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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검은 대륙 아프리카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광활한 대자연'이나 '투자 가치 있는 신흥 경제대국'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질병 그리고 차별·소외가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13년 밀알복지재단이 추진하는 캠페인 '우리의 눈은 아프리카를 향합니다'를 후원하며 지구촌 빈곤의 현주소를 전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360km 떨어진 남부 도시 딜라에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전국의 에티오피아 학생이 응모한 작문대회 1등이 수도가 아닌, 광역시 수준도 아닌, 시골의 작은 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이 두 개나 있는 도시인 딜라는 오래전부터 교육도시로 불리긴 했지만, 그것은 국립대학 두 개를 포함, 네 개의 대학이 있다는 것에 대한 평가일 뿐 특별히 우수한 학생들이 배출되는 도시는 아니었다. 아디스아바바나 제2의 수도로 불리는 아와사가 아닌 기타 지역에서 전국 규모 대회 수상자가 배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에티오피아 언론도 이를 보도했다.

"지난달(3월)에 아디스아바바에 다녀왔어요. 에티오피아 문화관광청에서 실시한 전국 학생 작문대회에서 1등을 해서 장관상을 받으러 갔었어요. 태어나서 처음 아디스아바바에 가봤어요."

에티오피아 문화관광청 장관상을 수상한 암마누엘 와르꾸(15)는 딜라 한별학교 8학년에 재학 중인 남학생이다. 한국식 교육제도로 말하자면 중학교 3학년이지만 사춘기 혹은 '중2병'으로 표현되는 한국 중학생들과는 달리 사뭇 어른스럽고 진지하다.

한국 중산층과는 차원이 다른 에티오피아 중산층

암마누엘과 그의 가족. 이 집에 아들은 암마누엘밖에 없다고 한다.
 암마누엘과 그의 가족. 이 집에 아들은 암마누엘밖에 없다고 한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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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세무서에 근무하시고 엄마는 주부예요. 아들은 저 하나고요. 여자 형제들이 여섯 있어요."

아버지가 세무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면 에티오피아에서는 중산층에 해당한다. 그러나 한국의 중산층을 떠올리면 큰 오산이다. 공무원 월급은 1300비르(1비르가 한화 60원가량) 정도로 사립학교 교사 월급(보통 1800비르)보다 적다.

사립학교의 경우 분기당 200~300비르의 수업료를 받는 게 보통이지만 한별학교는 비교적 저렴하게 150비르를 받는다. 암마누엘 형제 중 넷이 한별학교 다니고 있으니 아이들 학비로 아버지의 월급 대부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먹고 입는 것은 더 어렵다. 주식인 떼프(인제라를 만드는 조와 같은 모양의 곡물)가 1kg당 14비르, 꼬쪼 1kg 10비르(폴스바나나 뿌리의 전분으로 만든 음식), 5리터 물 한통이 3비르, 계란 한 개가 3비르 정도니 일곱 명의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려면 허덕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아버지는 늘 저에게 바르게 살라고 하세요. 아버지가 세무 공무원인데도 우리집이 이렇게 가난한 것은 뇌물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래요. 가난하지만 아버지를 존경하고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에티오피아 시골의 중산층은 빈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흙벽에 함석으로 지붕을 덮은 꼬로꼬로벳에 살며 하루 두 끼를 겨우 먹는 가정일 뿐이다.

에티오피아 부모가 사립학교 선호하는 이유

중산층이라고는 불리지만 살림 형편은 일용직 노동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암마누엘의 집.
 중산층이라고는 불리지만 살림 형편은 일용직 노동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암마누엘의 집.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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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마누엘의 집안.
 암마누엘의 집안.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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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암마누엘의 집을 방문해봤다. 진흙을 바른 방 두 칸과 재래식 부엌 그리고 푸세식 화장실을 가진 꼬로꼬로벳인데 거실로 사용하는 방에 TV와 암마누엘의 책상이 놓여있는 게 특이할 뿐 다른 방과 부엌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부엌은 초가지붕 샤르벳의 부엌과 다르지 않다. 조리기구도 그릇도 없는 부엌에는 음식을 해 먹은 흔적도 없어 보였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아홉 식구가 먹을 음식을 조리하는지 신기할 정도.

말이 공무원이고 부르기 좋아 중산층이지 사는 형편은 일용직 노동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암마누엘의 집. 다른 것이 있다면 암마누엘의 아버지가 에티오피아의 다른 아버지들과 달리 자녀 교육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직 학령기가 되지 않은 막내만 빼고 일곱 자녀를 모두 학교에 보내고 있다. 과중한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첫째와 둘째 딸은 학비가 없는 공립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한 가정에 여섯 명의 자녀가 모두 학교에 다니는 집은 드물단다. 뜨거운 교육열을 지닌 에티오피아의 '맹부'(孟父)가 아닐 수 없다.

부모가 과중한 교육비 부담에도 학비가 면제되는 공립학교를 보내지 않고 사립학교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암마누엘에게 물어봤다.

"공립학교에 다니다가 2학년 때 한별학교로 옮겼어요. 공립학교와 한별학교는 참 많이 달라요. 공립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공부를 가르치지 않거든요. 숙제도 없고요. 학년이 올라가도 교과서를 다 마치지 못하고 끝나버려요. 선생님들도 한 달에 서너 번밖에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까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학교를 빠져도 공부를 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아요. 선생님도 부모님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니 배우는 것 없이 시간이 지나 졸업을 하는 거예요."

전날 방문한 딜라교육청의 읍네트 교육감은 딜라의 교육환경을 묻는 기자에게 "딜라시는 에티오피아에서도 인정받는 교육도시로 거주하고 있는 학령기 아동의 100%가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성인들까지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답변을 해줬지만, 딜라에서 가장 좋다는 공립학교를 직접 방문해보고 그의 말이 그럴듯한 포장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교육감의 말과 달리 공립학교의 상황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지에 세워졌던 임시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오전·오후·저녁을 나눠 3부제 수업을 하는 것이 보통이며 책상 하나에 서너 명이 앉아서 공부를 하거나 책상이 없어 서서 수업을 받는 풍경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공립학교 선생님들도 '포기'한 나라, 에티오피아

암마누엘도 한별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는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는 그저 평범한 에티오피아의 아이였다. 암마누엘의 책상.
 암마누엘도 한별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는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는 그저 평범한 에티오피아의 아이였다. 암마누엘의 책상.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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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학교를 열어 놓고 누구도 이들을 관리 감독하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교사들도 월급날을 전후해 1주일 정도 학교에 와서 얼굴도장을 찍고 월급을 받아간다니 그곳에서 교육이 이뤄지길 바라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학비를 마련하는 것이 힘들지만 무료로 다닐 수 있는 공립학교를 마다하고 사립학교를 보내는 부모들의 심정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암마누엘도 한별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는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는 그저 평범한 에티오피아의 아이였다. 한별학교로 전학을 하고 난 후에도 한동안은 공부에 뜻이 없어 4학년까지는 자기 이름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선생님들까지도 에티오피아는 '희망이 없는 나라'라고 했거든요. 학생들에게 '너희들도 희망이 없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한별학교로 전학 온 후 생각이 달라졌어요. 미세스 박(정순자 교장)이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말을 가르쳐 줬거든요. 공부만 열심히 하면 에티오피아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면서 희망을 줬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에티오피아도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게 됐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에티오피아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나라 걱정을 하는 암마누엘. 그에게 에티오피아의 자랑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오랜 역사와 고유한 문자 '암하릭'이라고 한다. 어린 소년의 가슴에 뜨거운 애국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역사교과서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솔로몬 왕과 결혼한 시바 여왕이 에티오피아의 조상이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어요. 몇 세기 전 악숨이라는 거대한 왕국이 있었다는 것도 들었고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글자를 가지고 있고 유일하게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예요."

이렇게 많은 내용을 어디서 배운 것인지 물으니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에티오피아의 역사를 한별학교를 찾은 외국 봉사단원들에게 들어서 알게 됐다고 했다.

"이웃나라를 도와주기도 해요. 지부티·수단·우간다 같은 나라에 군대를 보내서 그들을 도와줘요. 아주 오래전 한국전쟁 때도 에티오피아가 군대를 보내 도와줬다고 알고 있어요."

글을 잘 써서 장관상을 받았다더니 역시 명불허전. 암마누엘은 나이에 비해 생각도 깊고 말도 잘하는 아이가 틀림없었다. 암마누엘에게 어떤 글을 써서 상을 받았는지 물었다.

"두 가지를 썼는데 그 중 하나는 '나도 모국어(Mother tongue)로 공부하고 싶다'라는 내용이고요. 또 하나는 돌아가신 멜레세 대통령에 대한 글이에요."

"나는 내 나라를 사랑합니다"

상장을 들고 있는 암마누엘. 그의 사례는 에티오피아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고.
 상장을 들고 있는 암마누엘. 그의 사례는 에티오피아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고.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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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라니... 그럼 지금까지 다른 나라 말을 사용했다는 뜻인가? 자세히 물어보니 암마누엘이 마더통그(mother tongue)라고 한 것은 모국어가 아닌 부족 언어였다. 현재 에티오피아의 공용어는 암하릭이지만 부족수가 많은 티그리와 오로모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며 지방으로 갈수록 지방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 여전히 부족간 언어 소통의 문제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지금 에티오피아 표준어는 암하릭어인데 저는 게데오족이거든요. 게데오족은 게데오 만의를 언어가 있고 문화가 있는데 학교에서 암하릭어로 수업을 받아야 하니 정말 어려워요. 저에게는 암하릭이나 영어가 똑같은 외국어예요. 그래서 부족언어인 게데오어로 공부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글을 썼어요."

암마누엘의 꿈은 정치인이라고 한다. 외과의사가 돼 HIV나 말라리아·장티푸스 등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도 꿈이지만, 지난 2012년 서거한 멜레세 대통령처럼 훌륭한 정치인이 돼 에티오피아를 발전시키고 다른 나라를 돕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당찬 소년이다.

"멜레세 대통령 이전에는 에티오피아가 더 가난했어요. 그런데 멜레세 대통령이 나라를 발전시키고 학교를 만들고 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들었어요. 멜레세 대통령은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한번 시작한 일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성취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도 제가 계획한 일들을 끝까지 이루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에티오피아를 발전시키고 에티오피아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 앞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아이가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의 15세 소년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는 암마누엘. 산문은 물론 시도 좋아해 자작시도 여러 편 썼다면서 자신이 쓴 시 한편을 수줍게 들려준다.

내 나라

나는 내 나라를 사랑합니다
내가 아플 때 도와주고
내가 지칠 때 쉬게 해주고
내가 울 때 나와 함께 하고
내가 목마를 때 나와 함께 해준
내 나라를 나는 사랑합니다.

"국제원조? 그거 나쁠 수도 있어요"

한국 중학생들과는 달리 사뭇 어른스럽고 진지한 암마누엘.
 한국 중학생들과는 달리 사뭇 어른스럽고 진지한 암마누엘.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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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와 말콤 엑스를 존경한다는 이 소년은 어린 나이에 이미 애국자가 돼 있었다. 에티오피아를 가난과 질병 속에서 구할 희망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용기를 내 소년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수많은 나라들이 에티오피아를 돕고 있는데 왜 에티오피아는 여전히 가난한지, 다른 나라가 어떻게 에티오피아를 도왔으면 좋겠는지 말이다. 다소 어려운 질문이었다.

"국제 원조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아주 좋다는 거예요. 원조를 받아서 에티오피아인들이 굶어죽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아프지 않게 된 것은 아주 좋아요. 저도 어른이 되면 에티오피아인들을 도울 거예요. 에티오피아 뿐 아니라 아프리카에 다른 가난한 나라 지부티·우간다·아이티 같은 나라를 돕고 싶어요.

다른 하나는 나쁘다는 거예요.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힘도 세고, 머리도 좋고, 잘 생기고, 오랜 역사와 문화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원조를 받아서 살다 보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놀거나 잠을 자요. 학교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아요. 그건 나쁘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그냥 도움을 주지 말고 협력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중국이 에티오피아에 도로를 건설하고 건물 짓고 있는데 많은 에티오피아사람들이 거기에서 일자리를 얻고 있어요. 그러면 중국도 돈을 벌고 에티오피아인들도 일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으니 좋지요.

그리고 한별 학교 같은 좋은 학교가 많이 생겼으면 해요. 학교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어요. 왜 잘 살아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 왜 외국의 원조에만 매달리면 안 되는지를 가르쳐주거든요.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우리들에게 희망과 꿈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줬어요."

암마누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가 말하는 희망을 봤다. 에티오피아 전역에서 수많은 암마누엘들이 키워진다면 에티오피아는 '테스파(희망)'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년의 얼굴에서 밝은 빛을 본다. 에티오피아를 밝힐 사람의 빛이다.

암마누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암마누엘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에티오피아의 희망입니다(이네 에티오피아 우스트 테스파 알렝)."



덧붙이는 글 |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격려와 사랑을 전달해 주세요. 밀알복지재단(02-3411-4664)에 전화하시면 후원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밀알복지재단 누리집]을 통해서도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울지마 아프리카, #밀알복지재단,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딜라 한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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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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