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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퇴근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직 몸이 가볍구먼!' 자신을 과대평가했던 탓일까. 달리기를 시작한 지 이틀 만에 문제가 생겼다. 오른쪽 발목과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운동화 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찌릿한 통증이 생겼다.

1시간을 생각하고 나갔던 달리기를 20분만 하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마침 신호등 초록불이 깜빡거리며 남은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빨간 불로 바뀌기 남은 시간은 15초.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뛰었을 그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했다.

횡단보도 앞 그늘막 의자에 앉아 욱신거리는 발목을 손으로 주무르며 다음 초록불을 기다렸다. 시간도 생겼겠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신호가 바뀌기 전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어... 아직 빨간불인데, 저러다가 큰일나면 안 되는데...'

말릴 새도 없이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다행히 양옆으로 자동차가 가까워질 때쯤 신호등은 초록불로 바뀌었다. 신호가 바뀌자 모여있던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1/3 정도 앞서있던 할아버지를 한 사람 한 사람 추월하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발목이 아팠던 내가 할아버지를 앞섰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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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유난히 짧게 느껴졌던 초록불이 빨간 불로 바뀌기 바로 직전,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었다. 그리고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꽤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직접 겪어보니 알게 됐다

신호등 초록불이 깜박거리면 냅다 뛰는 게 당연했다. 숨이야 차겠지만 잠시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우선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작 한 쪽 발목이 아프자 20m 되는 그 거리를 뛸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레 사라졌다.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교통약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교통약자'란 생활 차원에서의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뜻하는데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동안 '교통약자'라는 말은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어쩌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발목이 아픈 와중에 건넌 횡단보도는 실제 길이보다 2배는 더 길어 보였다. 남은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사라지는지, 깜박거리는 초록불에 조급해진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남은시간을 알려주는 신호등을 보면 자연스레 조바심이 생긴다.
 남은시간을 알려주는 신호등을 보면 자연스레 조바심이 생긴다.
ⓒ 손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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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와 모두의 안전을 위한 신호체계 운영되기를

횡단보도의 녹색 신호 보행 시간은 일반적으로 미터(m)당 1초 + 7초이며, 어린이나 노인 보호구역은 0.8미터당 1초 + 7초로 계산된다. 예를 들어 20m인 횡단보도를 건널 때 일반적인 보행속도라면 20초에 7초가 더해져 27초가 작동되는 것이다.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여유가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보행자(교통약자)는 어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운전자는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는 보행자를 보고 깜짝 놀라는 위험한 장면이 목격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알고 여러 지자체에서는 보행 신호를 알아서 늘려주는 스마트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카메라가 보행자를 감지하여 신호 시간을 자동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보행신호 연장은 최대 10초만 연장되지만 그것만으로도 교통약자에겐 희소식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엄마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어린이였고, 가끔은 발을 다쳐 속절없이 반쯤 남아있던 초록불을 그냥 보내버린다. 누구나 교통약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교통약자, 운전자, 보통의 우리 모두 안전한 도로 위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태그:#횡단보도, #교통약자, #보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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