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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주월순씨
 요양보호사 주월순씨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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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중고령자의 경제생활 및 노후 준비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1인 기준 필요최소노후생활비는 124만 3천 원, 최소한의 의식주 생활 유지에 필요한 적정 노후 생활비는 177만 3천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은퇴 후에도 꾸준한 경제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고령 노동자의 일은 매우 제한돼 있다.

그나마도 '건강이 허락한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을 수밖에 없는 고령 노동자의 일자리. 이런 상황에서 '요양보호사'는 고령 여성 노동자가 흔히 선택하게 되는 직종 중 하나다. 고령의 여성이 사실상 평생 해왔다고 해도 무방한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것이기에 큰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기 때문. 

16년째 방문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주월순(73)씨를 만나 그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주월순씨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곳은 그의 집이 있는 충북 옥천 금구리(옥천읍)가 아닌 마암리(옥천읍)다. 요양보호사를 하기 전 알게 된 홀로 사는 어르신이 딱해 보여 매일 아침을 차려드렸던 것이 몇 년 전부턴 상주하며 돌봐드리는 일로 바뀌었다. 거동도 못 하는 어르신을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게 월순씨의 말이다.

"원래 요양보호사로 일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 어르신은 요양보호사가 아닌, 그냥 저 혼자서 이것저것 챙겨드린 게 시작이었어요. 2년 정도 그렇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드렸죠. 그런데 무보수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지금 제가 일하는 요양보호센터장님이 아시고 도움을 주셨어요. 이 어르신이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밟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이 될 수 있었고요. 그래서 지금은 하루 4시간씩 일주일에 6일은 요양보호사로 급여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죠. 그 외 시간은 그동안 해온 대로 자발적인 봉사 시간이고요. 집에는 주말에 잠깐 다녀오곤 해요."

임금을 받지 않는 시간이라 하더라도 하루 24시간 어르신 옆에 있는 그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르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기저귀를 갈아드린다. 집에서 챙겨온 재료로 밥상을 차려드리고 청소와 빨래를 한다. 이후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부축해 목욕시켜 드리고 나면 어느새 오후가 된다. 남은 하루는 거실에 앉아 책과 성경을 읽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보낸다. 어르신이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가야 하니 귀는 항상 열어둔 상태로 말이다.

집안 곳곳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주방엔 집에서 가져온 식재료, 다른 방엔 그의 자녀가 보내준 두유와 성인용 기저귀 등 모두 돌봄을 위한 것들뿐이다. 개인 물건은 옷가지 조금과 책이 들어있는 가방 2개 그리고 세면도구 한 바구니가 전부다.
 
요양보호사를 하기 전 알게 된 홀로 사는 어르신이 딱해 보여 매일 아침을 차려드렸던 것이 몇 년 전부턴 상주하며 돌봐드리는 일로 바뀌었다.
 요양보호사를 하기 전 알게 된 홀로 사는 어르신이 딱해 보여 매일 아침을 차려드렸던 것이 몇 년 전부턴 상주하며 돌봐드리는 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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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순씨의 한 달 월급은 120여만 원. 공과금 내고 생활비 빼면 남는 게 없지만, 빠듯해도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맞춰 살면 된다"고. 

그가 고되다면 고된 일을 이렇게 하는 건, 그 역시 어려운 시절을 보내왔기 때문일 테다. 

"더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는데요. 없고 부족하면 거기에 맞춰 살면 돼요. 집에 잠깐 오갈 때 타는 자전거도 벌써 20년 정도 탔네요. 이웃이 선물해준 건데 지금도 감사히 잘 타고 있어요. 어려워도 책만큼은 꾸준히 사서 봐요. 나이 먹어 눈도 잘 안 보이니까 안경도 2개나 있네요."

이런 그가 요양보호사를 시작한 건 그의 나이가 아직 50대이던 2007년.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묻자 그는 긴 숨을 내쉬었다.
 
병원 가다가 만난 요양보호사의 길


6.25 때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된 그는 친척 집에서 자랐다. 혼기가 차 결혼을 한 이후엔 옥천읍 구일리에서 살았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모아놓은 저축, 널따란 농지를 가진 부족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촉장이 날아들었다. 남편이 선 빚보증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4억 원의 빚이 월순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37세. 새로 집을 사겠다며 모은 적금도, 널따란 농지도 모두 날아갔다. 월순씨에겐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 훌훌 떠나고 싶은 마음을 잡은 건 토끼 같은 자녀들이었다.

"고아로 자란 내가 우리 자식들 고아로 만들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밤새 울고 일어나니 아는 언니에게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식당 일을 해볼 생각 없냐고."

처음 해본 식당 일은 고됐다.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정신없이 일했다. 아니, 실제로 정신이 없던 모양인지 주변에서 '정신 차려, 살아야지'란 말을 자주 들었다. 그렇게 첫 한 달을 일하고 그녀의 손에 쥐어진 돈은 40만 원. 힘든 살림이었지만 20만 원을 떼 해외로 공부하러 간다는 시누이에게 보냈다. "어차피 우리 집은 빚 갚으며 살아야 하는데, 한집이라도 제대로 살아야지"라며.

2002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식당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가던 그의 '일'에 전환점이 생긴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13년을 일하다 얻은 병에 간신히 하루를 비워 병원에 가던 길, 사고가 난 것이다. 병원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반복하던 바로 이때 새로운 일을 만나게 된다. 퇴원 후 한창 재활치료를 다니다 눈에 들어온 '요양보호사 교육센터' 간판이 바로 그것. 마침 함께 있던 사위에게 '저기 데려다 달라'고 얘기하면서 그의 요양보호사 생활이 시작됐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부축해 목욕시켜 드리고 나면 어느새 오후가 된다. 남은 하루는 거실에 앉아 책과 성경을 읽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보낸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부축해 목욕시켜 드리고 나면 어느새 오후가 된다. 남은 하루는 거실에 앉아 책과 성경을 읽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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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엔 집에서 가져온 식재료, 다른 방엔 그의 자녀가 보내준 두유와 성인용 기저귀 등 모두 돌봄을 위한 것들뿐이다.
 주방엔 집에서 가져온 식재료, 다른 방엔 그의 자녀가 보내준 두유와 성인용 기저귀 등 모두 돌봄을 위한 것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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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처음 요양보호사를 할 땐 주 3일, 하루 4시간을 일하고 60만 원 정도 받았어요. 적지만 아끼며 어떻게든 살았죠. 돈을 더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다시 식당 일을 했을 거예요. 요즘엔 좀 올라서 120만 원 정도 받네요. 그래도 34년 걸려 빚은 다 갚았으니까...

처음 자격증을 딸 땐 여러 생각을 했어요. 먹고 사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중에 봉사라도 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겠더라고요. 지금은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어요. 우리 같은 노인들 어디서 이런 일자리 구하겠어요. 생활이야 어떻게든 하면 돼요."

그도 이젠 슬슬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역시 그 자신의 건강이 문제다. 먹고 사는 일이 가슴 한편에 무거운 짐으로 남았지만,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되겠다 싶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여기 어르신이 아직은 자신의 돌봄이 필요하니까. 월순씨는 어쩌면, 어르신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월간 옥이네 통권 78호(2023년 12월호)
글‧사진 임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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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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