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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기자말]
신안은 꽃의 섬이다. 연중 꽃이 피고 꽃 축제가 열린다. 꽃을 그린 정겨운 벽화도 많다. 신안은 대표적인 섬마다 특별한 꽃을 가꿨고 그 덕분에 섬마다 꽃에 어울리는 특유의 색깔을 입게 되었다. 라벤더 향이 가득한 보랏빛 박지도와 반월도가 대표적이다. 목포에서 다리를 건너 압해도와 암태도를 지나면 여기저기 하나둘 보라색이 나타난다. 지붕, 교량, 버스 정류장….

암태도를 빠져나와 안좌도를 거쳐 반월도와 박지도에 이르면 지천이 보랏빛이다. 주민들의 일상용품까지 보라색이다. 그래서 퍼플섬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보랏빛은 강렬하고 고급스러우며 은근히 환상적이다. 보랏빛은 신안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한몫 톡톡히 했다.
 
계절마다 형형색색, 연중 꽃축제 

꽃 축제도 끊이지 않는다. 섬 겨울꽃 축제(12월 중순~1월 중순, 압해도 분재공원), 1004섬 수선화 축제(3월 중순~3월 말, 선도), 신안 튤립 축제(4월 중순~4월 말, 임자도), 유채꽃 축제(4월 중순, 지도), 수국 축제(6월 중순, 도초도), 섬 원추리꽃 축제(7월 중순, 홍도), 섬 맨드라미 축제(10~11월, 병풍도) 등.
 
신안군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튤립공원에서 매년 4월 열리는 튤립 축제 ⓒ 신안군
   
신안군 병풍도에서 매년 10월 열리는 맨드라미 축제. 닭벼슬처럼 피어난 붉고 노란 맨드라미들이 강렬한 이미지를 뿜어낸다. ⓒ 신안군
 
겨울부터 이른 봄까진 신안의 어느 섬에 가도 동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압해도에 가면 설경 속 애기동백에 흠뻑 취할 수 있다. 압해도의 1004 섬 분재공원에 위치한 애기동백숲엔 애기동백 1만 1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백색의 눈 속에 점점이 피어난 붉은 애기동백들이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선도에 가면 바다와 어우러진 수선화 군락이 장관을 연출한다. 선도에서 수선화를 처음 가꾼 사람은 30여 년 전 귀향한 90대의 현복순 할머니. 수선화와 여러 꽃을 정성스레 가꿔온 현복순 할머니의 아름다운 마음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7월이 되면 홍도 산자락에 원추리꽃이 만발한다. 원추리는 육지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꽃. 섬에서만 자라는데 그중에서도 홍도에 집중적으로 서식한다. 홍도의 원추리는 공원을 조성해 가꾸는 꽃이 아니라 산 능선을 타고 자라는 꽃이어서 훨씬 더 자연스럽고 생명력이 더 충만해 보인다. 게다가 꽃이 유난히 크고 질감이 좋아 고급스러운 매력을 풍긴다. 비경의 섬 홍도의 또 다른 매력이다. 

매년 10월 병풍도에선 맨드라미 축제가 열린다. 맨드라미는 7~8월 개화해 10~11월까지 꽃을 피운다. 맨드라미는 가을꽃 가운데 가장 오래 피면서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꽃이다. 병풍도의 맨드라미는 붉고 노란 꽃들이 닭 볏처럼 피어나 더더욱 강렬한 분위기를 풍긴다.
 
신안 자은도 유각마을 초입에서 만나는 동백·감·벚꽃 파마머리 벽화. ⓒ 이광표
 
꽃 그림 벽화도 눈길을 끈다. 암태도 기동삼거리의 동백파마머리 벽화는 신안지역 최고 인기 벽화다. 애기동백 실물과 할머니 할아버지 파마머리의 절묘한 만남. 암태도를 찾는 사람은 거의 빠짐없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자은도 들어가는 길목에도 이와 유사한 할머니 벽화가 그려져 있다.

수국의 섬 도초도에도 집의 담장이나 창고 벽에 수국을 그려 놓았다. 타일로 수국을 표현한 담장도 보인다. 비금도 출신 바둑기사 이세돌의 어머니(비금도 거주)가 수국 화환을 쓴 모습의 벽화도 있다.

수선화의 섬 선도에는 농협창고나 주택 담장에 수선화가 그려져 있다. 조희룡(1789~1866)의 유배지 임자도의 건물 외벽 곳곳에는 그가 사랑했던 매화 그림이 보인다. 꽃은 이렇게 신안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렇기에 신안에서 꽃을 만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신안 사람들의 일상과 내면, 그리고 신안의 역사를 만나는 일이다.

뮤지엄에 가면 신안이 보인다

꽃이 있는 신안에 '뮤지엄'(박물관과 미술관)이 빠질 수 없다. 신안군은 '1도(島) 1뮤지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10개 섬에 26개의 뮤지엄(박물관 11개, 미술관 13개, 전시관 2개)을 건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압해도의 저녁노을미술관, 자은도의 1004뮤지엄파크, 임자도의 조희룡미술관, 비금도의 이세돌바둑박물관, 흑산도의 철새박물관과 새공예미술관, 증도의 소금박물관과 갯벌박물관, 하의도의 야외조각미술관 등. 대부분 섬의 특징과 역사를 살린 박물관과 미술관이다.

임자도 조희룡미술관에선 유배객 조희룡의 삶을 돌아보고 그의 격정적인 매화 그림을 느껴볼 수 있다. 신안에는 국내 최대규모의 염전이 있고 이곳에서 최고 품질의 천일염을 생산한다. 그중 한 곳인 증도의 태평염전에는 소금박물관이 있다. 1953년에 건축된 석조 소금창고를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소금의 존재 의미, 신안에서 최고 품질의 소금이 생산되는 비결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흑산도 철새박물관. 한반도 최서남단 흑산도가 철새들의 주요 기착지임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 신안군
 
흑산도의 철새박물관과 새공예박물관도 흥미롭다. 한반도의 최서남단 흑산도는 철새들의 주요 이동 길목이다. 국내의 철새 600여 종 가운데 420여 종이 흑산도 일대에서 관찰된다. 그러한 특성을 살려 철새박물관을 조성한 것이다. 박물관에선 다양한 조류 표본 등 생물 자료를 선보이고 있다.

새공예박물관은 전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새와 관련된 공예품을 소장 전시한다. 2023년 한 해 동안 두 박물관에 1만여 명이 관람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흑산도 하면 정약전, 홍어 정도만 알고 있던 일반 관광객들에게 철새 기착지라는 흑산도의 새로운 면모를 깨닫게 해주는 흥미로운 박물관이 아닐 수 없다.
 
자은도의 복합문화예술단지인 1004뮤지엄파크. ⓒ 신안군
 
압해도의 저녁노을공원, 자은도의 1004뮤지엄파크는 빼어난 바다 풍광을 배경으로 다양한 문화와 역사와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1004뮤지엄파크엔 세계조개박물관, 새우란전시관, 수석미술관, 수석정원, 바다휴양숲공원, 해송숲오토캠핑장 등이 어우러져 있고 바다 위로 가로놓인 천사대교(압해도~암태도)도 감상할 수 있다.
 
신안군 안좌도의 김환기 고택 인근 저수지에 들어서는 플로팅 뮤지엄(조감도). 다음달 공사를 마무리하고 이르면 올해 12월 개관할 예정이다. ⓒ 신안군
 
신안군은 더욱 야심찬 뮤지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김환기의 고향 안좌도에 조성 중인 플로팅 뮤지엄이다. 김환기 고택 인근의 신촌저수지에 콘크리트 부잔교(浮棧橋)를 이용해 건물을 띄우는 방식으로, 육면체 형태의 전시실과 사무실 등 7개 동으로 구성된다. 김환기 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미술을 선보이는 이색 뮤지엄이 될 것이다. 올해 6월 공사를 마무리하고 이르면 12월경 개관한다.

자은도에는 조각 전문 미술관인 인피니또 미술관을 건립한다. 서울의 삼성미술관 리움과 강남 교보타워를 설계한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를 맡았다. 5월 공사에 들어가 2025년 6월경 마무리된다. 이곳에는 목포 출신 조각가 박은선의 작품 '무한기둥'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태어난 하의도에는 김대중 아카이브홀이 들어선다. 한국 현대정치사의 거목인 김대중의 인생 역정과 정치 철학을 만나보는 공간이다. 신안군청 문화예술1팀의 이건욱 주무관은 "하의도 소금박물관 건물을 증축해 현대정치사의 아카이브 공간으로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올해 12월 완공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신안선 수중 발굴을 기억하는 기념관도 생긴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증도 방축리 앞바다에서 진행된 14세기 중국 원나라 무역선 발굴은 한국 수중 발굴의 시발점이 된 기념비적인 발굴이다.

그러나 발굴 유물은 모두 목포와 서울로 옮겨졌고, 방축리 인근에는 기념비만 세워놓아 신안군민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신안해저유물 방문자센터'가 방축리 발굴해역 바로 앞에 2026년 들어선다. 신안선 발굴의 의미를 더 되새기고 동시에 신안의 역사와 문화의 의미를 부각하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형물로 펼쳐보는 어류학습도감
 
신안 도초도 수국공원 앞에 조성된 간재미 조형물. ⓒ 이광표
 
신안의 섬들에는 거리 조형물이 많다. 민어(임자도), 짱뚱어(증도), 병어(지도), 농게(지도), 간자미(도초도), 새우(임자도) 등 신안 근해에서 잡히는 생선을 소재로 한 것이 특징이다. 흑산도엔 고래 조형물도 있다. 일제강점기 흑산도에서 고래 파시(波市)가 열렸을 정도로 고래잡이가 성행했다. 

어류 조형물들은 우선 그 섬의 특징을 알려주고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생선에 관한 지식이 짧은 사람들에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짱둥어 조형물에서는 친근감과 편안함이, 민어 조형물에서는 육중한 퍼덕임과 힘찬 솟구침이, 병어 조형물에서는 싱싱함이, 간자미 조형물에서는 부드러운 유영 모습이 두드러진다. 모두 그 생선의 생태를 잘 부각한 것이다. 

신안의 섬에서 만나는 여러 생선 조형물들은 일종의 어류학습도감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역시 '자산어보'의 섬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김병희·김신동·홍경수, 《보랏빛 섬이 온다》, 학지사, 2022
신안군, 《사계절 꽃피는 바다 위 정원 플로피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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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안, #꽃축제, #뮤지엄, #거리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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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에서 문화부 기자, 정책사회부장, 오피니언팀장, 논설위원 등으로 일했고 현재 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중들이 문화유산과 예술을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고 향유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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