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2월, 설입니다. 가족과 친지를 만나 정을 나누어도 모자랄 시간이지만, 올해는 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경기는 어렵고 들려오는 뉴스도 팍팍한 소식 뿐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가라앉아 있을 필요는 없겠죠? 안팎으로 지친 당신에게 단비가 될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어떤 장르를 덕질하든 첫 단계는 '덕통사고'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교통사고를 당해버린 것 같은 상태에 빠진 후에야 모든 것이 시작된다.
 
다음 단계는 사람마다 다르다. '덕통사고'가 일어난 것을 재빠르게 인정하고 덕후로서의 자아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자신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태로 지내다가 마침내 깨닫게 되거나. 

이 시기를 거쳐 덕후로 다시 태어난 자신을 인정했다면 그 마음의 기본은 내게 '덕통사고'를 일으킨 내 우상(아이돌)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원활한 덕질을 위해서는 그 마음이 계속 불타오를 수 있도록 땔감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것을 떡밥이라고 한다.
 
떡밥은 많으면 좋지만 적을 수도 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나노 단위로 쪼개어 앓으면 된다. 하지만 덕후가 계속 덕후로 남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바로 이 사람을 응원하는 일이 수치스러운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돌려 말하면 내가 이 사람을 응원하는 일이 자랑스러운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아미인 내가 계속 덕후로서 불타오를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팀이다. 한국 최초, 아시아 최초, 세계 최초의 기록들처럼 수치화 가능한 정량적인 면에서나 아이돌로서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외모, 앨범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 같은 정성적인 면에서나 빠지는 데가 없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면을 자랑스러워하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오늘은 다른 얘기를 해보고 싶다.
 
모든 멤버들이 군 복무에 들어간 후인 2023년 12월 20일 디즈니+에서 방탄소년단의 데뷔부터 지금까지 10년간의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 BTS Monuments : Beyond The Star >가 공개됐다.

다큐 통해 공개된 방탄소년단의 10년 여정
 
 디즈니플러스 < BTS Monuments : Beyond The Star > 관련 이미지.

디즈니플러스 < BTS Monuments : Beyond The Star > 관련 이미지. ⓒ 디즈니플러스

 
다큐는 2020년 1월에 있었던 'connect BTS'라는 아트 전시를 관람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때는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것이 단절되어 있을 때였다.

연이어 컴백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멤버들의 모습, 미국 프로모션 활동 중 한 토크쇼에서 '1년에 3개의 앨범을 빌보드 200(앨범차트) 1위에 올려놓은 팀'이라고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소개하는 MC의 모습과 팬들이 BTS 공연 티켓팅을 하는 흥분된 순간을 교차시킨다. 다음 순간, 잠실주경기장에서 있을 'Map of the SOUL' 공연이 전격 취소되었다는 내부 결정을 듣는 멤버들의 실망하는 모습이 교차편집되어 극적인 대비를 이루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멀리서 전해 들은 사람은 이 팀이 손대는 것마다 빵빵 터지니 어려울 것 없는 승승장구의 연속일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 같다. 심지어 모든 것이 멈춰버린 팬데믹 상황에서 발표한 곡들이 더 글로벌한 히트를 이끌어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알고 들여다보면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중요한 계획에서 차질을 빚었다. 세계 정상급 남자 아이돌 그룹이 심혈을 기울여 계획했을, '앨범 발매 후 월드투어를 성대히 마치고 군복무 공백기 돌입'이라는 수순이 팬데믹으로 인해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그렇게 야심차게 준비한 투어가 전면 취소되자 한동안 멤버들은 실의에 빠져있었다고 다큐에서 담담하게 돌아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멤버들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멤버들은 연습생이 된 것처럼 바쁘게 춤 연습을 하고 보컬 수업을 듣고 맹렬하게 운동을 했으며 악기를 연습했고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삶을 앨범으로 만들어냈다.

언젠가 멤버들이 주도해서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했던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팬으로서 목격하는 것은 팀에 대한 신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정말 슬펐는데 그 안에 진주알 같은 게 있었다"는 멤버 정국의 팬데믹 소회는 그런 그들의 태도를 담백하게 보여주었다.
 
BE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 그래도 유명했던 BTS를 다시 한번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린 곡들이 탄생했다. 'Dynamite', 'Butter', 'Permission to Dance' 같은 곡들이다. 원래는 나올 계획이 없는 곡들이었다. 평소와 달리 앨범이 아닌 싱글곡 발매에, 한국어가 아닌 영어가사로 된 이 노래들로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핫100에서 1위를 10번 넘게 차지했다.

방탄소년단 둘러싼 유명한 일화
 
 디즈니플러스 < BTS Monuments : Beyond The Sta r> 관련 이미지.

디즈니플러스 < BTS Monuments : Beyond The Star > 관련 이미지. ⓒ 디즈니플러스

 
하지만 내가 정말 감탄하는 부분은 그런 날에도 안무연습을 하는 그들의 성실함이다. 빌보드 1위를 했어도 '오안취'(오늘 안무연습 취소)는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은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성취는 기쁘지만 그건 그거고 할 건 하자'는 성실한 마음가짐이 지구를 둘러싼 대기처럼 이 팀을 감싸고 있다.

예상치 못하게 시련을 겪어도, 예상치 못한 큰 성공을 얻어도, 늘 '그건 그거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태도를 보여주는 점이 내가 오늘 내세우고 싶은 내 가수의 자랑거리다.
 
그런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지금 군복무 중이다. 맏이인 멤버와 막내 멤버의 나이 차이가 5살인 점을 고려했을 때, 일곱남자들의 군복무 기간이 총 2년 6개월이면 끝나도록 거의 동반입대에 가깝게 시간을 조절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엎어버린 타임라인을 다시 바로잡은 것인데 이보다 더 나은 플랜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다. 게다가 일곱 멤버가 모두 군복무를 하는 진짜 공백 기간은 단 6개월이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인데 올해 6월이면 가장 먼저 군대에 간 맏형 진이 제대한다. 놀라운 것은 제대가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 N월의 석진 >이라는 짧은 콘텐츠가 공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입대 전 1년 반을 기다릴 팬들을 위해 절기에 맞춰 N개의 비디오를 찍어뒀을 마음이 읽혀 짧은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반갑고도 뭉클하다. 2023년 9월에 입대한 슈가의 '슈취타'도 입대 후 5개월에 접어드는 현재까지 꾸준히 업데이트 되고 있다.
 
다른 멤버들도 입대 전에 많이 준비해두고 간다고 했으니 차차 공개될 떡밥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어떤가. 인생에 수없이 마주하게 될 오르막과 내리막에도 끝내 꺾이거나 흔들리지 않고 늘 한결같이 지금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존재가 있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블로그나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방탄소년단 내아이돌자랑 코로나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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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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