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동계체전에서는 '포커페이스 스킵'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앞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전북특별자치도청 강보배 선수, 뒤의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강릉시청 김은정 선수.

지난 동계체전에서는 '포커페이스 스킵'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앞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전북특별자치도청 강보배 선수, 뒤의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강릉시청 김은정 선수. ⓒ 박장식

 
한국 여자 컬링에 2005년생 실업팀 스킵이 데뷔했다. 경기를 이끌어가고, 투구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 스킵은 보통 경력이 가장 많은 선수가 맡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전에 실업팀에 스카우트되어 바로 스킵 자리를 맡은 것은 생소한 일이다.

그 주인공은 전북특별자치도청 강보배 선수. 의정부 송현고등학교에서 스킵을 맡으며 동계체전 2연패를 달성하는가 하면, 주니어 대표팀에도 선발되는 등 고교 컬링 최강 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강보배는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실업팀에 합류해 '직업 컬링 선수'로서 훈련을 이어갔다.

2월 13일부터 열린 동계체전 일반부에서 다른 실업팀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 데 이어 준결승에서 강릉시청 '팀 킴'과도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 아쉽게도 '팀 킴'에 결승 티켓을 내주고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완벽한 성인무대 데뷔전을 치른 강보배 선수는 '팀 킴' 김은정 못지 않은 포커 페이스로 팀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옥의' 토너먼트 뚫어낸 '포커 페이스'

컬링에서 스킵에게 중요한 요소는 침착함이다. 감정이 풍부한 스킵이 팀의 분위기를 이끄는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상황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경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컬링 팀으로서 기복이 덜 하다는 점, 그리고 위기 상황 흔들리지 않는다는 장점을 만들기 때문이다.

강보배 선수는 그런 침착함을 잘 유지하는 스킵이라는 평을 지도자들로부터 듣곤 했다. 특히 2021년에는 주니어 대표 등극이 유력했던 의성여고를 누르고 송현고가 우승하는 데 큰 역할을 해내는 등, 고교 시절부터 이미 눈도장을 찍어 실업팀 합류는 시간 문제였던 선수이기도 했다.

그런 강보배 선수는 성인이 되자마자 전북도청에 바로 합류한 데 이어, 바로 스킵으로 올라서기까지 했다. 만 18세, 한국 컬링 사상 가장 어린 성인 팀 스킵이 탄생했다. 팀 리빌딩에 직면한 권영일 감독이 던진 승부수이기도 했다.

쉽지는 않았다. 전북도청은 첫 경기에서 서울시청(스킵 박유빈)을 만나고, 승리하더라도 다시 의성군청(스킵 김수현)을 조우해야 4강에 오를 수 있는 이번 대회 가장 어려운 토너먼트 편성을 받아들었다. 특히 서울시청과 의성군청에는 2021년 주니어 대표 선발전에서 상대했던 그 때의 의성여고 선수들이 입단해 있었다.

어려운 상황이었다. 강보배 선수는 성인 무대에 데뷔한 첫 경기부터 자신의 강점인 침착함을 바탕으로 경기에 임했다. 첫 경기인 서울시청과의 경기에서 강보배는 놀랄 만한 활약을 펼쳤다. 스킵 샷에서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며 4연속 스틸을 달성, 12대 1이라는 경이로운 스코어로 완승을 거둔 것.

이어진 의성군청과의 경기에서도 강보배는 팀을 완벽하게 이끌었다. 전북도청은 의성군청을 상대로 후반 스틸을 내주는 위기를 겪었지만, 9엔드 넉 점을 얻어내는 빅 엔드를 만들어내며 상대의 악수를 받아냈다. 그러면서 전북도청은 2022년 동계체전 이후 2년 만의 메달 확보에 성공했다.

그렇게 되며 준결승에서 '포커 페이스 스킵'끼리의 만남도 성사되었다. 전북도청과 강릉시청 '팀 킴'의 맞대결이 성사되면서 '안경선배' 김은정 스킵과 강보배 스킵이 한 자리에서 대등한 경쟁을 펼치는 장면이 펼쳐지게 된 것. 준결승에서는 김은정과 강보배가 진지한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이 펼쳐지기도 했다.

물론 '팀 킴'의 관록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경기 중반부터 스틸을 연거푸 내주며 위기에 몰린 전북도청은 6엔드 2점을 득점하는 데 그치며 7대 2로 패배, 동메달에서 이번 전국동계체전을 마쳤다. 하지만 실업팀끼리의 강한 경쟁 속 어려운 토너먼트를 뚫고 따낸 메달이기에 전북도청에는 큰 힘이 되었다.

"졸업도 전에 실업팀 입단 기뻐... 기량 더 키워야죠"
 
 동계체전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만난 강보배 선수.

동계체전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만난 강보배 선수. ⓒ 박장식

 
대회가 모두 마무리 된 뒤 만난 강보배 선수는 "졸업도 전에 실업팀에 들어와서, 내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분이 들었다"면서, "컬링 하면서 첫 목표가 실업팀 입단이었는데, 이 점을 이뤄서 더욱 안정되게 컬링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고 입단 소감을 전했다.

같은 학교 선배이기도 했던 김지수·정재희 선수와 실업팀에서 다시 만난 것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일까. 강보배는 "같은 학교였지만 학년 차이가 많다 보니까 학교 안에서도 한 번도 맞춰본 적이 없어서 걱정되기도 했다"면서도, "그래도 언니들이랑 처음 합 맞춰보니까 생각보다 잘 맞아서 다행이었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실업팀 선수들과 대등하게 치른 맞대결 역시 강보배에게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첫 목표도 결승에 가지 못하더라도 '팀 킴'에게 패배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강보배는 "토너먼트 대진이 어려웠다 보니 '일반부에서 팀 킴이랑 처음 겨뤄보자'는 것이 첫 목표였는데, 이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고등부때는 상대의 실수를 파고들 수 있는데, 일반부 대회는 상대의 실수가 아니라 나의 샷을 성공시키는 게 우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첫 경기때는 연습했던 느낌 그대로 잘 나온 것 같아서 성공적으로 한 것 같지만 나머지 경기들은 사실 더 집중했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컸다"고 대회를 복기했다.

본인의 강점으로 꼽히는 '포커페이스'도 컬링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유지해왔다며 이야기한 강보배는 "사실 표정 변화가 크지 않다. 옆에서 하이텐션이더라도 내가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 느낌"이라며, "사실 김은정 선배처럼 포커페이스를 잘 한다고 하는데, 조금 더 다듬어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아울러 주니어 국가대표 경력을 통해 성인 국가대표로의 꿈이 커졌다는 강보배 선수는 "다른 나라 주니어 대표팀 선수들이 성인으로 올라가서 국가대표를 하고 있으니, 우리도 치고 올라가고 싶다"며 각오도 밝혔다.

마지막으로 강보배는 "사실 언니들이랑 이제 막 합을 맞춘 것이 아쉬웠다"며, "한국선수권 때까지 남은 기간 동안 언니들이랑 합 맞춰서 기량도 키우다 보면 충분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며 6월에 열릴 국가대표 선발전, 한국선수권에서의 선전 역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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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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