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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 커티스의 화제의 새 다큐멘터리 시리즈 '덫: 우리의 자유의 꿈에 무슨일이 있었는가'의 제목 화면
ⓒ BBC
이미 칸 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악몽의 권력(The Power of Nightmares)>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아담 커티스(Adam Curtis)가 새로 만든 화제 다큐멘터리 시리즈 <덫: 우리의 자유의 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The Trap: What happened to our dream of freedom)>가 지난 일요일 BBC2에서 3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미 <악몽의 권력>에서 테러의 위협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유발된 환상(politically driven fantasy)으로 성립되었는가를 심도 있는 분석으로 보여준 바 있는 커티스는 이번 다큐에서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상을 바탕으로 한 협소화된 자유주의 철학이 어떻게 사회정치적으로 확산되어 결국 우리의 자유를 도리어 옥죄고 있는가를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서구사회의 '자유의 덫'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덫'

물론 이 다큐멘터리는 주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유사한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 비추어볼 때 어떻게 민주화된 정부가 왜 오히려 불평등을 촉진시키는 신자유주의에 철저히 복속해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함의를 제공하고 있다.

커티스의 분석은 2차 대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 대공황과 두 차례 세계 대전 등 극심한 혼란의 시기를 겪은 서구 사회는 2차 대전 이후 더 이상 똑같은 혼란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유럽의 복지국가와 같이 국가가 사회에 적극 개입하는 체제를 성립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양분된 세계에서 공산권을 예로 들어 국가 개입은 결국 폭정을 나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하이에크 등 일련의 학자로부터 제기 되기 시작된다. 공공의 개입보다는 자유로운 개인의 이성적 선택을 신뢰하는 이 같은 주장은 냉전으로 인한 갈등과 경제적 불안정이 심화 될수록 점차 힘을 얻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핵무기 전략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게임 이론'이다. 이기적이고, 격리되어 있지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을 전제로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는 게임 이론은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여 극단적인 상황을 막아야 했던 핵전략 분야에서 큰 권위를 얻게 된다. 게임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존 내시(John Nash)는 이를 전 사회에 적용 시켜 이기적인 인간의 자유가 혼란을 주기 보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설파한다.

또한 철학자 벌린(Berlin)은 '자유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이란 강연에서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와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란 개념을 정립시키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소극적 자유'임을 천명한다. 소비에트 혁명을 경험하고 피신한 그는, 사회적 정의, 평등 등 무언가 이상을 가지고 추구하는 '적극적 자유'는 결국 정치적 지도자가 설정한 이상을 사람들에게 강제하는 폭정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억압과 제약으로부터 개인을 자유롭게 하는 '소극적 자유'를 추구할 때만이 이같은 비극을 피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이같은 철학이 신보수주의 세력 등을 통하여 정치, 외교, 사회 전반에 침투되면서 신뢰와 연대, 이타주의 등에 기초한 사회 체제는 이기심, 경쟁, 의심, 상호감시 등을 전제로 한 체제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 같은 체제는 시장이라는 기제를 통해서 조화와 안정을 이룰 것으로 기대가 되었지만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난다.

▲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이자 게임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존 내시. 내시는 이 다큐멘터리의 2부 인터뷰에서 '인간의 합리성에 너무 의존하면 안된다. 이것이 나의 깨달음이다'라는, 인간의 이기적 합리성에 기초한 자신의 게임이론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발언을 한다.
ⓒ BBC
'소극적 자유'에 의한 개혁, 오히려 권위주의 부활시킨다

제프리 삭스 등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러시아에 자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투입이 되었지만 일시에 각종 국가 규제와 개입을 철폐 시켰던 '충격 요법(shock therapy)'은 극심한 혼란을 불러왔고 결국 러시아 국민은 푸틴이라는 권위주의적 통치자를 선택했다.

냉전시절부터 '적극적 자유'를 지향하는 제 3세계 혁명이 확산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소극적 자유' 진영은 벌린이 적극적 자유의 재앙이라고 지적했던 '폭력'을 사용하여 '소극적 자유'를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는 '소극적 자유'의 적대세력 만을 양산시키고 테러위협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이를 막기 위해 오히려 자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들이 양산된다.

'소극적 자유'에 물든 정치인들은, 좌파 정치인 조차 정부의 역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더 이상 적극적인 공공정책은 추구하지 않으면서 공공 서비스 내에 각종 경영 관리 기법을 도입한다.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한 이 관리 기법들은 더욱 촘촘한 통제와 감시를 부르고 만다. 시장의 확산에 따라 불평등은 확산되고 결국 인간의 자유는 그토록 자유롭고자 했던 계급과 통제와 감시의 '덫'에 갇히고 만다.

▲ 인간은 언제나 당신을 배신할 것이다.
아담 커디스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기적이고 의심하고 배신하는 인간의 본성을 전제로한 협소한 자유의 개념은 잘못되었으며 이것이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 BBC
서구의 '소극적 자유'와 우리나라의 '절차적 민주화'

이 다큐는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있었던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주로 재야 민주화 세력은 근본적인 사회 경제적 개혁을 동반하여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주장한데 반하여 제도권내 민주화 세력은 직선제 등 절차적 민주화를 주장해왔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민주적 제도만 성립되면 나머지는 자유롭고 합리적인 인간들이 합당한 선택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소극적 자유'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즉, 90년대 초반부터 집권세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형식적 민주화 세력'이 초반부터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소극적 자유'에 기초 한 신자유주의적 사회 경제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어떠한 지향과 이상을 제시하는 '적극적 자유', 즉 '실질적 민주주의'와는 달리 '소극적 자유', 즉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않는다. 유일한 지향이 있다면 '형식적 민주화'를 완성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이는 왜 노무현 정부가 민주화 이후의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경제적 개혁을 추진하기보다 그토록 탈권위주의, 지역감정 해소 등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에만 집착을 해왔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후퇴한 민주주의의 꿈

이처럼 형식적 민주주의 개념에 갇혀 있는 집권 민주화 세력이 종국에 소극적 자유의 본산인 미국과의 완전한 결합, 즉 한미FTA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그 들이 형식적 민주주의의 덫에 갇혀 있는 동안 시장은 전면화되면서 양극화 확대, 비정규직 확산, 사교육비 폭증 등으로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어 국민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오히려 박탈되어가고 있다.

결국 민주화의 과실은 특권층에게 돌아가고 삶이 더욱 팍팍해진 서민에게 더 이상 절차적 민주주의는 그 의미조차 상실되어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를 그리워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러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목격되었던 민주주의의 후퇴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그토록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우리 사회가 협소한 민주주의에 갇혀 결국 민주주의 후퇴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의 민주주의 꿈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덧붙이는 글 | 본 다큐멘터리는 BBC도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고 향후 DVD출시 계획도 없습니다. 하지만 영어권 동영상 사이트인 유투브(www.youtube.com)에 다큐멘터리 일부가 올라와 있으며 새롭게 영어권에 보급되고 있는 P2P 프로그램인 토렌트(torrent)를 통해 동영상 파일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blog.naver.com/borongs)를 방문하시면 전체 다큐멘터리 내용이 잘 요약된 서론부를 번역문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노무현, #민주주의, #악몽의 권력,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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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지역및복지행정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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