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선균 배우

고 이선균 배우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이선균 배우의 죽음
 
처음 그가 삶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그냥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의 마약과 관련된 기사는 쓰레기처럼 넘쳐나고 있었고, 그는 유죄와 무죄 사이 어디쯤에서 카메라에 대고 연신 사과를 하고 있었기에 으레 또 그런 사건이려니 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혹자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과잉수사가 또 아까운 배우 하나를 보냈구나 하고 건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조국 전 장관이 이야기했듯이 경찰이 이선균 수사 착수를 발표한 날은 공교롭게도 대통령실 학폭이 터진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마음이 먹먹해졌다. 다시는 그의 '봉골레 파스타'를 읊조리던 중저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으며, 그의 세상 억울한 연기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려왔다.
 
한 번도 그를 나의 최애 배우로 생각한 적이 없는데 무엇 때문일까? 신해철이 죽었을 때는 나의 치기 어린 사춘기가, 혁명을 꿈꾸던 낭만의 청춘이 스러져갔기에 눈물을 흘린 듯한데, 지금 그의 죽음에 이리도 가슴 시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중년의 수치심
 
 <나의 아저씨>의 이선균

<나의 아저씨>의 이선균 ⓒ tvn

 
그렇게 하루이틀을 고민하다 보니 떠오르는 단어는 결국 '수치심'이었다. 그는 내게 <나의 아저씨> 박동훈이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회사 대표와 바람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수치심을 안고도 살아가야 했던 그의 모습에서 나는 중년이 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마흔을 넘기면 수치스러운 장면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물론 성인같이 그런 기억 하나 없이 대쪽 같은 사람들도 간혹 있겠으나, 보통의 사람들은 대게 '이불 킥'을 백만 번 해도 극복할 수 없는 부끄러운 기억들을 간직하고 산다.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한 실수들과 잘못들. 그리고 나의 책임들.
 
들키면 수치스러울 것을 알면서도 욕망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도 있고,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라 자만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적절하게 그 수치심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부디 자신의 치부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춰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
 
<나의 아저씨> 박동훈은 바로 그 중년의 수치심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쌓아갈 수밖에 없는 수치스러운 기억들. 박동훈은 그 수치심보다 소중한 것이 삶의 희망이며,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며, 나를 스스로 세울 수 있는 자존감임을 보여주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그토록 위로받은 것은 결국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수치스러움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선균은 그 억울한 박동훈을 연기할 수 있는 최적의 배우였다.
 
누가 이선균 배우를 죽였나
 
 <나의 아저씨> 포스터

<나의 아저씨> 포스터 ⓒ tvn

 
그런데 그 이선균이 드라마와 달리 수치심 때문에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마약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죽어도 들키기 싫었을 사실들이 만천하에 우습고 비열하게 공개되면서 자신이 일궈놓은 위치와 바닥의 낙차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치심을 극복하는 길이 자살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던 그가 현실의 무게에 눌려 굴복하고 말았다. 외로웠을 것이며,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런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이 수치심을 모르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권력이란 이름으로 세상이 정해놓은 법과 도덕은 무시한 채 염치없이 남의 허물만을 헐뜯는 이들이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었고, 모르는 척 대중들에게 배포했으며, 그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허망하게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나의 아저씨는 스러져갔다. 염치 때문에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이 슬픈 이유는 엄혹한 현실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며, 수치심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선균 배우의 명복을 빈다. 잘 가요. 나의 아저씨.

"아무 것도 아니야. 쪽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 다 아무 것도 아니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 거야. 행복할게."
 
이선균 나의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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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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