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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부속 한방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할 때였다. 대학 한방병원에는 주로 중풍 환자나 추간판 탈출증(디스크)환자가 입원환자의 주류를 이룬다. 당시 병동에서 근무했던 나는 조 동숙(가명)이란 환자를 잊지 못한다.

이 85세 할머니는 뇌출혈로 오른쪽이 마비되어 있었고 중증의 치매를 앓고 있었다. 다른 대학병원에서 뇌출혈 수술을 한 지 2년이 넘었다. 더 이상의 물리치료는 진전이 없었고 그나마 더 나빠지지 않게 보존 치료를 하는 상태였다. 양방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자 한약으로 몸의 균형을 맞추고 마비된 쪽 순환을 도와주는 침 치료를 받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다.

이 환자의 가장 큰 문제는 잠을 자지 않는 것이다. 밤새 깨어서 혼잣말을 한다. 낮에도 잠깐 까무룩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할 뿐이다. 다른 입원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니 함께 생활은 불가능했고 때문에 비싼 1인실을 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쉴 새 없이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발버둥을 친다. 오른쪽이 마비되어 제대로 설 수도 없다. 낙상은 노인에겐 골절로 이어진다. 이 전 병원에서도 낙상으로 팔이 골절돼 수술을 했다.

이 환자는 어떤 간병인이 와도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다들 짐을 싼다. 간병의 특성상 24시간 함께 지내야 하니 간병인에게도 수면과 잠깐의 휴식은 필수다. 밤새 침대를 흔들고 차고 있는 기저귀를 손으로 잡아 뜯은 후에 그대로 대소변을 본다. 바지며 침구류가 다 젖어 다시 씻겨야 하고 모든 걸 새로 갈아야 한다. 그 과정을 밤새 두세 번만 반복하고 나면 견딜 장사가 없다.

간병인을 구하지 못하는 날이면 환갑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입원실로 온다. 과일 장사를 한다는 이 분은 밤새 엄마와 실랑이를 하다가 새벽이면 엄마를 좀 묶어달라고 내게 부탁한다. 성한 쪽 팔이라도 묶어놔야 기저귀를 뜯지 못하고 침대에서도 내려오지 못 할 테니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 있다.

팔을 침대에 묶어놓아도 소리를 지르거나 침대를 흔들어서 소음을 만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중풍환자에게 강력한 진정제를 쓰는 건 무리가 있고 경구용 진정제는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부탁을 하는 머리가 희끗한 아들의 얼굴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나는 이 환자에게 다가가 성한 쪽 팔을 침대에 묶었다. 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어 아들도 나도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너무 세게 묶으면 아플 거 같아 느슨하게 묶었더니 오 분도 되지 않아 손을 빼버린다. 다시 손목에 솜을 대고 바짝 묶었다. 할머니는 풀어달라고 계속 묶인 팔을 흔들고 아들은 깊은 한숨과 퀭한 눈으로 보호자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나는 조용히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아침이 되자 새로 온 간병인이 왔다. 아들은 또 간병인이 견디지 못하고 가버릴까 봐 새벽에 엄마를 묶었던 붕대를 그에게 건네며 "밤에는 성한 쪽 팔을 묶어 놓으시고 주무세요. 좀 시끄럽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십 년 전 일이다.

이십 년 전의 일이 데자뷔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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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지냈던 이 일이 다시 생각난 이유는 시아버님 때문이다. 94세의 치매가 있는 아버님이 얼마 전 눈길에 미끄러져 고관절 골절이 되었다.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수술은 무사히 잘 되었고 아버님도 잘 견디셨다. 문제는 회복 과정에서 아버님은 시도 때도 없이 몸에 부착된 심박동 측정기를 떼고 소변 줄을 잡아당기고 밤새 혼잣말을 한다.

누군가 옆에 계속 붙어서 팔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같은 말을 무한 반복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가족들도 간병인도 버티기가 힘들다. 간병인이 자주 바뀌었고 그나마 간병인을 구하지 못하는 날이면 남편이 퇴근 후에 그 옆을 지켰다. 밤을 꼴딱 새고 온 남편은 "병원에서 왜 환자들을 묶어 놓은 지 이해가 되네. 고관절 수술이라 당장은 걸을 수 없는데도 침대에서 자꾸 내려오려고 하니 잠시도 한 눈을 팔수가 없어. 다른 곳까지 골절되면 더 큰일이라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아버지를 침대에 묶어놓고 가야해"라고 했다. 천하의 효자인 남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이십 년 전 그 일이 마치 데자뷔처럼 내게 다시 일어났다.

아버님은 수술한 병원에서 3주 만에 퇴원했고 나는 재활이 가능한 요양병원을 알아봤다. 몇 군데를 가보니 요즘에는 시설이 좋은 곳이 더러 있다. 어떤 곳은 대기를 해야 하는 곳도 있는데, 대체로 그런 곳은 병동마다 입원환자 50여 명 정도에 근무하는 간호사 1명, 간호조무사 1명, 그리고 병실마다 4-5명의 환자를 돌보는 간병사 1명이 입원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1명의 간호사는 50여 명 환자의 상태를 정해진 시간마다 기록하고 주사를 놓고 드레싱 및 각종 처치를 한다. 식사라도 하러 가는 시간에는 간호사가 아예 없는 거다. 조무사는 처치를 돕고 활력징후를 측정하고 물품을 챙기고 치료실로 환자 이동을 돕고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부족하다. 병실마다 1명의 간병사가 환자들의 식사를 거들고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 및 옷과 침구류를 갈아준다. 상태가 좋지 않아 손이 많이 가는 환자가 한 병실에 두 명만 있어도 간병사는 밥 먹을 시간이 없다. 시설이 깨끗하고 이런 체계를 가진 곳은 대기를 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간호사 1명이 50여 명의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제대로 된 간호를 받는 다는 게 불가능한 일임을 뜻한다. 환자들은 늘 바쁜 간호사를 자신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기다려야 한다. 어떤 곳은 간병사 1명이 10명이 넘는 환자를 혼자 돌보는 곳도 있다. 이건 실질적으로 환자들이 방치되는 시간이 많음을 의미한다. 당장 대소변을 기저귀에 봤어도 순서대로 9명의 환자를 차례대로 먹이고 씻기고 난 뒤에 다시 그 차례가 온다.

이미 엉덩이는 짓무르고 욕창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치매가 심한 환자의 경우 간병사가 다른 환자를 보살피거나 식사를 할 때는 낙상에 따른 골절 때문에 묶어 놓는다. 그러면 최소 한 시간 이내 묶인 곳의 혈액순환을 위해 풀어주고 마사지라도 해줘야 하는데 다른 환자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이는 사이 몇 시간이 지나도록 풀어줄 틈이 없는 거다. 이들 모두가 직업의식이 부족하거나 게으르거나 무식해서가 아니다. 물론 개인적인 자질이 부족한 사람도 더러 있으나 현실적으로 간호사, 조무사, 간병사도 이 모든 걸 해결하기에는 손이 턱없이 부족하다.

얼마 전 밀양 병원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인명피해가 컸던 이유 중 하나로 결박 환자를 푸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이 꼽혔다. 이런 환경에서 화재나 지진 같은 비상사태라도 발생하면 속수무책으로 다수의 인명피해가 날 수밖에 없다. 결국 인력이 문제다. 턱도 없이 낮은 임금에, 고된 노동으로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가 부지기수다. 

이들을 현실적인 대우로 다시 의료현장으로 끌어 들이고 간호조무사, 간병사의 인력을 늘려야 한다. 수익을 내야하는 병원의 입장도 고려되고, 무엇보다도 환자의 입장에서 인권침해 없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지원받는 방안에 대해 고민했으면.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환자의 인권은 무시되고 비상사태 때마다 다수의 인명이 희생당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태그:#요양병원, #인권,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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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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