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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
▲ 숙명여대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 숙명여대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
ⓒ 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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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발생 175일째를 맞은 7일 오후 5시, 서울 청파로 숙명여자대학교 학생회관 6층 강당에 노란 옷을 맞춰 입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들어왔다.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 행사를 위해서였다. 앞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9월 22일부터 이화여대 등 총 18개 대학에서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를 진행했다.

20여 명의 학생들이 내려다보이는 단상 위로 올라간 3명의 유가족은 하나같이 자신을 '누군가의 엄마'로 소개하며 말문을 열었다. '2학년 9반 예지 엄마' 엄지영(38)씨, '2학년 7반 수빈 엄마' 박순미(40)씨, '2학년 10반 경주 엄마' 유병화(40)씨 그리고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류씨. 소개가 끝나자 영상 <당신의 바다, 우리의 바다 : 세월호 참사 146일의 기록> 상영이 이어졌다.

스크린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유가족들은 고개를 숙인 채 영상을 보지 않았다. 그저 소리를 들을 뿐이었다. 영상을 상영하기 위해 꺼두었던 전등이 켜지자, 유가족들은 모두 눈물이 고인 눈을 감추기 위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말문을 연 것은 '경주 엄마' 유병화씨였다. 현재 유씨는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심리치료생계지원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씨의 딸 고 이경주양은 세월호 참사 일주일 뒤인 4월 23일, 유씨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가슴에 돌덩이 하나 올려놓은 것처럼 아픈데, 이젠 눈물도 말라버린 것 같다"며 담담히 세월호 참사 이후의 삶을 말하던 유씨는 딸의 생일이었던 9월 29일의 일을 이야기하며 처음으로 웃음지었다.

고 이경주양의 친구들은 생일 축하 영상과 우정 반지를 만들어 유씨를 찾아왔다. 이들은 딸의 유품이 택배로 배송되었을 때도 유씨와 함께했다. 유씨는 "웃으면서 그날(고 이경주양의 생일)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고 말하면서도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죽었다는 생각 안 해요... 엄마들이 못 받아들이고 있어요"

숙명여대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
▲ 숙명여대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 숙명여대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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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미류씨
▲ 발언하는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미류씨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미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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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예지 엄마' 엄지영씨는 출근을 하던 중 남편으로부터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은 당시의 기억을 되짚었다. 딸은 '그 배'에 타지 않았을 것이라 되뇌며 도착한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보았다. 고 박예지양은 사고 발생 8일 후인 4월 24일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엄씨는 여전히 딸이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우리 예지 수학여행 갔지' 하며 죽었다는 생각을 안 해요. 엄마들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요. (바닷속에서) 아이들의 가방이 하나둘씩 나오면 엄마들은 그 진흙 묻은 가방을 밤새 울며 빨고 있습니다. 손이 피가 날 정도로요. 닦고 또 닦고…."

이야기를 들으며 입술을 깨물던 '2학년 7반 수빈 엄마' 박순미씨는 5월 1일이 돼서야 고 이수빈군을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고 이수빈군의 몸은 상할 대로 상해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인 박씨조차 보지 못했던 고 이수빈군을, 중학교 2학년인 고 이수빈군의 동생은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입관식 날) 수빈이 동생이 형을 보겠다고 떼를 써서 보여줬어요. (수빈이 동생이 수빈이를) 보더니 장의사한테 '우리 형아 아니잖아요'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수의를 확 벗기는 거예요. (수빈이 동생이 수빈이의) 머리카락과 귀 뒤 이런 곳을 확인하더니, '엄마 우리 형아 맞네. 형아 왜 죽었어?' 물어요. 제가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형 잘 보내주자' 이 말밖에 못하겠더라고요."

무엇이든 잘 해내는 형이자 동생의 롤모델이었던 고 이수빈군은 구조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고 했다. 몸으로 창문을 깨려 했던 고 이수빈군은 치아 3개를 잃은 채로 발견되었다.

"저희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저 아이만 키우고 가정주부로서 살아왔으니 수사권·기소권이나 법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망치로 (창문을) 조금만 깨줬다면 한 명이라도,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살아남지 않았을까…. 이 아이들의 운명이 여기까지가 아니라는 걸 잘 아는데, 왜 무참히 운명이 뒤바뀌었는지 저희는 알고 싶어요. 다른 것은 필요없어요."

"세월호 수사 결과 발표, 오히려 진실 은폐 시도에 가깝다"

숙명여대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에서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학생
▲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학생 숙명여대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에서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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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발견된 고 박예지 양의 핸드폰에서 나온 2014년 계획
▲ 고 박예지 양의 2014년 계획 얼마전 발견된 고 박예지 양의 핸드폰에서 나온 2014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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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이 이야기를 마치고 간담회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미류씨는 잠시 멋쩍어하다 곧 강한 어조로 세월호 참사의 문제점과 진상 규명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누가 컨트롤 타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정부의 수장이 어떤 노력을 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엇보다 유가족들이, 수많은 피해자들이, 국민들이 평가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미류씨는 이런 의미에서 10월 6일에 있었던 검찰의 세월호 수사 결과 발표가 "오히려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평했다.

학생들이 유가족을 위해 써온 편지를 낭독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도 이어졌다. 학생들의 질문은 유가족의 일상부터 생존 학생들의 근황, 최근 이루어진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에 대한 의견까지 다양했다. 질의응답 내내 무겁던 분위기는 "아이들이 무엇을 꿈꾸었는지 궁금하다"는 한 학생의 질문에 한결 가벼워졌다.

꿈은 없었지만 친구들과 후배에게 의리가 있었던 고 이경주양, 올해엔 다이어트를 하고 성적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고 박예지양, 영화배우 김수현을 닮았다는 '만능 엔터테이너' 고 이수빈군. 유가족들은 여느 부모처럼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행복해했다. 그러면서도 꼭 말미에는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공식적인 간담회 일정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가방과 간담회 참석자 이름이 적혀 있는 명부를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어진 간담회가 마무리되었지만, 학생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단상에서 내려온 유가족의 손을 잡았고, 포옹을 했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들었다. 고 이경주양의 생일에 친구들이 만들어준 축하 영상을 함께 보기도 했다.

몇몇 학생들은 건물 밖까지 유가족을 배웅하러 나갔다. 인사가 길어지자 엄지영씨는 "아이들(학생들)이 추워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유가족과 학생들은 못내 아쉬운 듯, 다시 한 번 포옹을 하고서야 헤어질 수 있었다. 유가족들은 안산과 진도에서 다시 만나자는 당부를 남긴 채 떠났다.

고 이경주 양의 얼굴이 그려진 가방을 선물 받은 유병화씨
▲ 고 이경주 양의 얼굴이 그려진 가방을 선물 받은 유병화씨 고 이경주 양의 얼굴이 그려진 가방을 선물 받은 유병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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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
▲ 숙명여대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 숙명여대 세월호 유가족 캠퍼스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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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예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세월호 , #간담회, #숙명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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