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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매일경제>·MBN과의 특별대담에서 양도세·종부세 감면을 주장하면 '1% 대통령'이라고 한 것에 대해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두 대권 주자는 다음날 바로 이를 반박하는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고 한다.

정책 공방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서 3대 정치 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정책 공방을 벌이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발언 내용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하향 안정화되는 것이 우리 경제에 가장 긍정적이다.
② 그 동안 시장 상황에 대한 과장 때문에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③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가 내는 양도소득세는 그리 많지 않고, 또 종부세 대상자는 근로소득 외에 자산소득이나 잡소득이 있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1가구 1주택 종부세 대상자로서 65세 이상 되는 사람은 1%도 되지 않기 때문에, 양도세·종부세를 깎아 준다고 공약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는 '1% 대통령' 많아야 '4% 대통령'이다.
④ 실효성 없는 공약을 가지고 이상한 기대 심리를 만들어내면 우리 국가 경제와 국민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힐 것이기 때문에 부동산 문제는 건드리지 말기 바란다.


지금까지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과 관련하여 범한 실책이 적지 않지만, 이번 발언의 내용에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관계를 왜곡한 부분도 없고 논리의 비약도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의원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어렵게 정착시킨 부동산 정책의 기조가 흔들리는 것을 막아보려는 정책적 의도가 더 강한 것 같다. 정치적 의도가 담긴 발언은 대개 사실 관계의 왜곡이나 논리의 혼선과 비약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부동산 정책 흔들기를 막으려는 노 대통령

<매일경제>의 보도에 의하면 박근혜 의원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친 것이 보유세인데 이 보유세가 너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너무 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1주택을 오랫 동안 보유하고 있는 국민들은 사실상 투기목적이 없는 게 아니냐"며 "이런 상황에서 양도세를 엄청나게 높이면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논란의 여지가 큰 발언이지만 상세한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가 배포되지 않아서 박 의원의 발언을 분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반면 이명박 전 시장의 캠프에서는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시장이 한 발언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배포하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 전 시장의 발언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기로 한다.

이명박 전 시장 측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검토하면서 필자는 이 전 시장의 발언 요지를 정리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여기저기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이 조세정책을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투기억제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조차 금방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명박 전 시장의 발언을 직접 들어 보자.

"이것은 그냥 경제, 1% 경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안 되거든요. 경제란 것은 거시적으로 오늘의 정책이 앞으로 어떤 영향 미치느냐, 거시적으로 해석을 해야 되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오늘 당장 문제를 보시고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내가 며칠 전에 (언론 인터뷰)할 때도 부동산정책을 급격하게 변화시킨다, 이런 이야기 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노 대통령의 언급이 경제 전체를 보는 안목에서 보는 것이 아니고 일시적인 평가다. 그래서 나는 일시에 이 정책을 당장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고, 1~2년 보자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노 대통령은 단기적인 안목을 갖고 있고 자신은 장기적 안목을 갖고 있다는 뜻인가? 장기적 안목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옳다면 정책 기조를 바꾸어야 할텐데, 정책을 바꾸지 않고 1~2년 보자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 이명박 전 서울시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보유세 강화 정책은 대표적인 장기대책이다. 그런데 그 정책을 고수하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단기적 안목에서 나왔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앞에서 밝힌 바 정치적 의도가 담긴 발언은 대개 사실 관계의 왜곡이나 논리의 혼선과 비약을 포함하기 마련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면, 노무현 대통령보다는 이명박 전 시장의 발언이 좀더 강한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한다.

발언 내용만 가지고는 이 전 시장의 주장을 금방 이해하기 어려워서 전체 맥락을 놓고 따져 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어떤 정책을 주장하는지 어렴풋이 윤곽이 잡혔다. 이 전 시장은 조세정책을 통해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은 부동산 경기를 위축시켜 서민경제를 어렵게 만든다고 보고 있다.

공급 물량을 확대하면 가격도 안정시키고 부동산 경기도 활성화시켜서 서민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를 확인하고 다음과 같은 그의 발언을 읽으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일시적인 억제가 도움을 주더라도 장기적으로 경기가 하락했다, 서민 경제 더 어려워진다. 공급 물량을 올림으로써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고 그것으로 인해서 경기가 부양되고 그것으로 서민 경제 살아나는 선순환이 안 되고, 일시적 과세를 통해 부동산 공급에 지장 주어서 경기를 죽였다."

부동산 시장은 일반 재화 시장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이 일반 재화 시장처럼 실수요에 의해 움직이는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이 전 시장의 생각이 옳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일반 재화 시장과 성격이 전혀 다르다. 실수요가 아니라 투기적 가수요가 시장을 지배하기 쉽고, 투기가 일어나서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공급을 증가시키기가 어렵다. 일반 재화의 경우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가 줄어드는 데 반해, 부동산에 대한 투기 수요는 가격이 상승할 때 더욱 팽창한다. 투기가 가격 폭등을 부르고 가격 폭등이 다시 투기를 부르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투기 수요를 적기(適期)에 억제하지 않으면 부동산 가격 거품이 팽창하다가 언젠가는 터지게 된다. 거품이 터지면 그때까지와는 다른 양상이 전개된다.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고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가 이어지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생기고 그것이 터져서 어려움을 겪은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허다하다.

이명박 전 시장이 주장하는 대로 투기 수요를 방임한 채 공급 확대에만 주력한다면 위에서 말한 거품의 형성과 붕괴를 막을 길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투기적 가수요에 맞추어 공급 물량을 팽창시키면, 단기적으로 투기 촉발 효과가 발생하고 몇 년 후 실제 공급이 이루어질 때는 투기 수요가 사라져서 심각한 공급 과잉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변동할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이 전 시장이 그토록 염려하는 서민들이다. 부동산 값이 폭등할 때 서민들은 양극화와 주거비용의 상승으로 인해 고통받고, 부동산 값이 폭락할 때는 금융위기와 경제불황의 피해에 심하게 노출된다. 국민경제 또한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이 전 시장의 캠프에서 거품 형성과 붕괴의 사례에 관해 조금만 공부했더라도 이런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경제와 서민을 위한다면 거품 형성과 붕괴의 메커니즘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야 한다. 서민을 잡는 정책을 가슴에 품고서는 기자 간담회 내내 서민 걱정을 했다고 하니 정말 아이러니다.

필자는 최근 한 논문에서 영향력을 크게 확대한 '부동산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을 요약·정리한 적이 있는데('부동산 정책의 역사와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한국사회경제학회 창립20주년 기념 학술대회 발표 논문), 여기서 잠깐 인용해 보자.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부동산 시장에서 수요가 증가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정부가 나서서 그것을 막으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투기만 골라내서 억제할 수 없고, 또 투기는 부동산 값의 변동 폭을 줄여주는 긍정적인 기능을 하기 때문에 억제할 필요도 없다.

사실 외국에서는 부동산 투기에 대해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요란하게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없으며, 정부의 잘못된 개입은 오히려 부동산 값 상승을 부채질할 뿐이다. 보유세 강화를 통해 투기 수요를 억제하려는 정책은 일회성 효과밖에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집값이나 임대료를 상승시킨다. 정부가 굳이 부동산 값을 안정시키고자 한다면, 투기 수요를 억제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토지 공급을 묶고 있는 각종 규제를 풀어서 토지와 부동산의 공급이 원활하게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세례를 받은 이명박

▲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등이 밀집해 있는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일대(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김종철
이 전 시장의 생각과 흡사하지 않은가? 이 전 시장은 부동산 시장근본주의자들과 보수 신문들이 주장하는 '세금폭탄론=공급확대론=투기방임론'의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 전 시장의 발언에는 한국 부동산 정책의 고질병이 되어 버린 냉온탕식 정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 경기부양론'의 영향도 일부 드러난다. "조세정책은 경기에 따라서 융통성이 있는 정책입니다. 헌법이 아니기 때문에 경기 하락에 약간의 부양정책 써야 하고, 지나치게 과열되었을 때 약간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조절할 정책 수단이 있고, 시장상황에 상관없이 일관성 있게 유지해야 할 정책 수단이 있다. 보유세 강화처럼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하는 정책은 후자에 속하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정책이다.

부동산 담보 대출 규제나 거래 규제 등은 전자에 속한다. 이런 구별이 없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정책 수단까지 경기조절용으로 사용하게 되면 정책은 냉온탕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부동산 경기 부양의 유혹을 물리친 것은 김영삼 정부와 참여정부 밖에 없다. 더욱이 참여정부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 시도하다가 모두 실패한 보유세 강화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집권이 눈앞에 와 있다고 판단한다면 직전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미숙함을 비판하고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은 옳지만, 귀중한 역사적 성과를 뒤집는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 1가구 1주택자 양도세 감면이나 1가구 1주택 고령 장기보유자 종부세 감면과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에 계속 집착하는지 지켜보겠다. 만일 앞으로 계속 그렇게 한다면 이 전 시장의 본심이 종부세 제도의 불비(不備)를 바로잡는 것보다는 정책의 기본 방향을 부인하고 '1% 대통령'이 되려는 데 있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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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헨리조지센터 대표,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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