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후, 수많은 민간인은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함에도 무참히 희생됐다. 함양군은 지리산과 덕유산을 잇는 지리적 여건으로 빨치산이 활동하는 본거지가 되었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 이후 공비토벌작전 중 빨치산을 도왔다는 명분으로 함양에서는 민간인 학살사건이 자행되었다. 함양군 읍면 민간인 80여 명을 포함해 보도연맹, 연고지가 밝혀지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무고한 희생자가 3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함양민간인 희생사건 86명, 강정금 상해사건 1명, 부산형무소 사건 16명, 국민보도연맹사건 29명, 적대세력사건 29명, 전주형무소사건 2명, 산청·거창 등 민간인희생사건 2명, 서부경남민간인 희생사건 15명, 전북지역민간인 희생사건 1명 총 181명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으로 명예를 회복한다.  하지만 70여 년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온 유족들의 설움은 아직도 깊기만 하다. 희생자 유족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그날의 진실이 모두 밝혀지는 날까지 우리는 그들의 기억을 붙잡아 둘 의무를 갖게 됐다. 그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것은 이르다 하기엔 너무 늦었고 늦었다고 하기보단 다행이었다. 아픈 기억을 들추어내야 했던 힘든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증언해 준 유족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한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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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응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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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치라골은 지리산과 덕유산, 감악산 등으로 빨치산들이 근거지를 옮겨 다니는 경로와 접해있는 작은 농촌마을이다. 빨치산들은 지나다니며 총칼로 주민들을 위협해 가축과 곡식을 약탈해갔다. 그즈음 경찰은 빨치산이 마을에 들어오면 지서에 신고하라고 했으나 경찰서와 멀리 떨어져 있던 치라골 사람들은 치안혜택을 받지 못한 채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수동면 죽산리 주민 전재윤은 1949년 9월9일쯤 마을에 나타난 빨치산에게 밥을 해준 일로 수동지서에 끌려가 취조를 당했다. 취조과정에서 경찰이 마을 거주자 20세 이상 남자이름을 적을 것을 요구해 전재윤씨는 이름을 적어주고 풀려났다. 

이후 9월 19일 새벽 수동지서 주임 최홍식과 경찰, 청년단원들은 수동면 죽산리 치라골에 들이닥쳐 18명의 마을주민을 호명해 수동지서로 끌고 갔다. 연행된 마을주민들은 함양경찰서로 넘겨진 뒤 취조를 당했으며 이후 국군에게 인계되어 9월 21일경 이은리 당그래산에서 사살 당했다. 연행된 18명은 주로 20~30대 남성이었으며 남편의 부재로 대신 잡혀간 여성 1명이 포함돼 있었다.

죽산리에서 연행된 주민 18명 중 임기택씨를 제외한 17명이 총살당했다. 임기택씨는 당그래산 현장에서 구덩이를 파다가 어느 군인이 이름을 불러 살아 남았다. 임기택씨 어머니의 젖을 함게 먹고 자란 함양경찰서 사찰계 형사 부인이던 이정자씨는 남편에게 부탁하여 당그래산에서 총살직전 이름을 불려 화를 면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유족들은 희생자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희생현장을 찾아 갔으나 경찰의 제지로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다. 또한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바로 마을을 비우라고 해서 주민들은 아랫마을로 이주했다가 이듬해 봄에 마을로 돌아왔다.

담배잎 따다 잡혀가... 마을 사람들 끌려갈 때 영문도 몰라

임응택씨는 사건이 있기 하루 전날을 기억했다. 비가 왔던 그날 마을 사람 두 명을 잡아갔다. 분위기가 심상찮아서 새벽에 도망을 친 마을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나 그때 여덟살 아홉 살쯤 됐어요. 나는 같이 살고 있던 삼촌을 잃었는데. 나는 그건 알아, 칠월 스물 닷샛날. 그날 비가 왔어. 그 사람들 오기 하루 전날이지, 그 앞날 두 명을 먼저 잡아갔어. 사단이 날상 싶으니까 태구인가 그 양반은 새벽에 먼당까지 올라 도망을 갔어. 사건이 날 줄 알았것지.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알것지."

사건이 있던 그날 한 집에 같이 살던 삼촌은 아침 일찍 담배 밭에 나가 담배잎을 따다가 잡혀갔다. 수동면 치라골에서 잡혀간 사람들은 18명,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그리 됐다.

"지서에서 올라오라 해서 갔는데 몽둥이로 들고 패, 미리 겁이 나서 도망간 사람은 살았지. 18명이 끌려갔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살아왔어, 임기택씨는 살아왔거든. 삼촌은 결혼은 하셨는데 신혼이라 자녀는 없었어요. 젊은 사람만 그리 됐응께 혼인신고 안한 사람도 많았어. 얼추 결혼은 다 하긴 했어도 애 없는 사람도 있었지."

삼촌이 사망하자 임응택씨의 아버지는 한 명뿐인 형제를 잃었고 작은 어머니는 이듬해 설에 개가를 했다.

"마을 사람들 끌려갈 때 아무 영문도 몰랐어. 사상범으로 몰려서 간 거지. 산골짜기 산다고 빨갱이라고. 전부 그리 인정하고 끌려갔지. 경찰에게."

수동면 치라골은 빨치산들의 이동 경로에 맞물려 있던 마을이다. 지리산을 다니던 빨치산은 그 길목에 있던 치라골 마을에 수시로 내려와 총으로 위협하며 먹을 것을 요구했다. 마을 사람들은 목숨이 위태로우니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 줄 수 밖에 없었다.

"빨갱이들이 안내려올 수 있는가. 빨갱이들이 내려왔지, 안의면 황석산으로 해서 식기봉을 지나치면서 밥 해 달라고 하면 무서워서, 안해주고 되나. 그 사람들 시키는 대로 안하면 안돼. 밥 해 줬을 뿐인데 경찰은 밥 해 줬다고 마을사람들을 잡아갔지. 치라골 사람들 이야기가 다 똑같아요. 한 날 한시에 일어난 일이라서."

수동 도북마을 사람들과 한날한시에 당그래산에서 희생됐지만 치라골 사람들은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다. 유해발굴을 위해 찾아간 당그래산은 이미 세월이 흘러 곳곳이 개발되고 파헤쳐져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이 기사는 증언자의 구술을 그대로 살리고자 방언을 사용하였습니다. 구술 내용 중 날짜, 나이 등에는 구술자의 기억에 외곡이 있을 수 있으며 전체 내용 또한 증언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기록됐습니다.

■ 이름 : 임응택
■ 희생자와의 관계 : 희생자의 조카
■ 생년월일 : 1941년 8월16일 / 만 82세
■ 성별 : 남
■ 주소 : 경남 함양군 수동면 치라골길 43
■ 직업 / 경력 : 농업

함양양민희생자 치라골사건

희생자 정보
■ 이름 : 임종수
■ 생년월일 : 1926년생
■ 사망일시 : 1949년 음력7월28일
(당시 23세 가량)
■ 성별 : 남
■ 결혼여부 : 기혼
■ 주소 : 경남 함양군 수동면 치라골39번지
■ 직업 / 경력 : 농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