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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그림 중 '안릉신영도'가 있다. 황해도 안릉에 신임 현감이 부임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행렬 규모가 대단하다. 각종 번기를 든 기수 48명이 앞장을 선다. 그 뒤로 악대, 군인, 아전, 기생까지 긴 행렬이 이어진다. 그림의 길이가 6미터를 넘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요란스럽게 행차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벼슬을 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권력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자기를 무시하는 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임 초부터 자신을 들어내 보이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퇴임 후에는 공덕비를 세운다. 공덕 없는 공덕비가 전국에 많은 이유도 '발자국 찍기'에 몰두한 결과일 것이다.

최승호 시인의 시 '꿩 발자국'이 생각난다.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꿩이 눈밭을 걸어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뚜렷한 족적(足跡)을 위해 어깨에 힘을 주면서 

발자국 찍기에 몰두한 것도 아니리라.

꿩조차 제 흔적을 넘어서 날아간다. 

저자의 죽음이란 흔적들로부터의 날아오름이다. 


꿩은 '어깨에 힘을 주면서/발자국 찍기에 몰두한 것도 아니리라'는 시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안영은 제나라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 안약의 뒤를 이어 상대부 지위를 이어받았다. 그는 걸출한 재상으로 무려 57년 동안 제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재상으로 지내며 명성을 얻은 이유는 검소함과 겸손함 때문이다. 

그는 30년을 오직 여우 가죽옷 한 벌만 입었고, 한 끼에 두 가지 이상의 고기반찬을 먹지 않았으며, 아내가 비단옷을 입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충성은 다했으나 군왕의 명령이 올바를 때만 시행했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기에 힘썼다.

안영과 마부에 얽힌 일화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처세해야 하는지 잘 말해준다. 

안영이 외출할 때 사람들이 안영에게 고개 숙여 예를 표하자 마부는 마치 자신이 안영이라도 된 양 매우 흐뭇해하고 의기양양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마부의 아내가 한마디 했다. 

"안영은 키가 6척밖에 안 되고 나라의 재상 자리에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으면서도 항상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데,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면서 마부로 일하고도 우쭐대고 흡족해하다니, 당신과는 창피해 같이 살지 못하겠으니 헤어집시다."

이 말을 듣고 마부는 절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됐다. 변한 마부의 모습을 보고 이유를 알게 된 후 안영은 마부를 대부로 삼았다. 

한나라 때 만석군 석분의 가문은 관리로서 모범을 보인 가문이었다. 석분 자신뿐 아니라 자식들까지 '어깨에 힘을 주면서 발자국 찍기에 몰두'하지 않았다. 석분의 장남은 석건이고, 그 밑으로 석갑·석을·석경 형제가 있는데, 모두 행실이 착하고 효성스러우며 삼가 신중하게 행동했다.

석건은 황제에게 간언을 올릴 일이 있으면 남들을 물리치고 바로 하고 싶은 말을 다했는데 매우 간절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황제를 알현할 때면 말을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 때문에 황제가 더욱 존경해 예우해줬다.

하루는 내사로 재직하는 막내아들 석경이 술에 취한 후 돌아왔는데, 마을 외문을 들어와서도 수레에서 내리지 않았다. 석분은 그 소식을 들은 후부터 식사를 하지 않았다.

석경은 두려워서 웃옷을 벗어 어깨를 드러낸 채(고대 중국에서 죄인이 사죄할 때는 한쪽 어깨를 벗고 사죄함) 죄를 청했으나, 석분은 여전히 용서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온 식구와 맏형인 석건이 대신 옷을 벗고 어깨를 드러내어 죄를 청하니, 그제야 비로소 석분이 꾸짖어 이렇게 말했다.

"내사는 존귀한 사람이니 마을로 들어오면 마을 안의 어른과 노인들도 모두 황급하게 달아나거나 회피한다. 그런데 내사가 수레 안에 앉아서 태연자약한 것이 참으로 마땅한 것인가!" 

이후에 석경과 석씨 형제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올 때면 모두 수레에서 내려 총총걸음으로 귀가했다.

역사 속에는 안영이나 석분 같은 관리가 있었다. 또 월나라 범려 같은 사람도 있었다. 구천왕이 권력을 회복하고 춘추시대 패자로 올라서자 홀연히 떠난 인물이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난 후 미련 없이 떠난 것이다. 문종은 남아 있다가 죽임을 당했다. 진시황 때 전횡을 일삼은 이사는 오형을 당하고 허리가 잘려 죽었다. 어깨에 힘을 준 결과다.  

오정환 미래경영연구원장
 
오정환 미래경영연구원장 
 오정환 미래경영연구원장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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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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