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충북 옥천 이원여성자율방범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최소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야간순찰을 한다.
 충북 옥천 이원여성자율방범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최소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야간순찰을 한다.
ⓒ 월간 옥이네

관련사진보기

 
우리 마을 안전을 위해 모인 여성들이 있다. 해가 지고 바람이 싸늘해진 저녁, 이원면행정복지센터에 모인 이원여성자율방범대는 야간순찰을 준비한다. 빠뜨린 물건은 없는지, 순찰 경로를 재확인하며 준비를 마친 10명의 대원이 힘차게 야간순찰을 시작하자 캄캄했던 골목길이 밝아진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최소 일주일에 두 번씩 모인다는 이원여성자율방범대 야간순찰에 동행했다.

우리 마을 안전은 우리가 지킨다

'큰 추위'라는 뜻의 대한(大寒)을 며칠 앞둔 날답게 칼바람이 불어오지만 방범대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보다 더 춥고 더운 날에도 야간순찰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비와 눈이 많이 와 보행이 어려운 날이면 차량으로 순찰하며 마을을 지켜오고 있는 방범대. 오후 6시 이후 사람 없는 어두운 길이 걱정돼 시작한 야간순찰은 2015년 창단 이후 한 주도 소홀히 한 적이 없다.

"회사원, 자영업자, 농민 등 대원 모두 본업이 있어서 순찰 당일 그때그때 가능한 대원들이 모여서 진행해요. 전원 참석하는 날은 드물지만 매번 10명씩 모여 안전하게 순찰하고 있어요. 차량 순찰 때는 개심리, 장찬리까지 나가기도 하지만 오늘같이 도보로 할 때는 이원역, 이원초등학교, CJ대한통운택배 옥천허브터미널을 중심으로 순찰해요." (김종숙 대장, 57세)

도움이 필요한 주민은 없는지, 음주로 인한 길거리 소동은 없는지 2인 1조로 줄을 맞춰 1시간 동안 골목을 살피는 방범대. 붉은 경광봉과 노란 활동복이 가로등 없는 길을 밝힌다.

이곳저곳 살피는 대원들 사이에서 긴장한 모습의 대원이 눈에 띈다. 이날 처음 방범대 활동에 참여한 안현성(36), 안정은(33) 대원이다. 자매인 두 대원은 김종숙 대장의 권유로 올해 함께 입단했다. 

"서울에서 귀촌한 지 1년 됐어요. 평소 봉사에 관심 있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대장님을 만났어요. 마을에 여성자율방범대가 있는데 같이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죠." (안현성 대원)

안현성 대원은 자신처럼 봉사에 관심 있는 동생 안정은 대원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이미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이웃'으로 김종숙 대장을 알고 있던 터라 동반 입단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멀리 가지 않고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하는 봉사라서 좋았어요.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자리를 비우는 게 쉽지 않고 이웃을 만날 일이 많지 않았거든요. 마을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할 수 있고 이웃과 친목도 쌓을 수 있어서 고민 않고 결정했어요. 잘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대원분들이 잘 챙겨주셔서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정은 대원)

앞으로 잘해보자고 의지를 다지는 자매 대원뿐 아니라 초기부터 함께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대원도 있다. 방범대 활동 10년 차인 김진화(51), 김애경(51) 대원이다. 두 대원은 야간순찰로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어르신을 귀가시킨 경험이 있다. 이후 외진 골목길을 더욱 눈여겨보게 된다고.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르신을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다행히 다친 곳 없이 무사히 귀가하셨죠. 그 뒤로는 골목길을 구석구석 살펴보게 돼요. 오늘같이 기온이 낮은 날이면 잠깐이라도 위험하잖아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언제 생길지 모르니 순찰할 때 항상 집중해요." (김애경 대원)

두 대원 역시 봉사에 관심이 많아 방범대 활동을 시작했다. 직장인이라 시간 내기가 어려웠지만 마을에 여성자율방범대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입단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활동 햇수를 세어보니 벌써 10년 차라며 빠른 시간에 새삼 놀란다. 

"저는 이원면, 애경 대원은 옥천읍이 고향이에요. 각자 결혼하고 이원에서 자리 잡았는데 같은 마을에 살아도 만날 일이 많이 없었죠. 직장을 다니니까 더 힘들어요. 그런데 봉사로 인연이 닿아 동네에 친구가 생겼어요. 나이도 같고 관심사도 같으니 즐겁게 방범대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김진화 대원)

동네에서 친구를 사귄 것 외에도 방범대 활동을 오래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뿌듯함'이 있다. 야간순찰로 늦은 시간 골목길을 지나가도 무섭지 않다는 주민이 늘어난 것. 고맙다는 주민들의 말 한마디가 활동을 지속할 힘이 됐다. 

"우리 마을에 여성방범대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방범대를 꼭 남자만 하란 법이 없잖아요. 여성들도 마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아요. 주민들이 여성방범대가 있어서 좋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역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김애경 대원)

봉사를 멈출 수 없는 이유
 
적막뿐인 골목길에 대원들의 속삭이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채워진 지 1시간. 무탈하게 야간순찰을 마친 방범대는 근처 편의점에서 휴식을 취한다.
 적막뿐인 골목길에 대원들의 속삭이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채워진 지 1시간. 무탈하게 야간순찰을 마친 방범대는 근처 편의점에서 휴식을 취한다.
ⓒ 월간 옥이네

관련사진보기

 
적막뿐인 골목길에 대원들의 속삭이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채워진 지 1시간. 무탈하게 야간순찰을 마친 방범대는 근처 편의점에서 휴식을 취한다. 날씨가 추운 요즘 순찰을 마치고 따뜻한 음료로 몸을 녹이는 시간을 갖는다는 대원들. 경광등을 내려놓고 모여 앉아 간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신입 대원의 첫 방범대 활동이 어렵지는 않았는지, 다음 활동 참석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나누던 중 대원들은 김선옥(49) 대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날 개인 일정으로 참석이 어렵다고 한 김선옥 대원은 야간순찰이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합류했다. 예정보다 일정이 빨리 마무리돼 왔다는 그를 모두가 반겼다. 바쁜 일정에도 틈을 내어주는 동료가 고맙기 때문이다.

"이원에 온 지 20년 됐어요. 이원에 오자마자 이원청년회, 이원로타리클럽에서 봉사하다가 4년 전 방범대에 입단했죠. 미용실을 운영해서 낮에 활동이 어려웠거든요. 저녁에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방범대를 알게 됐어요." (김선옥 대원)

김선옥 대원이 봉사를 한 지 약 25년.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어 20대부터 교회에서 시작한 봉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위한 것이 됐다. 

"일을 마치고 나면 몸이 천근만근인데 봉사를 그만둘 수가 없어요. 봉사로 느끼는 뿌듯함이 삶의 활력이 되기 때문이에요. 그 힘으로 삶도 봉사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나를 위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대한 방범대 활동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김선옥 대원)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이원묘목축제를 꼽았다. 이원묘목축제는 '묘목의 고장' 이원면에서 매년 열리는 축제다. 코로나19로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2023년 3월 4년 만에 열린 대면축제에 5만여 명이 다녀갔다.

"오랜만에 열리는 대면축제로 방문객이 정말 많았어요. 방범대가 교통정리를 했는데 차가 끝이 없었죠. 3일 동안 복잡한 축제 현장을 정리하는데 정신이 없더라고요. 몸은 힘들었어도 대원들과 으쌰으쌰했던 그때가 제일 즐거웠어요." (김선옥 대원)

지역의 가장 큰 축제에 방범대가 함께해서 뿌듯했다는 김선옥 대원 말에 김윤정(48) 대원도 동의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에 방범대로서, 주민으로서 참여한다는 게 뿌듯했죠. 마을에서 열리는 행사는 거의 다 참여하는데 묘목축제 말고도 노인의 날 행사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노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설거지 봉사를 했는데 400여 명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설거지 양이 엄청나요. 그날은 설거지뿐만 아니라 음식도 하고 응대도 하느라 바빠요. 쉬지도 못하고 종일 봉사해야 할 때면 대원들끼리 잘 마무리하자고 격려해요. 그런 분위기가 있어서 그런지 몸이 힘들었던 봉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김윤정 대원)

김윤정 대원은 12년 전 서울에서 귀촌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마을 일원으로서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봉사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 살아갈 곳에서 봉사하며 이웃과 정답게 사는 것을 꿈꿨다. 

"옥천읍에서 3년 살다가 9년 전 이원에 왔어요. 방범대는 학부모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1기 대장님(오상순씨)을 만나서 입단하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어요. 처음 옥천에 왔을 때 단체가 너무 많아서 어디에 들어가야 할지 몰랐어요. 마을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대장님을 보고 이곳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활동한 지 9년째. 이제는 대충하는 법이 없는, 마을 봉사를 진심으로 대하는 대원들 덕분에 12년 전 꿈을 실현했다는 김윤정 대원이다. 

선후배의 연대가 만들어가는 미래
 
충북 옥천 이원여성자율방범대의 경광등
 충북 옥천 이원여성자율방범대의 경광등
ⓒ 월간 옥이네

관련사진보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몸이 녹았다. 약 20분간 나눈 이야기 중 방범대를 가장 즐겁게 한 것은 신입 대원 입단 소식이다. 이원면으로 귀농·귀촌한 30~40대 여성 6명을 동료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모든 게 대장님 덕분이에요. 이렇게 많은 인원이 입단하는 게 쉽지 않은데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대장님 모습을 보고 결정한 것 같아요. 저희가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잠깐이라도 봉사할 마음을 갖게 한 것도 솔선수범하는 대장님이 계셨기 때문이거든요." (김윤정 대원)

대원마다 방범대를 시작한 계기와 시기가 다르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이유로 김종숙 대장의 존재에 대해 말한다. 도움이 필요한 일에 내 일처럼 나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고. 방범대뿐만 아니라 반찬배달, 이원면행정복지센터와 옥천노인장애인복지관 봉사까지, 대원들이 입을 모아 "봉사를 직업처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늘 봉사하는 김종숙 대장이기 때문이다. 

"봉사는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줘요. 어르신들이 지나가다 제 표정이 안 좋은 걸 발견하시면 괜찮은지 안부를 물으세요. 그럴 때마다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요. 안부를 묻는 관계가 많아질수록 마을이 돈독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자주, 더 많이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게 돼요." 

2017년부터 방범대를 이끌어 오고 있는 김종숙 대장은 저녁, 주말 할 것 없이 함께 봉사하는 대원들 덕분에 어려움 없이 방범대를 운영할 수 있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차기 대장에게 부끄럽지 않을 방범대를 꾸리는 것.

"언제까지나 제가 대장일 수는 없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방범대를 잘 꾸려서 차기 대장과 대원들에 물려주고 싶어요. 화합이 잘되는 방범대, 제가 바라는 건 그거 하나예요."

올해 방범단에 신입 대원 입단 말고도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5월에 예정된 사무실 이전. 이원새마을금고(건진리) 뒤편에 자리할 사무실을 찾기까지 1년이 걸렸지만 그만큼 반가움도 크다는 대원들. 더불어 신입 대원 입단까지 있어서 설레는 일이 많다며 활짝 웃는다. 든든한 동료와 새로운 공간에서 어떤 활동을 이어갈지 행복한 고민 중이라는 이원여성자율방범대의 올해가 더욱 기대된다.   

*이원여성자율방범대(2024년 1월 기준) 대원: 김종숙, 곽주영, 김효점, 최영란, 장수길, 공혜란, 김은희, 유영신, 배은주, 김진화, 김윤정, 김애경, 하경숙, 김선옥, 안현성, 안정은, 손앵숙, 황인분, 이미현
 
충북 옥천 이원여성자율방범대
 충북 옥천 이원여성자율방범대
ⓒ 월간 옥이네

관련사진보기

 
월간옥이네 통권 80호(2024년 2월호)
글 사진 김혜리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정기구독하기 (https://goo.gl/WXgTFK)

태그:#여성자율방범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월간 옥이네는 자치와 자급, 생태를 기본 가치로 삼아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사람을 담습니다. 구독문의: 043.731.8114 / 구독링크: https://goo.gl/WXgTFK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