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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내가 여고 동창들과 여행을 떠났습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어 일상에 무슨 불편이 있겠나 했는데, 적응력도 나이에 따라 점점 약해지는 모양입니다.

전에는 혼자 밥도 잘 차려 먹곤 했는데 밥물을 잘못 봐 거의 죽이 된 회심의 콩나물밥을 꾸역꾸역 먹고 나니 그 짓도 엄두가 안 납니다. 그래서 맛으로 먹는 건 포기하고 햇반 시리즈로 쇠고기 300그램 사서 불고기와 햇반, 골뱅이캔을 따서 골뱅이 파무침과 햇반, 참치 양파 샐러드를 만들어 햇반과 함께 먹어보기도 했지만, 김치를 덜어내기 귀찮아 1식 1찬으로 떼우니... 사람 꼴이 말이 아닙니다.

제가 찬밥이 있을 때 잘해먹는 김치볶음밥입니다. 반찬 필요없고 가장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홀아비 메뉴이지요.
 제가 찬밥이 있을 때 잘해먹는 김치볶음밥입니다. 반찬 필요없고 가장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홀아비 메뉴이지요.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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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마누라'가 여행 떠나면 허리띠 풀고 술 먹을 기회가 왔다고 좋아하는데, 막상 그 기회가 와서 젓가락 하나 더 놓고 어떻게 저녁 한 끼 때워볼까 이리저리 집적거려봅니다. 하지만,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놓은 게 아니니 이게 꼭 평일에 휴가 나온 군인과 같은 처량한 신세더군요. 지인에게 한 번 퇴짜 맞고 나면 영 전화를 걸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불러주는 데 없나 하지만 그렇게 전화질해대던 친구도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영 입질이 오질 않습니다.

집앞에 있어 간혹 고기 먹으러 가던 집. 변두리 식당은 비교적 저렴하고 이렇게 질이 괜찮은 고기를 건지는 재미도 있습니다.
 집앞에 있어 간혹 고기 먹으러 가던 집. 변두리 식당은 비교적 저렴하고 이렇게 질이 괜찮은 고기를 건지는 재미도 있습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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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음식점 벽에 걸린 메뉴 중에는 점심메뉴라는 게 있습니다. 점심이라는 것은 한 끼 때우는 음식이지 안줏거리로는 안 되니 제대로 시켜 먹으라는 '괘씸한' 뜻이지요. 그러나 고깃집도 1인분 주문은 안 되고, 일식집도 일본식 선술집처럼 1인분을 시키면 '꼴값 떠네'하는 것처럼 눈총을 쏘아대니 2인분 시켜놓고 느긋하게 혼자서 술 한잔할 배짱은 아직 없습니다.

이럴 때 허름한 술집의 술국이라는 메뉴가 절실하지만 어디 그런 것 내놓는 집이 흔한가요?

곁들여 나오는 된장찌개. 규모가 작은 집의 밑반찬이나 곁들여 나오는 찌개류는 큰 음식점과 달리 간혹 독특한 맛을 볼 수 있습니다.
 곁들여 나오는 된장찌개. 규모가 작은 집의 밑반찬이나 곁들여 나오는 찌개류는 큰 음식점과 달리 간혹 독특한 맛을 볼 수 있습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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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왕'갈비탕이나 우족탕 같은 것을 하나 시켜 안주 삼아 먹어보는데, 서면 엉덩이라도 끼고 걸터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길이가 짧게 느껴지는 야간 완행열차 좌석처럼, 혼자 먹는 안주로는 꼭 한두 점 모자랍니다. 중국집에서 요리를 시켜먹자니 밥이 없는 것처럼 음식점에서 혼자 먹게 되면 다른 사람 눈치보다도 '홀아비 메뉴'가 없어 그게 오히려 고민입니다.

건데기가 많을 것 같아 시킨 도가니탕과 밑반찬
 건데기가 많을 것 같아 시킨 도가니탕과 밑반찬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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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그렇게 무얼로 저녁 한 끼를 때울까 망설이면서 차 안에서 궁리하다 집까지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집 대문 쪽으로 걸어오다 보니 간혹 식구들과 갔던 '고기마을'이라는 식당이 눈에 들어옵니다. 보통 때는 고기만 먹던 곳이라 끼니를 때울 곳으로 생각도 안 했던 곳인데... 불현듯 옆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이 양곰탕을 주문해 먹던 게 생각납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아줌마가 서비스로 갖다 준 간천엽. 덕분에 반주 안주가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아줌마가 서비스로 갖다 준 간천엽. 덕분에 반주 안주가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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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니 '왜 오늘은 혼자 오셨수'라는 눈빛입니다. 메뉴판을 보니 양곰탕 6000원, 도가니탕 8000원입니다. '8000원짜리가 건더기가 좀 많겠지'라고 생각해 도가니탕을 시켰습니다. 그리곤 식당 아주머니가 뭘 물어보지 못하게 신문을 펼치고 신문 삼매경에 짐짓 빠져봅니다.

도가니라는 명칭에 너무 충실한 도가니탕. 잡고기가 좀 섞여야 먹는 재미가 있는데 한가지라 좀 심심했던 도가니탕. 대신 양은 반주 안주로 적정한 듯 합니다.
 도가니라는 명칭에 너무 충실한 도가니탕. 잡고기가 좀 섞여야 먹는 재미가 있는데 한가지라 좀 심심했던 도가니탕. 대신 양은 반주 안주로 적정한 듯 합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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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빨간 것'도 하나 추가하니, 식당 아주머니가 간처녑까지 하나 갖다 줍니다. 전에 왔을 때 앞집에 산다고 했더니 그걸 기억했던 모양인가 봅니다. 아니면 제 꼴을 보고 가엽게 여겨 갖다 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로써, 반주 안주까지 딱 들어맞았습니다.

서대문에 있는 유명 도가니탕을 연상하고 시킨 도가니탕은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양이니 잡고기가 없이 오로지 도가니만 충실하게 들어갔더군요. 관절염이 있는 사람에게는 치료약으로 아주 좋겠지만 안주와 밥으로 먹기에는 조금 지루했습니다. 그러나 저녁 한 끼 이렇게 때웠다는 게 어딥니까? 내 손으로 해먹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지요.

먹는 재미는 양곰탕이 나은 듯하여 다음 날 저녁 때 가서 먹은 양곰탕. 양은 조금 적은 듯하나 부드러워 반주안주로는 이게 더 나은 듯.
 먹는 재미는 양곰탕이 나은 듯하여 다음 날 저녁 때 가서 먹은 양곰탕. 양은 조금 적은 듯하나 부드러워 반주안주로는 이게 더 나은 듯.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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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라는 말처럼 그럭저럭 뭉개니 아내는 내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내 집에서 받아보는 밥상, 아들 밥상보다 찬은 적어도 마음은 섭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며칠 지나고 나면 간사한 남편은 또 어쭙잖은 거드름을 피우며 소파에 너부러질지도 모르지만, 아내는 공기와 같은 '귀한' 존재라는 것을 절대 잊지는 않겠지요.

그렇게 안주가 한두점 모자랄 땐 잘 익은 김치도 안주로 한몫하지요
 그렇게 안주가 한두점 모자랄 땐 잘 익은 김치도 안주로 한몫하지요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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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마누라, #반주안주, #신창동고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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