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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걸어야 하니까 이걸 끌고 다니면서 해요. 그래도 남보다 못하지는 않아요."
 "빨리 걸어야 하니까 이걸 끌고 다니면서 해요. 그래도 남보다 못하지는 않아요."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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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어귀, 마을 공원 잔디밭, 관공서 건물 앞 화단... 쓰레기 없이 깨끗하고, 잡초 대신 화사한 꽃이 반기는 공공 공간들. 절로 환경이 정비됐을 리는 만무하고 누군가의 손길이 지속적으로 갔기 때문일 텐데, 바로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이다.

흔히 형광색 조끼를 입고 쓰레기 수거 봉투를 들었거나 화단 잡초를 뽑고 꽃을 심는 노인들의 모습으로 노인일자리 사업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노인일자리 사업은 노인들 개개인이 처한 환경만큼 다양하다.

충북 옥천의 경우 옥천군시니어클럽과 대한노인회옥천군지회가 노인일자리 사업 수행기관이다. 총 23개 직종에서 1900여 명이 넘는 노인이 참여하고 있다.

[공익활동형]
▲9988 행복지키미(취약 노인 가정 방문해 안부 확인 및 외로움 해소) ▲함께하는터(공원 환경 가꾸기) ▲거리질서단(옥천읍 및 각 면 지역 거리 쓰레기 수거 및 불법 광고물 제거 등) ▲스쿨존(학교 앞 교통지도 및 환경 정비, 우범 지역 순찰) ▲공공기관 가꾸미(공중이용시설 환경미화) ▲우리 마을 가꾸기(마을 시설 관리 및 환경미화) ▲아이사랑 도우미(유치원 급간식 도우미, 주방활동 및 환경정비 등) ▲우리고을 우리문화재(문화재 시설 환경정비)

[사회서비스형]
▲복지서비스 지원단(복지관 경로식당 조리 및 정리 업무, 시니어 마을 복지 봉사 등) ▲지역아동센터 도우미 ▲시니어 안전 지원단(노인일자리 참여자 안전 및 안부 확인 등)

[시장형]
▲향수할매식당(도란도란식당 운영) ▲맑은대청지킴이(대청호 인근 마을 환경정화) ▲위드하우스 공동작업장(사출물 조립 및 임가공 작업)

노인일자리 사업은 노인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 노인이 39.3%로 OECD 가입국 중 1위)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무척 중요한 노인 복지 사업 중 하나일 터.

옥천 역시 월 평균 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65세 이상 노인 가구가 64.9%(50만 원 미만 25.2%)에 달하는 만큼(2020년 옥천군 사회조사보고서) 다양한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는 노인 가구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빈곤, 질병, 고독이 노인 3고(3苦)로 꼽히며 사회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일자리는 빈곤선을 넘는 것뿐 아니라 몸과 정신의 건강을 찾고 안전한 사회망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번 기사에서는 옥천군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의 일터와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새해에도 지속적인 일자리와 함께 건강한 생활을 이어가시길 기원하는 마음과 함께.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2023년 12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약값이라도 벌어야지
 
"이렇게라도 밖에 나와야 해.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 걸리고 치매 걸린다고."
 "이렇게라도 밖에 나와야 해.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 걸리고 치매 걸린다고."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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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1일 오전 8시 50분,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앞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추운 날씨에 단단하게 차려입은 옷차림과 마스크는 필수다.

보행기를 끌고 나온 한월순(80)씨가 눈에 띈다. "빨리 걸어야 하니까 이걸 끌고 다니면서 해요. 그래도 남보다 못하지는 않아요." 조끼와 모자까지 방한을 든든히 한 그가 걸음을 재촉한다. 한 달에 10회, 1회 3시간, 충북 옥천 전통문화체험관에서 진행되는 노인일자리 사업인 '우리고을우리문화재' 활동을 따라가 봤다.

우리고을우리문화재는 구읍에 있는 육영수 여사 생가, 정지용문학관, 옥천 전통문화체험관에서의 미화 활동을 담당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이다.

반장을 맡고 있는 문영호(73)씨가 활동에 앞서 오늘 할 일을 설명한다. 길거리에 떨어진 낙엽 청소다. 가을을 넘어 초겨울로 들어서는 11월, 길거리를 가득 물들였던 단풍이 바닥과 화단에 쌓였기 때문이다. 제각기 손에 든 갈고리와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모은다. 능숙한 손놀림에 얼마 지나지 않아 포대가 한가득 낙엽으로 채워진다. 이후 화단에 물을 주고 잔디밭에 난 잡초는 없는지,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는 없는지 둘러본다.

문영호씨는 노인일자리에 참여한 지 올해로 3년 차다. 선사공원에서 1년, 이듬해부턴 이곳으로 와 활동을 지속했다. 나이가 제일 어리다는 이유로 첫해부터 반장을 했는데 그를 제외하곤 대부분 여든을 넘긴 참가자들이다.

"하는 일이 거의 미화 활동이라 크게 어렵다거나 힘든 일은 없어요. 가장 중요한 건 서로 의견 다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거예요. 계속 봐야 하는데 불편해지면 안 되잖아요? 지금 나와주시는 분들은 모두 사람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조금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금방 푸시더라고요."

집에서 놀면 뭐 혀?

이들이 일상에서 공통으로 느끼는 문제는 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일자리는 소일거리와 사회활동의 장이 되기에 참 고마운 존재다. 여기에 적더라도 보수가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집에서 놀면 뭐 혀? 용돈이라도 벌어야지. 그리고 집 밖으로 돌아다니려면 이거라도 해야 해. 집에서 맨날 노는 것도 힘들어. 조금이라고 움직일 구실을 만들어야 건강하지, 앉아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화투나 치면 뭐 도움이 돼?" (손희자씨, 85)

김대겸(80)씨도 다르지 않다. 그의 일주일은 노인일자리 참여와 복지관 프로그램 일정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복지관에서도 여러 가지 해. 풍물, 실버 체조, 요리... 매일매일 할 게 있지. 그래서 심심하지 않아. 놀아도 바빠. 물론 먹고 사는 거야 예전만 못하지. 이렇게 바쁘게 지내도 뭔가 사는 게 재미가 없어. 즐겁지 않아."

한월순씨는 딱히 취미생활이 없다. 평생 일만 하며 살아 노는 법을 모른다고. 그러니 여가생활과 남는 시간을 보내는 것 모두 일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난 성격이 그려, 집에 있으면 답답해.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으면 기분이 가라앉더라고. 일하면 시간 빨리 가고 좋잖아? 내일(11월 22일)하면 이번 달 마지막인데 좀 아쉽네. 그래도 9일 쉬면 또 나오니까.

노인일자리 쉬는 날이면 마당에서 농사 조금 지어. 성격이 그랴. 못 노는 성격이여. 다른 사람들 보면 취미로 마을회관 나간다든지 복지관 간다든지 하는데 난 그런 취미가 없어. 집이든 밖이든 이렇게 일하는 걸 좋아해. 다른 사람들처럼 수다 떨고 그런 걸 잘 못하는 거지. 놀 줄을 모르는 거야. 그런 인생이여.

그런데 일도 하다 보면 재미있어. 마당 가꾸는 것도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나 몰라. 농사에 비해 어려운 일도 아니지. 여기 활동은 힘든 날도 있고 쉬엄쉬엄 편한 날도 있고. 그러고 보니 지금 치우는 게 올해 마지막 낙엽이네. 올해도 벌써 다 갔네."
 
이거라도 벌어야 약값 하지

 
"생활비에 보탬이나 됐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노인네들이 어디서 얼마나 벌 수 있겠어요?"
 "생활비에 보탬이나 됐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노인네들이 어디서 얼마나 벌 수 있겠어요?"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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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겸씨는 농기계제조회사인 국제종합기계에(옥천읍 양수리) 24년을 다녔다. 그가 옥천에 연고를 두게 된 것도 회사를 따라 이주해 오면서부터다. 국제종합기계 퇴사 이후엔 작은 회사에 다니기도 했지만, 아내의 건강이 나빠지자 돌볼 사람이 필요해 일을 그만두게 됐다. 결국 아내가 먼저 세상을 등지며 혼자가 된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일단 여기는 집에서 나오기 좋고 일이 별로 고되지 않아. 그리고 쉬면 뭐 해요.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그래야 병원이라도 갈 거 아녀. 이렇게라도 밖에 나와야 해.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 걸리고 치매 걸린다고. 이것보다 더 벌라면 공장에 나가야 하는데 뭐 하러 그래? 나 혼자 먹고사는데. 많은 돈은 필요 없고 병원비, 약값만 벌면 돼."

정종태(77)씨는 조그만 사업이라도 하고 싶은데 자금 장만하기 힘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거 해봐야 일 년에 300만 원인데 되겠어? 이거 해 뭔 돈을 벌겠어! 그냥 약값만 하는 거지. 밥 먹어야 살지, 약도 먹어야 살지, 돈 들어갈 데가 얼마나 많다고. 그래도 나라에서 이런 거라도 해주니까 고마워. 우리 노인들이 갈 곳이 별로 없잖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참여자는 생활고에 평생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생각이라고.

"저는 원래 건축 현장에 다녔어요. 나이 먹어 퇴직하니까 갈 곳이 없네요. 매달 몇백 씩 벌다 달에 27만 원씩밖에 못 버니 생활이 힘들어요. 생활비에 보탬이나 됐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노인네들이 어디서 얼마나 벌 수 있겠어요? 한 달에 열흘이라도 일하고 이거라도 받아야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해야 해요. 또 이런 활동이 좋은 게 집에만 있으면 밥맛도 없는데 여기 나오면 밥맛이 좋아져요. 그래서 다리가 불편해도 되도록 나오는 편이에요."
 
더 아프지 않았으면


쉬는 시간 볕이 잘 드는, 방문객이 찾지 않는 건물 뒤편에 모여 앉아 간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요즘 어디가 아프다, 무슨 약을 먹어야 한다, 어느 병원이 용하다 등 이들의 관심사를 잘 보여준다. 

노인일자리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아이고, 돈이나 더 줬으면 좋겠네. 그래도 내년에 2만 원 인상돼 29만 원이라니까 좀 낫네. 일을 더 하고 더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겠지. 일을 나눠야 하니까. 사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더 아픈 곳만 없었으면 좋겠어."

"지금도 나쁘진 않지만, 월 15회 정도로 늘렸으면 좋겠어요."

"사실 병원비가 겁나. 우리가 병원 다니며 내는 돈이 얼만데. 나중에 하숙집(요양원)만 가도 얼마나 내야 하는데? 걱정이여, 걱정. 안 그러려면 건강해야 해. 몸이든 정신이든. 이런 활동으로 건강 챙겨야지. 그래서 지금도 만족해."

일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노인들에겐 또 다른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밥 먹고 병원 가야지. 요즘 독감이 유행이라니께 그거 주사나 맞으러 가려고."

[다음기사]
"하루 3시간, 내 손으로 돈 벌어 손주 용돈 주니 살맛 납니다" https://omn.kr/26v3e
     
월간 옥이네 통권 78호(2023년 12월호)
글‧사진 임정식
글 박누리 사진 월간옥이네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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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인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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