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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엄마 많이 닮았는데 창기는 아버지랑 똑같으네."

어려서부터 너무도 많이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그 말 들을까봐 저에게 그 말 하신 어른이 보이면 얼른 다른 골목으로 돌아서 가거나 숨어 있다가 그 어른이 지나가면 쏜살같이 달아나곤 했습니다. 그만큼 저는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이 어려서부터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50줄. 결혼한 지 19년. 그동안 생계 유지하려 바쁘게 살아온 탓에 세월이 어찌 흘러 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울을 보노라면 풋풋했던 시절의 젊은 얼굴은 어디 가버리고 없으며 머리카락은 온통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듯합니다.

어린시절은 한 발 앞에 있는 느낌입니다. 강원도 평창군 평창면 대상리 산골 화전민 부모 슬하에서 태어나 단양 산곡, 춘천을 먹고살려고 떠돌아 다니다 6살 무렵 울산 염포란 동네에 이사와 살게 되었습니다. 누더기 옷을 벗으면 이가 버글거리고 머리에도 이와 서캐란 것이 버글거렸습니다. 머리는 자주 감지 않아 헌디(부스럼)가 덕지덕지 나 있고 코를 찔찔 흘리며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의 가난이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내려앉은 것이지요.

아버진 맨정신, 그러니까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선 호인으로 통했습니다. 맨정신일 땐 말수도 적고 화내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술만 취하면 사람이 180도 돌변했습니다. 이웃과 사사건건 시비가 붙고 집에 오면 뭣이 그리 불만인지 어머니만 보면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술 취해서 밤새도록 큰 소리로 떠들거나 어머니와 싸움박질 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에 대해 좋게 생각하려야 좋게 생각하질 못한 겁니다.

맨정신엔 '호인'이던 아버지, 술만 마시면...

아버지는 술주정꾼인 반면, 어머니는 자식 셋 키우려고, 이틀을 멀다하고 술 취해와서 못 살게 구는 남편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좋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나쁜 편입니다.

"술이 '웬수'다 술이."

어머니는 "너희들은 절대로 술 먹지 마라. 술이 웬수다. 술이"라고 어려서부터 신신당부 했습니다. 매일같이 술 취해서 난폭하게 변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다짐하곤 했습니다.

"우린 절대로 술 마시지 말자."

저는 맏아들입니다. 제 밑으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습니다. 여동생이 아버지를 닮았는지 '술발'이 셉니다. 남동생과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폭군 유형을 너무 많이 보아와서 그런지 술만 보면 싫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그 영향 때문일까요? 저는 오늘날까지 술 있는 곳에는 가까이 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직장 회식 때가 가장 불편합니다. 직장 높은 사람들이 술을 권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술 문화가 자리잡다보니 술 못 마신다 해도 꾸역꾸역 주는 분들 보면 얄밉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회식 가도 밥만 얼렁 먹고는 나와버립니다.

일제시대 학교 문턱에서 일본말 조금 배우다 만 아버지. 위 형에게 부모 재산 다 빼앗기고 남의 집 머슴 살면서 살아온 아버지. 그렇게 몸뚱이뿐인 채로 아무런 지식도 없이 아무런 손재주 없이 단순 노동을 하면서 살다간 아버지. 결국엔 술 취한 채 목욕하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 한편으론 가엾기도 합니다.

다르게 살겠다 맹세한 나...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저도 이젠 결혼 19년차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딸도 있고, 초등학교 6학년 아들도 있습니다. 저는 자식들에게 제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버지 싫다"는 소릴 듣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저도 아버질 닮아 그런지 눈썰미도 없고 눈치코치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치이기도 많이 치이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술을 좋아해서 그렇지 나쁜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좋은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지 아직 모릅니다. 돈 많이 벌어야 좋은 아버지라면 저는 빵점짜리 아버지입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못하는 게 바로 그 돈을 버는 일입니다. 어찌해야 좋은 아버지인지 모르는 것과 같이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버는지도 모르고 살기 때문이지요.

나이 들면서 생각해보니 아버지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의 술주정 덕분에 저는 술을 마시지 않고 사니까요. 술을 마시지 않으니 술 많이 취하면 할지도 모를 실수를 하지 않고 살 수 있잖아요. 부전자전이란 말이 있더군요. 저는 "나는 아버지와 다르게 살 것이다"고 어려서부터 맹세했습니다.

술주정꾼 아버지, 무식한 아버지, 못 배운 아버지, 손재주 없는 아버지, 돈 못 버는 아버지란 수식어들이 저의 아버지에게 따라 다녔었습니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저는 "나는 절대로 아버지 닮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저에겐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스승일지도 모릅니다. 나이 50이 되어서야 그런 진리를 깨닫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만화가 박재동 <아버지의 일기장> 출간 기념 기사 공모' 글입니다



태그:#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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