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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자녀가 없는 미혼 남성에게 정관수술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토대로 칼럼을 썼다(관련 기사 : 내가 정관수술 하겠다는데 왜 막는 건가요?). 여러 층위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는데, 적절한 분량을 유지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글이 나간 이후, 의사가 직접 한 매체 칼럼을 통해 본인의 의견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글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의사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의사들의 입장이나 생각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관련한 이야기다. 그리고 국가의 인구 재생산이라는 구조에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의사가 아니라 국가에게 듣고 싶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정관수술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지만, 정관복원은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이 사실만을 가지고도 국가의 태도를 알 수 있다고 본다. 국가 차원에서 청년 개개인은 '재생산 도구', 그러니까 하나 이상의 자원을 만들어야 하는 존재다. 국가 주도로 만들었던 가임기 여성 지도를 보면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게 들리진 않을 테다.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모든 정책은 바로 이 '인구 재생산성'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국가가 아무리 수백억 원을 쏟아 부어도 '연령별 인구 그래프'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청년 세대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2월 20대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 '불꽃페미액션'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 국책 연구기관 센터장의 출산율 하락 대책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20대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 '불꽃페미액션'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 국책 연구기관 센터장의 출산율 하락 대책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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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를 거부한다

현재 20대와 30대에게서 뚜렷하게 보이는 하나의 성향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개인주의적 성향이다. 이전의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성향을 공통분모로 가진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대학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고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영화를 보거나 혼자 사는 것을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에선 회식을 거절하고 일상과 일을 철저하게 분리하길 원한다.

이들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서 개인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국가와 개인, 개인과 국가의 관계 설정을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는 데 성공한 세대가 출현했고, 이 세대에게 국가가 재생산을 위해 만든 출산 장려 정책은 아예 '읽히지 않는 문장', 즉 비문이 되었다. 결혼 제도에 대해서도 반문을 던지는 세대에게 출산 장려라니, 수백억 원이 아니라 수조 원을 쏟아도 안 될 일이다.

낙태 문제를 대하는 국가와 청년의 시각 차이도 극명하다. 전대에서 벌어지던 낙태 논쟁에서 국가가 활용하는 주요 논리는 '생명 윤리'였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가동시키기 위한 생산성의 확보라는 다른 차원의 구조를 읽어내고 논점을 '개인의 자유'로 옮겨온 세대를 국가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의 조소담 위원도 "출산보다 낙태할 권리에 더 관심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개인의 자유를 위시한 이 세대는 전대의 청년 세대보다 복잡한 문제를 건드린다. 양심적 병역 거부도 이에 해당한다. 국방이라는 의무의 이행보다 개인의 양심에 따른 의무 거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들을 전대의 국가관으로 묶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며칠 전 이와 관련한 법리 다툼에서 '무죄'를 받아내기도 했다. 어디 이것뿐인가? 올림픽을 위해 남북 단일팀을 추진하는 국가의 태도로부터 청년 세대가 느낀 부당함 역시 마찬가지다.

개헌 논의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현재, 이 새로운 세대는 헌법에서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련의 이런 세대성을 종합할 때, 전대의 국가관이 '지속 가능성을 잃고 말았다'고 선언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국민보다 '개인'이 앞서는 사회
 국민보다 '개인'이 앞서는 사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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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다 '개인'이 앞서는 사회

지금 '연령별 인구 분포 그래프'를 바꾸는 방법은 출산이 아니다. 국가관과 국민의 개념을 수정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이상적이다. 민족주의적 국가관과 국민의 개념을 과감하게 버릴 때, 남은 21세기를 버틸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사실 당연한 명제다. 재생산 가능성을 상실한 국가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타국의 국민들을 끌어들이는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유입된 타국 출신 사회 구성원들의 처지에도 시야를 넓혀야 한다. '한국인'의 개념을 완전히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제 잠깐 만난 대학 시절 스승과의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가 있다. 요즘 청년들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쓰는 것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지옥에 사는 주민들에게 그곳은 지옥이 아니며, 누군가가 그곳이 지옥임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어야만 그곳이 지옥이 된다"고 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지옥임을 알아차린 이에게 그곳이 지옥이 아니라고 해명할 방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관을 업데이트 받은 세대에게 전대의 세계관을 관철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미혼 청년의 정관수술이라는 주제로 던진 질문은 이런 거다. 임신과 출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국가가 관여하는 것은 결국 국가 차원의 재생산과 관련된 이야기고, 그것을 거부하는 '개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제, '개인'의 출현을 직시해야 한다.


태그:#국가, #인구, #출산율, #청년, #정관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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