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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람 맞나? 5년간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독방생활을 하다 26일 재판이 시작된 데이비드 힉스의 소년시절 모습(왼쪽)과 최근 모습.
ⓒ 앰네스티 호주 제공
인간은 우주속의 먼지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 누구도 속박할 수 없는 무궁한 자유의지를 가진 우주 같은 존재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 존 하워드 호주 총리, 그리고 남부 호주 애들레이드 출신의 데이비드 힉스(31) 모두 인간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한 명, 데이비드 힉스만은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에서 자유를 속박당한 채 5년 넘게 갇혀있는 신세다.

한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에 근거한 공정한 재판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재판은커녕 기소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무려 5년 이상 햇볕도 들지 않는 독방에 수감됐다. 미국의 맹방인 호주 출신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갇힌 지 5년 2개월만의 첫 재판

언제 풀려날지도 모른 절망적인 상태에서 데이비드 힉스는 25살의 청년에서 31살의 중년으로 변했다. 그가 체포되었을 때 그의 둘째 아이는 태어나기 전이었다. 아직 만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5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3월 26일 오후(미국시간), 마침내 힉스는 재판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혐의는 미국과 동맹국에 테러공격을 하는 알-카에다 요원이 되어 적대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탈레반 요원과 함께 있다가 체포되어서 중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데이비드 힉스는 당초 미군과 동맹군을 의도적으로 살인하려 했다는 혐의(enemy combatants)를 받았는데, 지금은 테러단체에 물질적 지원(material support to terrorism)과 알-카에다 테러범훈련에 참가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관타나모 군사기지 안에 있는 군사법정에서 시작된 데이비드 힉스 재판은 380여명의 수용자 중에서(처음엔 600여 명이었음) 첫 번째로 재판을 받는 케이스여서 호주는 물론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호주의 주요언론들은 중견기자들을 현지로 특파해서 생중계하다시피 하며 매시간 상세한 보도를 하고 있다.

모국어조차 잊게 만든 독방생활 5년

▲ 관타나모 미군 법정에서 데이비스 힉스가 재판받고 있는 모습 스케치
ⓒ AP=연합뉴스
법정 안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기자의 설명과 그림으로 상황을 전하고 있는데, 법정에 출두한 데이비드 힉스의 모습이 너무 많이 변해 크게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도 전해진다.

채널7의 라니 세들러 특파원은 "순하고 귀여운 용모의 어린 시절의 힉스 모습과 체포 당시의 25살 모습만 상상하다가 그를 처음 만나는 순간 그가 동일인이지 의심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세들러는 이어서 "머리를 깎지 않아 가슴까지 늘어졌고, 어제 깎았다는 수염도 듬성듬성 자국이 남아있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 수용소의 한 관계자는 햇볕도 들지 않는 폭 1.4m 길이 2.4m의 독방에 수갑에 채인 상태로 5년 동안 갇혀있으면 누구나 다 저렇게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그녀는 "눈 아래쪽에 검은 라인이 생긴 모습을 보고나서 왜 수많은 수용자들이 자살을 기도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면서 "이번 재판이 미국 부시행정부의 인권정책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보도를 마무리했다.

한편 법정 안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한 채널9의 매키논 특파원은 "데이비드 힉스가 모국어인 호주어(영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놀랐다"면서 "그는 발음만 못하는 게 아니라 호주발음을 잘 알아듣지도 못했다"면서 그 이유를 간수들에게 찾기도 했다.

매키논 특파원은 이어서 "그가 제대로 변론을 받을 수 있도록 변호사를 더 충원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면서 "낭만적인 청년으로 알려진 그의 모습은 간데없고 주변의 사람들을 의심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법관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 발언하다가 제지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21세기 판 수용소 군도' 관타나모 미군기지

▲ 엠네스티가 호주 시드니에 설치한 관타나모 수용소의 독방 모형에서 한 시민이 쇠족쇄를 들어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그런 연유였을까? '21세기 판 수용소 군도'로 불리는 햇볕조차 들지 않는 작은 독방 감옥에 갇혀 있는 그는 "호주가 나를 버렸다"고 절규했다. 실제로 자국민 보호를 위해서라면 해외에 서슴없이 군대까지 파견하는 호주 정부가 유독 이 사건에 한해서는 5년 이상 '모르쇠'에 가까운 대처를 해왔다.

같은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영국인들이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모두 본국으로 송환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영국인 수용자 3명은 자국에서 재판을 받게 하겠다는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요청으로 송환된 바 있다.

그러나 굴욕적인 친미외교를 펼치고 있는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데이비드 힉스는 테러 혐의를 받는 위험천만한 사람이다. 값싼 동정심보다는 합당한 재판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투로 한두 번 발언하고는 지난 5년 동안 언론의 질문에 '노코멘트'로 일관해 왔다.

그 이유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하워드 총리의 친미 혹은 친부시정책에 있다. 예의 "호주의 국익을 위한 선택" 주장을 되풀이 한 것.

최근에는 "데이비드 힉스를 일단 호주로 데려와서 호주 법정에서 재판받게 하자"는 국내 여론이 있었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2월 6일자 호주통신(AAP)은 다음과 같은 하워드 총리의 발언을 보도했다.

"힉스를 호주로 데려올 수 있지만 그가 호주법에 의해 바로 풀려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데려오지 않는다. 다만 그가 미국에서 빨리 재판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난 1월 11일 데이비드 힉스 감금 5주년을 맞아, 호주 국민의 여론은 "5년 동안 자국민을 내동댕이친 것은 호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더구나 힉스의 재판 없는 억류와 하워드 총리의 모르쇠 정책이 금년 안에 실시될 예정인 연방총선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어 하워드 총리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난 2월 6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의 보도에 의하면 여당인 자유-국민 연립당에서조차 "하워드 총리의 몰인정한 정책이 민심을 여당으로부터 이반시키고 있다"면서 그 실례로 최근 집권당 지지도가 급격하게 떨어진 여론조사의 결과와 2월 3일 서부호주에서 실시된 보권선거 참패를 들었다.

"방랑과 모험을 즐긴 청년이었는데..."

데이비드 힉스의 아버지 테리 힉스는 “데이비드는 1975년 호주 아들레이드에서 출생해서 성장했으며 방랑과 모험을 즐기는 청년이었다”고 밝혔다. '호주출신 탈레반'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힉스는 지난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주도 전투에서 포로로 체포되었다.

남부호주 아들레이드에서 무슬림으로 개종한 힉스는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 훈련을 받은 다음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탈레반과 함께 있다가 미군에게 체포되어 관타나모 수용소로 압송됐다.

그후 미 해군 군사법정은 그를 살인미수와 적군을 도운 혐의로 전범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미국 대법원은 관타나모에 수감 중인 테러리스트를 기소한 군사법정이 미국 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무효판결을 내렸다. 결국 그는 새롭게 급조된 군사법정에 의해서 최근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연유로, 군사법정의 모든 절차가 미국의 편의주의에 의존하고 있다는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다.

데이비드 힉스는 최악의 경우 종신형을 언도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사정이 이쯤 되자 하워드 총리가 오히려 다급해졌다. 그는 악화되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서 미국을 상대로 빠른 재판을 촉구하고 뒤늦은 유감 표명도 했다. 2007년 10월에 연방총선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

▲ 중동의 대지, 풀, 사막, 모래, 나무를 사랑한다는 힉스의 메모.
ⓒ 엠네스티 호주 제공
"나를 여기서 내보내 주오!

지난 1월 말,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변호사에게 전해진 데이비드 힉스의 짧은 편지가 언론에 공개됐다. "여긴 생지옥이다. 나를 여기서 내보내 주오"라는 내용의 절규가 담긴 힉스의 편지는 호주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주미호주대사관의 영사에게 보내는 형식의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영사. 나는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소. 당신에게 말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오. 전에 당신을 만나서 얘기한 것 때문에 수용소에서 처벌을 받았소. 나의 상태는 아주 나쁘오(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라는 내용으로 시작된 편지는 호주 정부를 원망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호주 정부는 나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그저 견딜만한 상황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소. 그건 사실이 아니오. 그럼에도 내가 당신을 만나는 걸 원치 않는 이유는 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까발린 다음 처벌받는 게 두렵기 때문이오. 당신은 나를 위해서 여기에 오는 게 아니고 나를 5년 이상 내팽개친 존 하워드 정부를 대신해서 올 따름이오. 진정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다면, 나를 여기(생지옥)에서 내보내 주오."

데이비드 힉스의 편지 공개를 계기로 "친미를 통한 국익우선정책도 좋지만 호주 시민이 저토록 참담하게 장기 억류되도록 방치한 하워드 총리는 정치 리더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2월 6일자 <데일리텔레그래프> 독자의견)"는 등의 강력한 비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편 2001년 말, 파키스탄에 머무는 동안 9·11테러를 사전 인지하고 있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3년 남짓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혔다가 2005년 1월 '혐의 없음'으로 석방된 맘도우 하비브씨가 NSW주 총선에 출사표를 냈다.

그는 2월 1일자 <데일리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정치권이 호주에 거주하는 무슬림의 의사를 대변해주지 않아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주에 실시된 NSW주 총선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여 상당한 득표를 했으나 낙선했다.

지난 11년 동안 높은 지지율로 장기집권해온 하워드 총리가 최근 60%대에서 30%대로 지지율이 급락한 것도 데이비드 힉스 건과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180일 안에 재판을 마쳐야 하는 관타나모 군사법정의 소식이 호주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여론의 관심을 끌어모을 것이다.

태그:#관타나모, #수용소, #호주인, #힉스,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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