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결혼을 6개월 앞둔 예비 신부입니다. 2년여의 연애 끝에 결실을 맺는 참으로 뜻 깊은 한해지요. 하지만 웃을 수 없고, 걱정만 앞서는 신부입니다. 맞이로 태어나 27년을 살아 오면서 가족을 떠나는 삶을 수도 없이 생각했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항상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어머니. 방탕한 세월에 후회를 하는 아버지까지... 정말 학창시절은 잊어 버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로 가슴아리는 추억들 투성이지요.

드디어 해방! 나에게도 새로운 인생이 찾아올까요. 결혼준비를 하면서 돈에 대한 스트레스에 혼자서 울기도 해보고 술도 마시며 한탄도 해보고 다들 가족의 도움으로 잘만 결혼하던데... 나는 뭔가 하루에도 수십 번 내안에 울분들이 솟구쳐 오르기를 반복하며 사는 인생. 이제 정말 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 20년 동안 해오시던 가게를 빚으로 접으시고 대출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하셨어요. 포장마차. 출근 시간은 오후 4시, 문 닫는 시간은 새벽 4시. '내 인생은 평생 이렇게 살아야하는 거겠지. 가족이라고 누구하나 나 아프다고 알아주는 사람 없고, 딸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네.' 혼자 한숨을 쉬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렇게도 외면하고 싶어 가게는 찾아가지도 않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제 남자친구를 불러 우리 가족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대신 하셨어요. 착한 사위인 울 오빠는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오빠에게 전해 들은 순간, 너무 화가 나고 내가 마치 발게 벗은 듯 창피하게 느껴졌지요.

어느 누구에게도 하기 싫었던 말들. 더욱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아무것도 아닌 일인 듯 이야기하는 어머니가 너무 미웠습니다. 듣기 싫다고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그길로 울며 포장마차로 달려갔습니다. 새벽 2시. 사람 온기가 없는 그 곳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묵묵히 일하는 뒷모습에 굽어버린 등. 낮아진 어깨. 피기없는 얼굴의 어머니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엄마가 해준게 뭐가 있어! 내가 얼마나 창피한줄 알아? 가족도 다 필요없어."

이런 불효가 또 있을까요? 어머니와 마주치지 않은지 보름이 지나고 아버지가 저를 불러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며 이야기하셨습니다.

"이슬아 엄마 손 봤니? 붓고 칼에 베여 피가 나도 검정 테이프로 동여매고 한 푼이라도 더 모아 너한테 주고 싶어 새벽이고 낮이고 일하는 엄마를 생각해보렴. 엄마는 얼마나 더 속상하겠니.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란게..."

순간, 속상함과 미안함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20년 넘게 나만을 보고 살아온 어머니에게 씻지 못할 아픔을 준 나인데... 나만 생각하고 살아온 20년 그리고 엄마를 등지고 살려했던 앞으로의 세월들. 이런 못된 딸을 딸로 생각하며 지금도 외로움과의 사투를 벌이고 계실 어머니. 엄마 너무 미안해요, 엄마의 희생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엄살로만 여겼던 큰 딸. 이제서야 엄마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네요.

그 많은 인생을 아픔으로 살았을 어머니 딸이 미워하는 어머니도 기꺼이 자처하며 항상 강한 어머니로 지내온 세월. 어찌 값아야 할까요? 결혼을 해 너 같은 자식 나아보면 내 마음 알꺼라던 어머니의 말. 그 말이 너무 가슴아프게 다가오네요. 이제 불효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흘린 눈물로 가난의 아픔과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다 씻겨 나가 감사한 마음으로 채워 살아갈 거예요. 남은 6개월 엄마의 딸로 엄마의 힘들었던 삶을 위로하며 살아 보겠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나의 어머니' 응모 기사입니다.



태그:#나의 어머니, #응모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