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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자생, 15년여 동안 어린이와 청소년, 주민들의 문화공동체로 각광받던 한 청소년공간이 문을 닫을 처지에 놓여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은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마을공동체 즐거운가(家). 즐거운가는 1999년 문정동 개미마을의 비닐하우스촌 공부방 '송파 꿈나무학교'에서 그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문정동 끝자락 개미마을. 고층빌딩과 비닐하우스촌이 공존하던 곳에서 마땅히 갈 곳이 없고 뛰어 놀 곳이 없던, 부모님이 직장에 간 뒤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던 그 아이들을 지역의 주민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특히 그 부모님들이 함께 아이들을 키우자며 한 푼 두 푼 모아 공부방을 만들었다. 특히 현재 즐거운가를 이끌고 있는 엄미경(별칭 방글이) 선생님과 이윤복(별칭 복실이) 선생님의 노력도 컸다.

까만 비닐을 씌운 공부방 '꿈나무학교'와 비닐하우스 마을의 너른 논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아동청소년의 건강한 꿈의 성장을 위한 소문에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가 빠진 기타와 폐타이어를 드럼 삼아 에너지를 발산했다. 한 해가 지나면서 '무지개빛 청개구리'라는 명칭으로 변경되며 톡톡 튀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그 모습을 갖춰갔지만 늘 들려오는 개미마을 철거 소식에 불안한 운영은 계속됐다.

즐거운가에서 아이들이 자체적으로 결성한 밴드 공연을 하고 있다. 행복한 청소년들의 모습이 정겹다.
 즐거운가에서 아이들이 자체적으로 결성한 밴드 공연을 하고 있다. 행복한 청소년들의 모습이 정겹다.
ⓒ 즐거운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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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1318해피존에서 청소년 전용 지역아동센터를 만든다는 소식은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소나기같은 단비였다. 동생들이 행복한 공간에서 지냈으면 좋겠다며 마음을 모으고 제안서를 직접 작성한 고3 청소년들의 간절한 소망은 2006년 12월 10일, 행복날개를 달게 된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점점 늘어가는 아이들의 수에 비해 지역아동센터 공간으로는 전부 소화가 어려워 동아리 활동과 일부 프로그램은 아직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던 개미마을 비닐하우스에서 진행했지만 결국 개미마을이 철거되어 다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막막함 속에 결국 호소할 곳은 다시 마을 주민이었다. 아이들이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며 하루종일 재잘거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은 곧 가난한 아이들의 미래가 어두워진다는 절박함이 엄습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지혜를 모으기 시작하자 기적은 청소년의 푸르름처럼 다시 청개구리들을 찾아왔다.

보증금 2천만 원에 월세 130만 원이었던 곳을 월세 90만 원에 해 주었고, 지역 마을의 여러 주민들이 이들을 위해 팔을 걷어 붙인 것. 주변의 회사들이 후원금을 내기 시작했고 주민들도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유산을 기부하는 분도 생겨났고 아이들이 직접 공간을 디자인하고 전문가들이 인테리어를 지원하며 마을 건설회사가 공사를 맡았다. 공간뿐 아니라 공간을 채울 집기인 선풍기, 냉장고, 책상과 의자, 화분 등도 마법처럼 마을 주민들이 채워주었다. 아이들 교복이 찢어지면 무료로 수선해주는 곳이 생겨났고 아이들 이발은 반값도 생겨났다. 그야말로 자생적인 마을공동체 '즐거운가'의 탄생이었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함께 웃는 청소년/마을공동체 즐거운가.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함께 웃는 청소년/마을공동체 즐거운가.
ⓒ 즐거운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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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가는 밴드연습실, 암벽등반 벽, 댄스연습실, 카페, 식당, 도서관, 샤워 실, 세면대, 사무실 등으로 60평의 규모를 갖췄다. 서울시로부터 청소년휴카페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즐거운가는 단순한 청소년휴카페가 이미 아니었다. 단순히 청소년을 위한 공간에서 지역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질적 성장을 이룬 것.

주민들은 이곳에서 직접 밥도 해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아이들과 직접 소통하며 그야말로 마을공동체의 원형을 보여줘 왔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다시 즐거운가를 찾아 아이들의 멘토도 되고 있다. 문정동 로데오거리에서 매달 즐거운가 청소년들로 구성된 밴드의 공연이 이뤄지고 정기적으로 '동네 국수나눔 잔치'도 진행하고 있다.

즐거운가는 지역 주민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졌고 이젠 다양한 꿈을 꾸고 있다. 요리, 연극, 영화, 만화, 밴드, 춤, 노래, 기타, 제과제빵, 천연비누, 미디어, 인문학 강좌, 바리스타, 목공, 도예 등 다양한 활동들이 즐거운가와 마을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역 주민과 학부모들이 청소년들의 선생님이자 멘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2010년 10월에 문을 연 즐거운가가 다시 매서운 시련을 맞고 있다. 즐거운가 건물이 작년에 팔려 새로 바뀐 집주인님이 오는 7월에 공간을 비워달라고 한 것. 합법적인 요구라 집주인을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인데다가 지금 가진 돈으로는 이 규모의 공간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즐거운가의 하소연이다.

아이들이 직접 제작한 호소 피켓.
 아이들이 직접 제작한 호소 피켓.
ⓒ 즐거운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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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공동육아 품앗이을 하며 비닐하우스 공부방과 인연을 맺어 여기까지 온 민간 청소년공간이자 마을공동체. 이들은 이야기한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생각하니 기적같은 순간이 정말 많았어요. 즐거운가는 저희 무지개빛청개구리 지역아동센터뿐만 아니라 주변의 청소년들에게도 꿈을 꿀수 있고 놀 수 있는 공간이 돼주었는데 이제 저희는 즐거운가 같은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저희 청소년들은 모두 다같이 꿈을 키울 배움의 장과 맘껏 놀수있는 놀이터를 잃은 셈이 돼버렸습니다.

어찌됐거나 일단 7월 2일 날 즐거운가가 이사를 가야 되는 것은 확정이 됐으니 이사 가지 않게 해주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만. 즐거운가를 살려주세요!"

항상 아이들의 웃음이 넘쳐나는 곳, 주민들의 손길이 따뜻하게 묻어난 곳, 즐거운가는 지금 신음 속에 스러져 가고 있다.

▲ 즐거운가의 땀과 눈물의 발자취 지역에서 자생, 15년여동안 어린이와 청소년, 주민들의 문화공동체로 각광받던 문정동 "즐거운가"가 문을 닫을 처지에 놓여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 즐거운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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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위키트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즐거운가, #청소년휴카페, #마을공동체, #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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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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