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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커피를 하루에 몇 잔씩 마십니다. 아버지랑 커피를 마시면서 온갖 이야기를 다 하십니다.
ⓒ 이승숙
"아부지, 커피 한 잔 할까요?"

아침밥을 다 먹고 빈 그릇들을 치우면서 아버지한테 물어봤다. 아버지는 아직도 못다 삼킨 반찬들을 우물우물 씹으시면서 좋다고 하셨다.

우리 집에 친정아버지가 와 계신다. 오신 지 열흘 가까이 되었다. 종이 가방에 갈아입을 옷 몇 가지 챙겨들고 아버지는 우리 집에 오셨다. 아버지가 오시자 나는 할 일이 많아졌다. 안 먹던 커피도 하루에 몇 잔씩 마시고 있다. 식사 후에 커피 마시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서 늘 커피 물을 올리고 커피를 탄다.

지난 주 월요일(2일) 밤이었다. 회식이 있어서 퇴근이 늦어졌던 남편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빨리 장인어른께 전화 해 보라고 그랬다. 아버지가 사위한테 전화를 하셨다는 거였다. 생전 가봐야 전화 한 통 안하시던 장인어른이 사위에게 전화를 했으니 남편은 반가운 마음과 함께 놀란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서울 사는 큰고모가 무릎이 좋지 않아 수술을 했는데 작은 아버지와 작은 엄마들이 고모 병문안하러 내일 서울 올라간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몸도 안 좋고 해서 올라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부지, 같이 오이소. 서울 오싰다가 우리 집에 오이소오."
"아이다. 내가 다리 힘도 없고 해서 그래 오래 여행 몬 한다. 백지로(괜히) 내가 가마 여러 사람이 힘들다."
"아부지 무신 말씀입니꺼? 이번 참에 같이 안 오마 아부지 혼자서는 몬 옵니더. 그러이 이번에 같이 오이소. 아부지가 몬 걸으마 작은 아부지가 아부지 업어서라도 올 꺼 아입니꺼. 그라이 이번 참에 우리 집에 오이소."

효도할 기회를 주십시오

▲ 마당에 있는 나무들을 전지하고 있는 아버지. 사과농사 지으실 때 그 많던 사과나무들을 겨우 내내 전지하셨던 아버지, 그 솜씨를 조금 보여주시네요.
ⓒ 이승숙
우리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내 혼자 계신다.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서 우리 집에 와서 지내시라고 말씀드려도 아버지는 늘 사양하셨다. 아들 밥은 앉아서 받아먹고 딸 밥은 서서 받아 먹는다는 옛말이 있더니 아무리 자식이라도 아들 집과 딸집은 다른가 보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3년 전에 우리 집에 와보시고는 못 오셨다.

3년 전에만 해도 아버지는 건강이 좋으셨다. 게이트볼도 하시고 아침 산책도 안 빠뜨리고 하셔서 몸이 좋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느 새 우리 아버지는 상노인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혼자서는 여행도 할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아버지는 다시는 우리 집에 못 오실 거 같았다. 그래서 계속 아버지에게 강권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온갖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 사양하는 거였다. 아버지인들 왜 안 오시고 싶겠는가. 하지만 딸과 사위가 힘들까봐 계속 사양하시는 거였다. 그러자 옆에서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남편이 수화기를 넘겨받으면서 장인인 우리 아버지에게 말하는 거였다.

"장인어른, 오십시요. 저희 괜찮습니다. 제발 오십시요. 장인어른, 저희가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제발."

남편은 목이 메어서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결혼하자마자 장모님이 돌아가셔서 예쁘게 잘 사는 모습을 못 보여드린 게 늘 안타깝다 하던 남편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우리 집 나들이를 간곡히 간청했다.

아버지는 우리 집에 오시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자식들이 힘들까봐 서울 행을 포기하신 거였다. 그러고 나서 생각하니 마음 한 쪽이 많이 서운하셨던지 사위에게 안부 전화를 하신 거였다. 우리는 아버지의 그 마음을 읽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무조건 올라오시라고 했다. 우리 집은 시골집이라서 아버지가 계시기에 아파트만큼 답답하지는 않으니까 오셔서 계시다가 가시라고 했다. 그렇게 강권해서 아버지는 서울로 올라오셨다.

▲ 젊어서는 이 산 저 산 다니시며 나무짐을 해다 나르셨던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지팡이 없이는 발걸음을 못 옮길 정도로 다리 힘이 없어졌습니다. 진달래 구경하러 산에 갈까 하다가 잘 걷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서 가까운 절에 다녀왔습니다.
ⓒ 이승숙
아버지가 오시니 일이 많긴 많아졌다. 삼 시 세끼를 꼭꼭 챙겨야 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국물이 있어야 밥을 편히 잡수실 수 있으니 그거 챙기는 거도 일이라면 일이었다. 그리고 집을 오래 비울 수도 없었다. 어디 나갔다가도 밥 때만 되면 집에 돌아와야 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함께 계시고부터 밥도 많이 잡수시고 신수도 좀 훤해지신 거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구들방에 뜨뜻하게 불 지펴서 아버지 쉬시도록 해드리고 무른 반찬 만들어서 아버지 밥 잡숫도록 하면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효도고 행복이란 생각을 한다. 돌아가시고 안 계시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우리 집에 계실 동안만이라도 편히 모셔 드리고 싶다.

아버지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별거도 아닌 이야기들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바로 아버지에겐 약이 되고 피가 되리라 믿으며 나는 오늘도 아버지에게 '커피 한 잔 할까요?' 하며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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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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