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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났다. 봄이 오고 있다. 아직 2월이라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일기 예보가 있지만 절기상 입춘이 지났으니 도시농부도 슬슬 올해 텃밭 운영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준비해 나갈 때가 됐다. 자연농의 방식으로 말이다.

우연히 <슬로라이프>(쓰지 신이치, 디자인하우스, 2005)라는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자연농. 그 책에 소개된 자연농은 "벼와 잡초를 함께 키우는 농사'였다. '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처음 들었을 때 그 말은 거짓말 같아서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놔두면 자연은 신기할 정도로 알아서 돌아간다는 말을 믿고 그들에게 의지하면(?) 텃밭 작물을 충분히 키울 수 있다.

거름 만들기

나는 2월 입춘이 지나면 '거름 만들기'를 시작한다. 넓은 땅에 농사를 짓는다면 많은 양의 비료가 필요하겠지만 도시농부의 텃밭 정도면 거름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단,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시간을 들이고 품을 아끼지 않으며 자연을 덜 해치려면 말이다. 

내가 늘 사용하는 거름은 커피박이다. 요즘엔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보니 커피 찌꺼기인 커피박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 나도 집에서 원두를 갈아 드립으로 마시기 때문에 커피박이 제법 모인다. 부족하면 편의점이나 커피전문점에 가도 쉽게 얻을 수 있다. 

커피박을 거름으로 활용하기 좋은 점은 일단 물기가 있어서 따로 수분을 보충해 주지 않고 바로 발효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발효가 잘 되기 위해서는 탄소와 질소의 비율이 적절해야 되는데 커피박은 그 조건에도 잘 맞는다고 한다(호미 한 자루 농법, 안철환, 늘녘, 2016). 공짜로 구하기도 쉽고 그냥 버리면 처리하기가 어려워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고 하니 커피박을 거름으로 만들어 사용해 보자.

우선 수분이 있는 그대로 커피가루를 통에 담아 뚜껑을 덮어준다. 물기가 있어 뚜껑을 계속 닫아둘 경우 곰팡이가 잘 생기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씩 위아래가 섞이도록 뒤적여서 공기가 들어가게 해 주면 된다. 며칠 지나면 뚜껑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발효가 시작되어 온도가 올라가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커피박은 매일 뒤적여주면 좋다. 깜박 하고 며칠 그대로 두었더니 곰팡이가 생겼다.
▲ 커피거름  커피박은 매일 뒤적여주면 좋다. 깜박 하고 며칠 그대로 두었더니 곰팡이가 생겼다.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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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거름을 만들기 시작해서 2주쯤 지나면 부피가 좀 줄어들고 발효가 되어간다. 발효가 잘 되면 찰진 흙같이 쫀득한 질감이 된다. 조건이 잘 맞으면 발효가 되고 아니면 부패하는 것인데 발효가 잘 된 것은 신선하고 좋은 냄새가 난다. 깨끗한 흙냄새와 비슷하다. 그리고 기온이 높아져도 더 이상 곰팡이가 생기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반면 부패한 것은 역한 냄새가 나니 냄새로도 구별할 수 있다.

작물 배치도와 모종 심기

거름을 만들었으면 이번에는 작물 배치도를 그려보자. 작물 배치도는 1년 농사 계획표이다. 대단할 것은 없지만 만들어 놓으면 씨를 심고 난 다음 싹이 틀 때까지 어디에 무엇을 심었는지 알기 쉽고 나중에 다른 작물을 심을 때도 그전에 어떤 작물을 심었는지 알 수 있다. 한곳에 같은 작물을 연이어 심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동반식물을 배치할 수 있어 좋다. 텃밭 작물은 심고 나면 적어도 6개월, 길게는 9개월까지 자리를 옮기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 심기 전에 작전을 잘 짜면 일손도 줄이고 작물도 잘 자라 여러모로 좋다.
 
동반 식물을 배치하기에 좋다. 또 이듬해 작물을 심을 때도 도움이 된다
▲ 작물 배치도 동반 식물을 배치하기에 좋다. 또 이듬해 작물을 심을 때도 도움이 된다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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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 배치도를 그리면서 어떤 작물들을 심을지 정했으면 필요에 따라 모종을 만들면 된다. 자연농에서는 날이 따뜻해졌을 때 씨앗부터 심어 자라게 하는 것이 계절과 작물의 성장 시기에 맞는다고 하지만 어렵다고 느껴지면 시장에서 잘 보이지 않는 모종은 지금부터 집안에서 키우면 된다.

웃거름 만들기

이 시기에 준비해 두면 좋은 것이 또 있다. 바로 웃거름으로 사용할 소변을 모아두는 것이다. 소변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기 때문에 겨울부터 모아서 발효가 잘 되는 봄을 지나 사용하면 된다. 물을 줄 때 섞어서 주면 된다.

또 소변에는 식물의 뿌리 성장을 도와주는 옥신이라는 성분이 있기 때문에 커피박에 수분이 부족할 때 같이 넣어주면 좋다. 발효에 따라 공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는데 소변은 공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뚜껑을 꼭 닫아서 발효시키고 2주에서 한 달 정도 지나면 사용할 수 있다. 

이때 모아 둔 소변을 보면 바닥에 밝은 색깔 찌꺼기가 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변에 있는 아미노산 성분이라고 한다. 내 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성분들이라 면역력에도 좋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처럼 2월부터 부지런히 준비하면 도시농부의 작은 텃밭에서도 자연농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의 작물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태그:#도시텃밭, #자연농, #커피거름, #작물배치도, #웃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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