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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순창읍 한 전파상 유리창에 붙은 '전입신고 대자보'
 전북 순창군 순창읍 한 전파상 유리창에 붙은 "전입신고 대자보"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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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6일, 유리창에 붙은 대자보 한 장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대자보는 전북 순창군 전입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순창에 자주 내려오다 보니 이곳이 너무나 맘에 들고 정착하게끔 저를 이끌더군요. 자신도 모르게 여러분들의 이웃이 되어 있더군요. 불 꺼져 있던 집에 어느 날 갑자기 불이 켜져 있고 움직임이 보이니 궁금하셨죠? 이웃이 되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욕심 부리지 않으려구요. 순창이 참 좋다. 辛丑年 정월 대보름."

15일이 흐른 3월 21일, 또 다른 대자보 한 장에 다시 걸음을 멈췄다.

"많이 기다리셨죠?ㅎㅎ 순창에 온 지 한 달도 넘게 준비보다는 이웃이 되기 위해 친해지는 과정의 시간이었네요. 타지에서 온 이방인에게 따뜻한 말 건넨 이웃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부족하면 노력하고. 넘치면 나누겠습니다. 辛丑年 春分(2021.3.20.)"
  
20여 일 간격으로 붙인 두 장의 '전입신고 대자보'.
 20여 일 간격으로 붙인 두 장의 "전입신고 대자보".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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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입신고 대자보' 붙인 이방인

지난 17일 오후 순창읍시장 군내버스터미널 부근에 자리한 미르전파상에서 황충서(45) 대표를 만났다.

황 대표는 "1월 28일 순창군에 전입신고를 했다"며 "순창이 정말 좋다"고 첫 마디를 뗐다. 그가 건넨 명함의 직장 주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잡한 곳 중 하나인 서울시 강남구였다. 순창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작년 6월 5일부터 자동제어 관련 일을 했는데, 회사에서 저를 그냥 순창에다 내려놓고 갔어요. 일 하다가 서울에 올라가면 답답한데 순창에만 오면 마음이 너무 편해지는 거예요. 하하하."

순창군민으로 생활한 지 막 100일이 지난 황 대표는 "전파상이 시장 입구에 있어서 상인들과도 어느새 많이 친해졌다"고 밝게 웃었다.

대자보를 붙이게 된 계기를 묻자 황 대표는 "제가 평소에 글 쓰는 걸 재미있어 한다"며 "사람들이 여기(전파상)가 뭐 하는 곳인지 자꾸 기웃기웃 하니까 뭐라도 좀 해 보고 싶어서 대자보를 붙였다"고 말했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황 대표는 3살 때 경기도로 이사한 후 8살 때부터 서울에서 생활했다. 아직 결혼을 안 한 그는 37년간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연고도 없는 순창으로 혈혈단신 이주했다. 황 대표는 "심지어는 서울에 있는 것도 많이 버리고 내려왔다"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시골 오니까 경쟁이 의미 없어"
 
황충서 미리전파상 대표는 "회사에서 저를 그냥 순창에다 내려놓고 갔다"며 순창에 전입하게 된 계기를 말하며 웃었다.
 황충서 미리전파상 대표는 "회사에서 저를 그냥 순창에다 내려놓고 갔다"며 순창에 전입하게 된 계기를 말하며 웃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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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표는 순창에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경쟁이 없고, 느림의 미학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을 타려고 해도 빨리 걸어야 해요. 지하철 도착 소리가 들리면 뛰기도 하고, 사람이 많으면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하죠. 걷는 것 하나도, 매 순간순간이 경쟁이고 뭔가에 계속 쫓기죠. 근데 시골에 오니까 그런 경쟁이 의미가 없더라고요. 만나는 주민들마다 오히려 뭐든지 있는 것 나눠주려고 하시고. 푸근해요, 그냥. 하하하."

황 대표는 대화 중간 중간 정말 호탕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시골 생활의 만족이 담겨 있었다. 고민은 있을까. 황 대표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생각보다 손님이 안 오시긴 해요. 하하하. 간판은 전파상이지만 고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고쳐 드립니다. 사람 마음도요. 이곳은 사랑방이니까 지나실 때 한 번씩 오세요. 하하하."

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5월 20일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태그:#전북 순창, #전입신고 대자보, #황충서, #순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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