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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커플, 'Jamie&Scott'의 하루하루 이야기입니다. 미국인 남편과 함께 버지니아주 어딘가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어요. 달달한 신혼 이야기도, 새로이 정착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이야기도 들려드릴게요. 생기 있게 살고 용기 있게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저희 둘의 날들을 지켜봐 주세요! - 기자 말

전기세가 많이 나올까 전전긍긍했던 한국 생활이 엊그제 같은데... 미국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기세가 많이 나올까 전전긍긍했던 한국 생활이 엊그제 같은데... 미국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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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벌써 반 이상 지나갔다. 더위는 한창이지만.

많은 한국의 가정들이 그렇듯이 (한국에서) 우리 집도 진짜 '절약'을 지향하는 가정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화장실 갔다가 실수로 불이라도 안 끄고 나오면 잔소리, 부엌 들렀다 불 안 끄고 나오면 잔소리, 냉장고 문 오래 열어놓고 있음 잔소리, 물 틀어놓고 잠깐 딴짓하면 잔소리였다. 덤벙대는 게 특기인 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탓에 자연스레 나도 절약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쪄 죽는 여름에도 우리 집은 거의 선풍기만 틀었다. 에어컨은 여름 석 달 중 하루, 이틀 정도 트는 게 전부였다. "이럴 거면 에어컨을 왜 샀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엄마와 아빠가 허락하지 않아 그저 선풍기에 만족하고 말았다. 그게 내 어린 시절이었다. 자취했을 때는, 워낙 작은 원룸에 살아서 전기세가 겨우 몇천 원 수준이었다. 덕분에 고향 집에 살 때보단 넉넉하게 에어컨을 틀며 시원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정말 너무하다. 여름 3개월 내내 에어컨을 틀어 놓는다.

하루 종일 에어컨 트는 미국, 이래도 괜찮아?

스캇과 나 그리고 하우스메이트 셋이서 사용한 전기 요금 고지서. 그렇게 펑펑 썼던 걸 생각하면, 상당히 양호한 수준의 돈이 청구됐다.
 스캇과 나 그리고 하우스메이트 셋이서 사용한 전기 요금 고지서. 그렇게 펑펑 썼던 걸 생각하면, 상당히 양호한 수준의 돈이 청구됐다.
ⓒ 이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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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내가 한국에서 살아왔던 식으로 지냈다. 낮에 한창 더울 때만 잠깐 에어컨을 틀었다가 약간 공기가 시원해지면 다시 끄고, 거의 선풍기에 의지했다. 더우면 샤워를 하는, 그런 생활. 종종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스캇의 절친이자 다음달에 나갈 예정인)가 '덥지 않냐?'라고 물어도 그냥 정말 말 그대로 '덥지 않느냐'는 뜻인 줄 알고 '괜찮은데?'하고 넘겼다. 게다가 스캇도 별말 하지 않아서 아무 문제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시엄마가 뭘 갖다 주러 우리 집에 오셨다가 에어컨을 안 튼 우리 집에 완전히 기함을 하셨다. "너희 왜 에어컨 안 틀고 사냐"고, "에어컨 좀 틀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날이 꽤 더워지니까, '에어컨을 조금 더 오래 틀면 되겠지'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내가 분명 거실 에어컨을 끄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켜져 있는 것이다. 우리 침실 문도, 동거인 방문도 닫혀있는데 거실만 에어컨 바람이 빵빵하다. 시원하다 못해 추울 정도였다. 거실에 아무도 없는데 에어컨을 밤새 뭐하러 켜겠나. 그래서 난 당연히 에어컨을 껐다. 근데 또 그 다음 날 밤, 분명 나는 스캇이랑 자기 전에 에어컨을 껐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또 켜져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진짜 이상했다. 에어컨이 자기 마음대로 껐다 켰다 하나? 자동 설정을 한 것도 아닌데!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지난 6월 13일. 스캇과 내가 놀러 가던 날이었다. 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는데 스캇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자연스레 문자를 같이 확인했다. 하우스메이트의 문자였다.

"어쩌고저쩌고 'fxxking' 에어컨이 또 꺼져있어."

알고 보니 지난 며칠 동안 나는 열심히 에어컨을 꺼대고, 얘는 열심히 켜댔던 것이었다.

난 정말 이해가 안 됐다. 누가 거실에서 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방문을 열고 자는 것도 아닌데 왜 한밤중에 빈 거실에 있는 에어컨을 계속 틀어놔야 하지? 진짜 엄청난 전력 낭비 아닌가. 자기는 전기요금이나 물세 같은 돈 안 낸다고 마음대로 쓰겠다는 건가 뭔가. 그 전기세는 오롯이 우리 스캇 월급에서 나가는데!

내가 투덜투덜 대니 스캇이 그제야 말했다. 원래 여긴 에어컨을 그냥 하루 종일, 여름 3개월 내내 틀어놓는다고. 심지어 예전에 같이 살던 룸메이트는 더위를 많이 타서 4월부터 9월까지 에어컨을 틀어야 했다고. 뭐? 그게 사실이야?

여행에서 돌아와 시엄마를 만났다. 에어컨 이야길 꺼냈다.

"나는 한국에서 진짜 전기, 물 절약하며 살아와서 이런 게 정말 이해가 안 돼요. 3개월 동안 에어컨을 틀어놓는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그랬더니 시엄마는 오히려 나를 이해 못 했다.

"그럼 여름에 어떻게 사니? 에어컨을 적당한 온도로 맞춰놓고 자동으로 작동됐다가, 꺼지다가 하도록 오토매틱으로 설정해 놓는 게 이곳에서는 기본이야."

모든 집이 다 그렇게 산단다. 옆에 계시던 시아빠도 동의하셨다. 오히려 "덥다고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면 전기가 더 든다"고, "이게 더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절약'이라니요, 시아빠…. 그나마 '덜 낭비'하는 방법이겠죠….

하여튼 나는 그동안 당연히 한국에서의 방식대로 살았고, 스캇은 굳이 나에게 태클을 걸지 않았다.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는 내가 더운데도 에어컨을 틀지 않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걸 나는 그제야 알게 됐다.

어쨌든 내가 지금 사는 곳은 미국이고, 나랑 스캇 둘만 살면 우리만의 룰을 새로 만들 수 있지만, 같이 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 때문에라도 당분간은 미국의 방식대로 살기로 했다.
처음에는 전기가 너무 아까워서 혼자 전전긍긍하고, 스캇은 옆에서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난 대신 에어컨을 제외한 모든 전기를 아끼려 노력하고 그렇게 지냈다.

아둥바둥 500kw 아꼈는데 요금은 고작 2만 원 차이

한국전력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미국에서의 전기 사용량을 입력해보았다. 자그마치 58만 원의 요금이 나왔다. 미국과 비교하면 4배 이상이다.
 한국전력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미국에서의 전기 사용량을 입력해보았다. 자그마치 58만 원의 요금이 나왔다. 미국과 비교하면 4배 이상이다.
ⓒ 이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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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달이 지나 전기요금 고지서가 왔다. 124달러(약 14만4300원) 정도 나왔다. 방이 3개인 주택에서 24시간 에어컨 틀고 산 것치고는, 걱정했던 것보단 낮은 금액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가정용 전기에 누진세가 없으나 마찬가지라 전기요금이 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궁금해졌다. 이만큼 쓰면 한국에선 얼마가 나올지…. 한국전력공사 홈페이지의 '전기요금 계산기'로 비교해 봤다. 지난달 우리가 사용한 전기량 1054kW를 입력했더니 58만3600원으로 미국 전기요금과 비교해서 4배 이상이었다.

고지서에 나와 있는 작년 7월 전기량도 확인했다. 1560kW. 스캇 말로는 140달러 정도(약 16만3000원) 전기세를 냈다고 한다. 한국 전기요금으로 계산했더니 99만1780원. 작년 이맘때도 이 집엔 세 사람이 살았다. 그때는 나 대신 다른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이 집에 오고 나서 사용량으로는 500kW, 전기요금으로는 40만 원 이상(물론 미국 기준으로는 2만 원 정도에 불과하지만)을 아낀 셈이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에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나는 한국 가정용 전기요금의 현 상황이 부당하다고 느껴지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정말 이 나라 사람들 진짜 절약에 무덤덤한 것 같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이 기준이니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다. 정말 할 말이 많다. 스캇은 내가 와서 같이 살기 전까지 컴퓨터를 24시간 내내 켜놓고 살았다. 심지어 절전상태도 해제되어 있었다. 하우스메이트는 매번 샤워기 물을 틀어놓고 5분 동안 딴 짓한 후에야 샤워를 시작한다. 천장 등과 함께 연결되어있는 커다란 선풍기 팬도 24시간 내내 켜놓는 게 당연한 곳이었다.

지난 4월, 둘째 언니와 스카이프로 영상 통화를 하는데 언니가 "지금 덥냐"고 물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대답했더니 "근데 팬을 왜 켜놓고 있노"(우리집은 경상도다)라고 물었다. 순간 '정말로' 이유를 몰라서 "몰라? 여긴 그냥 평소에도 틀어놓더라"라고 대답했었다.

외출해도 방의 전등이나 선풍기를 절대 안 끈다. 그냥 365일 켜놓는다. 그나마 내가 이사 오고 나서 적어도 스캇과 내가 쓰는 방은 필요할 때만 켜는 식으로 바꿨다. 여기 사람들은 날 이해 못 하겠지. 오히려 나를 과하게 절약에 집착하는 아시아 여자애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 아빠에 비해선 새 발의 피도 못 되는데….

전기요금을 고려하지 않고 생각한다면 에어컨을 틀고 시원하게 지내니까 좋은 게 사실이다. 근데 그래도 난 아직 마음이 편하지 않다. 기록적인 폭염에 벌게진 얼굴로 선풍기에만 의지해가며 지내고 있을 우리 가족들이 눈에 훤하니까.

하우스메이트는 다음 달에 이사를 나갈 예정이다. 그럼 내 마음대로 더 아끼며 살아야겠다. 그때면 여름도 거의 끝이지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자민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오늘은 오늘생각>(http://jaykim237.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신혼생활, #미국, #에어컨, #전기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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