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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검은 대륙 아프리카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광활한 대자연'이나 '투자 가치 있는 신흥 경제대국'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질병 그리고 차별·소외가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13년 밀알복지재단이 추진하는 캠페인 '우리의 눈은 아프리카를 향합니다'를 후원하며 지구촌 빈곤의 현주소를 전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말]
지난 2일 정오. 인천공항을 출발 케냐 나이로비를 거쳐 16시간 만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보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및 통관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혹시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우리는 30분 만에 공항청사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살람루, 여러분들은 정말 귀한 분들이에요.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비가 오고 있잖아요. 여기는 비가 귀한 지역이거든요. 비 오는 날 온 손님은 아주 귀합니다. 축복을 가져다주는 손님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아디스아바바를 벗어나 서너 시간 달리던 중 낙타 무리와 마주쳤다.
 아디스아바바를 벗어나 서너 시간 달리던 중 낙타 무리와 마주쳤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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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까지 우리를 마중 나온 현지인 제게예는 우리를 만나자마자 자랑이 한창이다. 우리가 도착하기 사나흘 전부터 딜라에 비가 왔단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붉은 흙먼지만 날리던 땅에서 초록의 풀들이 자라나고, 커피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지인 딜라는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360km 거리에 있는 시골 마을로 고급커피 생산지로 유명한 이르가짜페(예가체프)와 시다모 지역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16시간, 육로로 8시간을 달려 에티오피아의 작은 마을 딜라를 찾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 에티오피아를 가난에서 구해낼 희망이 자라고 있다는 한 학교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시작되는 4번 도로는 지부티까지 이어지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로 목적지인 딜라까지 가려면 모조라는 지역에서 케냐로 향하는 6번 도로로 갈아타고 4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청정 아프리카? 실망하실 겁니다

도로 상황. 차가 빽빽하다. 자동차의 매연 등이 가득해 숨을 쉬기 어려웠다.
 도로 상황. 차가 빽빽하다. 자동차의 매연 등이 가득해 숨을 쉬기 어려웠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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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에서 모조까지 도로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 건축자재를 실은 트럭, 구호품과 수입품을 실어 나르는 대형차량, 사람을 가득 실은 소형버스, 택시와 승용차, 오토바이와 바자주(툭툭이), 자전거는 물론 나귀와 달구지, 소떼와 양떼, 말과 염소 심지어는 가뭄을 피해 국경을 넘은 낙타 무리까지 한데 모여 있었다.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고 낡은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배기가스는 딜라에 도착하는 9시간 내내 코와 목 그리고 눈을 따갑게 했다.

평균 해발 2500미터. 아디스아바바와 인근 도시는 희박한 산소로 인해 불완전 연소하는 차량들의 매캐한 배기가스와 전통가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들로 가득하다. 곳곳에 매연이 안개처럼 자욱이 가라앉아 있다. 붉은 흙먼지와 검푸른 배기가스가 뒤섞인 공기는 '청정 아프리카' 혹은 '아프리카의 스위스'를 상상했던 '초짜 방문자'에게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딜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대부분의 중소도시들은 한국의 1960년대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도 시골 읍내에 해당하는 작은 반경 정도만 도시의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 나머지 대부분은 이 땅에 인류가 살기 시작했던 선사시대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극심한 대조를 이룬다.

딜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대부분의 중소도시들은 한국의 1960년대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딜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대부분의 중소도시들은 한국의 1960년대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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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일정한 거리마다 전통가옥 샤르벳(뾰족한 모양의 초가지붕 집)과 꼬로꼬로벳(함석지붕집)들이 밀집해 있는 마을이 형성돼 있고, 도로변 흙길은 어깨가 부딪힐 만큼의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행렬을 이뤄 움직이고 있다.

양떼와 소떼를 모는 목동은 대부분 열 살 남짓 돼 보이는 남자아이들이다. 무거운 짐을 들거나 이고, 지고, 끌고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 작은 아이들까지도 제 몸집 만 한 노란 물통을 들고 다니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빈손으로 다닌다. 남자는 무거운 것을 들지 않는다는 게 이곳 에티오피아의 오랜 전통 중 하나란다. 삶을 강하게 옭아매고 있는 전통 때문에 여자와 아이들의 책임과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집에 가봐야 할 일이 없어요... 차라리 밖이 낫죠"

해가 질 무렵이 되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샤르벳과 꼬로꼬로벳에서 하얀 연기와 함께 나무 타는 독특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해가 질 무렵이 되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샤르벳과 꼬로꼬로벳에서 하얀 연기와 함께 나무 타는 독특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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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무렵이 되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샤르벳과 꼬로꼬로벳에서 하얀 연기와 함께 나무 타는 독특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어두워지기 전에 저녁식사를 준비하거나 해충들을 쫓기 위해 유칼립투스 나무를 태우는 것. 날이 저물어도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도로 옆을 걸어 다니거나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 주변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다. 축제가 열린 걸까, 야시장이 열린 걸까. 궁금해 물어보니 운전대를 잡고 있던 제게예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무 일 없이 그냥 돌아다니는 거예요. 집에 가봐야 할 일도 없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TV나 라디오를 들을 수도 없고…. 행여나 전기가 들어와도 전기요금 낼 돈이 없어 거의 사용하지 않아요. 어둡고 눅눅하고 냄새나는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것보다는 길가에 나와 오가는 자동차의 불빛이라도 바라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아서 밖으로 돌아다니는 거예요. 에티오피아에서는 어딜 가나 다 그래요."

사람을 좋아하고 대화를 즐기는 이들은 그렇게 자동차의 불빛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도로변 풀밭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이런 일은 이곳 에티오피아에서 특별한 일이 아니란다. 며칠 전부터 비가 온 덕에 소복하게 돋아오른 풀 위에서 자는 게 더러운 흙바닥 혹은 더럽고 눅눅한 침구 위에서 자는 것보다 훨씬 쾌적하다는 것.

날이 저물어도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도로 옆을 걸어 다니거나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 주변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다.
 날이 저물어도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도로 옆을 걸어 다니거나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 주변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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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라가 가까워질수록 날도 어두워졌다. 전력 수급이 불안정한 에티오피아는 고속도로 주변에 세워 놓은 전봇대가 전력선의 거의 전부다. 도심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기 시설조차 갖춰져 있지 않고, 있다고 해도 전력이 약해 불을 밝히지 않은 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는 게 일상화돼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거의 안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시력이 좋다고. 빛 하나 없는 깜깜한 길을 대낮처럼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니 그 말이 사실인 듯싶다.

한국의 도로상황이라면 휴게소에서 쉬어가면서도 4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8시간 걸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극심한 교통량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시로 길을 건너는 사람들과 가축들이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칼치기'를 연상케 하는 무단 추월과 난폭 운전 때문에 나는 딜라에 도착할 때까지 조수석 손잡이에 매달려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낙타라도 타고 온 듯 온몸의 근육이 아파왔다.

오후 8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닿은 한별학교. 세 명의 한국인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을 떠난 지 만 이틀 만에 베이스캠프가 될 한별 아카데미에 도착한 것. 선생님들은 우리의 도착시각에 맞춰 저녁밥을 지어놓고 우리를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일행 중 어느 누구도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차멀미와 고산증 증세가 있었고, 딜라 도착 2시간 전 아와사라는 큰 도시의 최고급 식당에서 점심 겸 저녁으로 먹은 에티오피아 전통음식 인제라가 소화가 안 된 채 위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문명과 멀이진 곳에서 속삭인 인사말 '살람루'

에티오피아인의 주식인 떼프라는 곡물로 만든 인제라(부침개 종류).
 에티오피아인의 주식인 떼프라는 곡물로 만든 인제라(부침개 종류).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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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이틀 동안 물 구경을 하지 못한 우리는 먹는 것보다 씻는 게 급했다. 도중에 들른 아와사의 큰 식당 역시 물 사정은 좋지 않았다. 대도시의 유명식당이었지만 화장실은 더러웠고 손을 씻는 세면대에서는 간신히 몇 방울의 물이 나오는 정도였다. 한별학교 역시 물 사정이 좋지 않을 것이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지난해 지하수를 파고 자동펌프를 설치해놨단다. 덕분에 넉넉하진 못해도 먹고 씻는 데 큰 지장은 없다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샤워를 하고 쉬세요. 샤워시설이 돼 있지만, 물이 졸졸 흐르는 수준이니 감안하고 씻으세요. 여긴 물이 귀해서 다 그래요. 혹시 장티푸스가 걸리거나 물갈이를 할 수 있으니 먹는 물도 조심하셔야 해요. 생수보다는 끓인 물을 드시거나 탄산음료를 드시는 게 좋아요. 빈대가 있으니까 잠자리에는 방충제를 미리 뿌려 두시고요. 말라리아에 걸릴 수 있으니 모기장은 꼭 치고 주무셔야 해요. 전기가 자주 나가니까 놀라지 마시고 태양열 랜턴을 침대 위에 두고 주무세요."       

졸졸 물이 나오는 샤워기에 의지해 이틀 동안 감지 못한 떡 진 머리를 감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8시간을 자동차로 달려온 후유증 때문일까. 여전히 차 안에 있는 듯 몸이 계속 흔들렸다. 게다가 공항에 도착한 뒤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뻐근한 고산증 증세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쉽게 잠을 이루기는 틀린 것 같아 컴퓨터를 켜보니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하단다.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로밍 시 1분에 4000원이라는 문자가 경고처럼 눈에 들어온다. 문명의 네트워크에서 떨어져 미아가 된 느낌이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첫날밤, 앞으로 닥칠 날들의 평안을 기원하면서 스스로에게 '살람루'라고 인사를 건넨다. 이 인사는 평화와 평안을 의미한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첫날밤, 앞으로 닥칠 날들의 평안을 기원하면서 스스로에게 '살람루'라고 인사를 건넨다. 이 인사는 평화와 평안을 의미한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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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아바바 공항을 떠난 지 8시간. 도심과 360km 떨어졌을 뿐인데 문명과의 거리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나 떨어진 듯하다. 슈퍼마켓도, 빵집도, 편의점도 없는 곳. 우리에게 익숙한 맥도날드·스타벅스·KFC의 간판을 볼 수 없는 곳에 내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나의 모든 지식과 경험들이 적용되지 않는 환경,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멘탈 붕괴'가 아닐 수 없다.

약하게 들어왔던 형광등이 한두 번 깜빡거리는가 싶더니 그만 꺼져버린다. 어둠 속을 더듬어 태양열 랜턴을 찾다가 포기했다. 어차피 자야 할 시간이다.

절대 암흑. 이제 겨우 아프리카에 발을 디뎠을 뿐인데 문명과 멀어진 거리만큼 외로움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앞으로 13일. 과연 나는 잘 견딜 수 있을까. 에티오피아 인사말 "살람루"가 떠오른다. 이 인사말은 '샬롬'과 같은 의미로 평화와 평안을 뜻한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첫날밤, 앞으로 닥칠 날들의 평안을 기원하면 내게 인사를 건넨다.

"살람루 에티오피아, 살람루 아프리카, 살람루 코리아, 살람루 혜원…."



덧붙이는 글 |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격려와 사랑을 전달해 주세요. 밀알복지재단(02-3411-4664)에 전화하시면 후원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밀알복지재단 누리집]을 통해서도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울지마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딜라 한별학교, #에티오피아 구호사업, #한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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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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