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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야채 세척포장, 일급 5만5000원, 당일지급, 초보가능."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별다른 조건을 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급여를 당일에 지급한다니. 지난 8월 말, 개강을 앞두고 학교를 다니면서 할 알바(아르바이트)나 미리 구해둘까 싶어 알바 사이트를 뒤적이던 중이었다.

그걸 보고 머릿속으로 '이틀이면 11만 원, 나흘이면 22만 원' 하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어떤 알바를 구하려 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방학이 다 가기 전에 단기알바로 돈이나 바짝 벌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 그 짧은 시간 안에 누군가가 이런 '꿀알바' 자리를 빼앗아갈까 싶어 황급히 게시글을 클릭했다.

알바를 구하는 곳은 한 대형마트에서 운영하는 농산물 가공·유통센터로, 추석 특수를 대비해 과일이나 야채를 선별하고 포장할 단기알바 인력을 구하고 있었다. 휴게시간과 점심시간을 빼고 대략 8시간을 일하는데, 대충 계산해도 시급이 약 7천 원이었다.

'최저'시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알바시장에서 '기준'시급이 되고 있는 5210원과는 앞자리부터 달랐다. 해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초보자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니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담당자에게 곧바로 문자를 넣었다.

공장은 내가 사는 도시의 외곽에 있었다. 오전 8시 30분 근무 시작시간보다 30분 일찍 오라는 말에 8시도 되기 전에 공장에 도착했는데, 벌써 근무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부분 중년 여성이었고, 가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대생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을 따라 눈치껏 출석체크(?)를 하고 근무복을 받았다. 근무복은 반도체 공장에서 입는 방진복과 비슷했다. 머리와 귀까지 모두 가리는 모자에 등산화 같은 무거운 작업화까지 착용해야 했다.

추석 대목을 맞은 농산물 유통센터
 추석 대목을 맞은 농산물 유통센터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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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자리 있거든요"... 로커룸부터 시작된 '멘붕'

근무복을 갈아입기 위해 들어간 로커룸에서 나는 그야말로 '멘붕'이 됐다. 옷을 갈아입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몇 개의 로커를 열어봤지만 모두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근무시간이 멀었는데도 먼저 작업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이런 사정을 미리 알고 로커를 차지한 듯했다.

나와 같은 처지였던 어떤 언니는 빈 로커 찾기를 포기한 듯 어느새 로커룸 한쪽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서 주섬주섬 작업복을 입었다. 민망하기 그지 없었다. 옷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방을 보관할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바닥 한쪽에 가방을 놓았다. 다행히 별다른 귀중품을 가져오진 않았지만, 괜히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학생 이거(가방) 밀어놔. 여기 자리 있거든요."

반말과 존댓말이 섞인 오묘한 외침. 바닥에 가방을 놓자마자 옆쪽에서 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싶어 돌아보니, 맞았다. 바닥도 겨우 한 뼘 차이로 임자가 있는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가 나누어졌다.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로커룸보다 더 치열한 곳은 공장 안이었다.

공장 안의 공기는 추위를 느낄 정도로 서늘했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가 요란한 소음을 내고 있었다. 분위기에 위축되었지만 현장 관리자의 말을 따라 눈치껏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다. 오렌지로 시작된 일은 자몽에서 사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앞쪽 라인에서는 수입산 포도를 포장하고 있었고, 뒤쪽 라인에서는 추석 선물용 배를 상자에 담고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과일 상자를 내려 상하거나 무른 과일을 골라내고 비닐봉투에 담아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는 일을 반복했다. 어느 것이 버려야 할 과일이고 어느 것이 팔아도 될 과일인지 애매했다. 먹는 입장에서 생각하자니 조금 무른 것쯤이야 괜찮을 것 같은데, 사는 입장에서 생각하니 작은 흠도 걸렸다.

특히나 사과가 까다로웠다. 작고 울퉁불퉁한 사과라도 누군가는 이것을 추석 상차림에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고민이 됐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과일을 골라내나 싶어 주변을 계속 살폈다. 일을 하는 데 있어 '눈치'가 생명이었다.

의자도 없는 곳에서 8시간, 공장 안은 한겨울이었다

하루 종일 공장에서 만진 사과, 사과, 사과...
 하루 종일 공장에서 만진 사과, 사과, 사과...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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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서서 일을 하다 보니 허리와 무릎이 많이 아팠다. 컨베이어 벨트와 그 앞에 있는 포장대는 의자가 있으면 편할 높이였는데, 아무래도 과일 상자를 계속 옮겨야 하다 보니 의자를 놓지 않은 것 같았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몇 시간을 서서 버텨야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추위였다. 공장 안은 냉기가 돌았고 과일 자체도 무척 차가웠다. 특히나 작은 사과를 포장할 때는 손끝이 얼얼했다. 배급된 장갑은 얇은 일회용 고무장갑이라 냉기를 그대로 전달했다. 다른 사람들이 목장갑을 따로 챙겨와 고무장갑 속에 낀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 마스크를 낄 때는 답답했는데 나중에는 마스크가 얼굴로 오는 냉기를 막아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계속 자리를 지키며 과일 포장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라인의 일손이 부족할 경우에는 일을 하다가도 예고 없이 불려나갔다. 특히나 나는 컨베이어 벨트 제일 앞쪽에서 일했기 때문에 곧잘 심부름을 해야 했다. 과일 상자를 옮기거나, 다른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오는 빈 상자를 수거했다. 이와 동시에 포도 포장을 도와주고, 포도를 담은 상자를 쌓기까지 했다.

한번은 작업에 사용할 포도 상자를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달라고 해서 올려주었더니, 다른 관리자가 와서 포도는 작업이 이미 끝났으니 전부 다시 내리라고 한 적도 있었다. 포도라인에 있는 언니에게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설명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고 묻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공장은 원래 그래" 하고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포도를 포장하는 일이 마무리되자 그 인원이 모두 사과 포장으로 몰렸다. 한정된 포장대에 비해 사람이 많으니 그 포장대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모두들 관리자의 눈에 노는 것처럼 보이길 싫어했다. 나 또한 새로운 포장대를 찾아야만 했다. 내가 있었던 포장대는 이미 다른 사람이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는 포장대에 자리를 잡았지만, 곧 원래 자리 주인이 돌아와 비켜주는 것을 몇 차례 반복했다. 하는 수 없이 포장대와 포장대 사이 사과 상자를 올려두는 선반 위에서 포장을 시작했다. 포장대보다 훨씬 높이가 낮아 사과를 하나씩 집을 때마다 몸을 굽혀야 했다. 허리가 무척이나 아팠다.

숨 쉴 틈 없는 공장, 그 속에 삶이 있다

일한 지 하루 만에 손끝이 다 벗겨졌다
 일한 지 하루 만에 손끝이 다 벗겨졌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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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호텔 레스토랑 알바, 콘서트 진행요원 알바, 음식점 서빙 알바 등 다양한 종류의 '육체파 노동'을 해보았지만 이만큼 힘든 적은 없었다. 몸도 몸이지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겪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지시만 있고 설명은 없는 '원래 그런' 공장의 관행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도 그렇지만 포장 부자재를 가져갈 때조차 경쟁하는 분위기도 낯설기만 했다.

다시는 못할 것 같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내게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이 공간이 누군가에겐 매일 마주하는 삶의 터전이었다. 어쩌면 삶의 터전이었기에 그리도 치열했는지 모른다. 기계 소리가 가득한 공장 안에도 '사람'이 있었다. 억척스레 일에 열중하던 아주머니들한테서도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맨얼굴을 드러내면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쉬는 시간이면 한데 모여 "요즘 들어 부쩍 소화가 안 되네" 하면서 소소한 고민을 늘어놓았다.

사과를 포장할 때 무뚝뚝했던 아주머니는 내가 자신의 딸과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한참 수다를 떨기도 했다. 성적 좋은 딸 자랑, 수험생인데도 여자친구를 사귀는 아들 고민까지. 일을 할 때는 볼 수 없었던 생생한 표정이 얼굴에 서렸다.

또 나처럼 처음 일하러 왔다는 한 아주머니는 낮은 선반에서 포장을 하는 나를 걱정해, 자기 포장대를 반 나눠쓰자고 하기도 했다. 포장을 하며 "사과가 참 맛없게 생겼네" 하고 소녀처럼 웃던 아주머니는 공장 안에서 나를 챙겨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모자란 포장 부자재를 함께 나눠썼고, 나중에 다른 아주머니에게 포장대를 빼앗겨 자리를 옮긴 후에도 나를 챙겼다. '처음'이라는 것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일까. 내가 포장을 하고 있을 때 아주머니는 말없이 포장 부자재를 놓고 갔다. 공장 안은 추웠고, 분위기는 냉랭했지만 사람은 참 따뜻했다.

공장은 추석 때까지 쉼 없이 가동된다고 했다. 일하는 사람들은 추석 때까지 휴일이 없다. 대부분은 매일 밤 11시 정도까지 잔업을 한다고 했다. 추석 선물로 포장해야 할 사과가 예정보다 늦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원래 오후 5시 30분에 끝나기로 되어 있던 나의 알바 시간도 이틀째부터는 밤 12시까지 잔업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결국 3일간 하기로 했던 알바를 하루 만에 그만두었다. 다음 날 온몸이 뻐근해 하루 종일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부모님은 "돈 버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냐"고 한마디씩 했다.

이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꿀알바'가 절대 아니었다. 팔다리 곳곳에 멍이 남았다. 그렇지만 상처만 남은 것은 아니다. 한 알의 사과에 치열한 삶의 현장이 녹아 있고, 따뜻한 사람들의 손길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추석상에 사과만큼은 내가 직접 올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장에서 만났던 아주머니들의 손길을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김예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알바, #단기알바, #꿀알바, #추석알바, #추석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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