게 보낸 공개편지의 취지가 일부 반영된 모양이다(글 보기).

기사가 나가고 난 뒤, 이 목록에 가장 많은 책이 선정된 출판사라는 이유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혹은 직접, 이른바 '축하와 격려의 인사'를 많이 받았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내달라는 이야기였다. 선정된 책의 저자들 또한 '부럽다'거나 '책 많이 팔리면 밥 한번 사라'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도대체 사람들이 불온도서를 무슨 우수 도서나 권장 도서쯤으로 아는 모양이다.

'불온도서 3관왕', 부러워하지 마세요

<소금꽃나무> 표지
 <소금꽃나무> 표지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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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08년에는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과 헌법을 제기하는 등의 저항이 한편에 있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개 인터넷 서점이 불온도서 이벤트를 했고, 어떤 출판사에서는 불온도서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홍보 차원에서 신문광고나 책 띠지에 밝히기도 했으며, 독자들 사이에서는 '불온도서 읽기' 움직임도 있었다.

'불온도서를 읽는 사람들'의 모임도 생겼고, 목록에 포함된 책들이 오히려 최대 열 배까지 판매가 증가했다는 것이 뉴스거리가 됐다. 이쯤 되면 읽어서는 안 될 책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멀쩡한 군인들의 정신 건강을 관리 및 통제하는 행위는 이제 두려움보다는 조롱의 대상이 된 듯하다.

그렇다면 <소금꽃나무>는 불온한가? 사실 상당히 위험한 책이다. 왜냐하면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다가 눈물이 쏟아져 혼났다는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눈물이 난다거나 코를 풀어도 괜찮은 곳에서 읽으시라. 이 글을 쓰기 위해 잠깐 책을 들춰봤는데 벌써 눈물이 난다.

여기, 하굣길에 길목에서 야채 행상을 하고 있는 엄마가 부끄러워 도망가던 초등학교 시절의 김진숙이 있다. 추운 겨울 고무신이 자꾸 벗겨진다는 엄마 말에, 신문 배달을 해서 받은 돈으로 털신을 사드린 어린 딸 김진숙에게 버럭 화를 내고는 그 털신이 아까워 신지도 못하고 벽장에 고이 모셔 두었던 엄마가 있다. 수배 생활과 감옥을 들락거리느라 몇 년에 한 번씩 집에 들르는 딸에게 매번 병상에 누워 입 모양으로 네 글자를 물어봤다는 아버지도 있다.

"복. 직. 했. 냐?"

아이들에게 힐리스를 사주고 싶어 했지만 끝내 그러지 못하고 떠난 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고, 아침이면 어딘가로 출근하고, 저녁이면 가족과 된장찌개 끓는 밥상 앞에 가족이 둘러앉고 싶은 어느 가장의 꿈도 있다. 봄이 오면 예쁜 원피스 입고 삼랑진 딸기밭에 놀러 가고 싶은 부산지하철 해고자 26살 아가씨의 순수한 마음이 있다.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되는 이런 보편적 감수성을 '불온'하다고 보는 거라면 이 책은 몹시 불온하다.

이 시대에 좋은 책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불온'

<길에서 만난 사람들> 표지
 <길에서 만난 사람들> 표지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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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불온한가? 이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종강이 길에서 만난 54명 가운데 한 사람 이야기인데, 중학교 3학년 때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못 갔다. 학교에서는 이런 불우한 아이들을 모아 소풍을 갔는데, 어머니는 미안한 마음에 선생님을 드리라며 4홉짜리 소주 한 병을 아들 손에 쥐어 주었다. 하지만 소풍을 가서 보니 아이들 모두 맥주를 선물하는 것이 아닌가. 이마저도 부끄러웠던 아이는 선생님께 드리지 않고, 집으로 오는 산길 소나무 숲에서 소주 한 병을 다 마셔 버렸다. 여기서 하종강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신기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올바른 뜻을 위해 자신의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한 사람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명제, '굶주림이 발길을 진리로 향하게 한다'라는 말은 진리다."

굶주려 선악과를 따먹고 진리를 알게 된 것이 불온하다면 이 책은 불온하다.

<비판적 평화 연구와 한반도>는 또 어떤가? 이 책은 '전쟁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 담론이 하나의 모습을 가질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저자인 구갑우 교수는 이 책의 목적을 "전쟁과 평화의 원인을 천착하고, 전쟁을 예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규범적·실증적 분과 학문인 평화 연구의 시각에서 한반도 평화 과정을 조망하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밝힌다.

심지어 그는 평화 연구라는 시각에서 볼 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비판하는 강대국의 담론을 모방하고 복사하는 것으로서,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고 말한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말하는 것이 불온한 것이라면 이 책은 제목부터가 불온하다.

좋은 책을 만들고도 불온도서로 선정되지 못했다고 섭섭해하는 출판사나 저자들이 있다면 그러지 마시라. 누군가의 머릿속을 통제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불온한 시대에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충분히 불온하니까.

덧붙이는 글 | 정민용님은 후마니타스 출판사 편집주간입니다.



소금꽃 나무

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2007)


길에서 만난 사람들 - 하종강이 만난 진짜 노동자

하종강 지음, 후마니타스(2007)


비판적 평화연구와 한반도

구갑우 지음, 후마니타스(2007)


태그:#불온도서, #소금꽃나무, #길에서 만난 사람들, #비판적 평화 연구와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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