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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도 떠나는 기분이었을까? 아니면 지난 14일 열린 민주노동당 정책토론회를 놓고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과 때아닌 색깔공세로 자신을 공격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었을까. 그는 화려한 분홍색 윗옷에 진남색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민노당 대선 예비주자인 노회찬 후보가 15일 저녁 탤런트 홍석천씨가 운영하는 서울 이태원 아워플레이스(레스토랑)에서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이른바 'LGBT'(통칭해서 성적 소수자) 30여 명과 특별한 정책 간담회를 가졌다.

'가을처럼 청명한 여름 날씨' 덕에 간담회가 열린 아워플레이스 옥외무대에선 멀리 관악산 정상이 훤히 내다보였다. 그림처럼 펼쳐진 관악산 정상 위로는 태양이 사라진 자리를 타는 듯한 붉은 노을이 대신하면서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간담회를 마련한 노회찬 후보는 인사말을 통해 "하늘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다"며 "무지개(게이의 상징)가 일곱가지 색깔이 공존해서 아름다운 빛을 내듯이 여러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로 부터 환호의 박수를 받았다.

이에 장소를 제공해 준 홍석천씨는 "여러분 모두가 하루하루 저 아래에선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오늘 만큼은 딱 지금 불어오는 바람만 자유롭게 숨쉬다 가자"고 답했다. 홍 씨는 이어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유혹(활동을 함께하자고 제안)을 던졌지만 얼마 전 동성애자 비하 발언 때문에 삐졌다"고 말해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노회찬 민주노동당 후보는 15일 성적 소수자들과의 정책 간담회를 통해 "무지개(게이의 상징)가 7까지 색깔이 공존해서 아름다운 빛을 내듯이 여러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로 환호의 박수를 받았다.
ⓒ 민주노동당 박성수

노회찬 후보의 성소수자 '상식지수'는?

이날 자리는 정책 간담회란 이름을 '거창하게' 내걸었지만 사실은 작은 축제와도 같았다. 성적 소수자 행사인 퀴어문화제나 이반문화제, 인권문화제 등의 행사 안에서 기획된 것이 아닌, 독자적인 성 소수자 정책 간담회라는 점에서 더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성적 소수자가 직접 참가하고, 국회의원이 어깨를 맞대고 이들의 일상을 공유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성적 소수자 행사를 국회의원이 직접 마련하기는 노 의원이 처음이다 .

이번 간담회를 기획한 박영선 노회찬 의원실 보좌관은 "성적 소수자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회에, 생소하지만 이들의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며 "이날 간담회가 앞으로 성적 소수자의 권리 찾기 운동으로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정책 간담회에 앞서 김현구 한국에이즈퇴치연맹 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LGBT 스펀지-노회찬 그것을 알고 있니' 코너에선 성적 소수자에 관해 우리 사회가 놓친, 혹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에 대해 퀴즈 형식으로 풀어봤다.

노 후보의 성적 소수자 '상식지수'는 얼마일까. 성적 소수자가 직접 준비한 6개의 문제 가운데 노 후보는 1문제만 틀렸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84점 정도. 노 후보가 틀린 문제는 '중국에서 OO는 동성애자를 서로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로 정답은 '동지'다.

▲ 홍석천 씨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유혹(활동을 함께하자고 제안)을 던졌지만 얼마 전 동성애자 비하 발언 때문에 삐졌다"고 말해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민주노동당 박성수

"노 후보, 본인의 이익위해 이런 거 하지 마시오" 쓴소리도

땅거미가 드리워지고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정책 간담회가 열렸다. 노 의원은 참가자들과 저녁 식사와 간단한 맥주를 곁들이며 성적 소수자들이 당면한 사회적 차별과 소외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노 후보는 자리를 옮길 때마다 "모두를 위한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는 길에 노동자·농민·서민 그리고 모든 차별받는 소수자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해 참석자들로부터 '브라보'를 연발케 했다.

그렇다고 참석자들이 무턱대고 고개만 끄덕거린 것은 아니었다. 노 후보를 향한 쓴 소리도 곳곳에서 들려 왔다.

동성애자인 윤민혁(가명·27)씨는 "(이런 행사를 통해) 본인의 이득, 당의 이익만을 생각하기 보다는, 여기 모인 단 한명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 달라"며 "우리 같은 소수자들에게 관심을 보내 주시면 거기에 수백 배의 애정으로 되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성애자 최명식(가명·32)씨는 "이전에 비해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이 많이 따뜻해졌지만 인권을 점수로 매긴다면 아직도 낙제점"이라며 "우리 사회도 성적 소수자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혹시 <밀양> 보셨어요? 똑같아요. 그냥 다 똑같아요."

이에 노 후보는 "우리사회에 성적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억압과 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 성별변경에 관한 특별법을 제출했다"면서"아직은 국회 내에서 미약한 목소리지만 지난해 대법원 판결대로 헌법에 명시된 인간으로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보장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후보는 그동안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병역거부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차별화된 입법 활동과 인권보호를 위한 행보를 이어왔다. 또 지난 총선에선 성적 소수자의 권리 회복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민노당 안에는 성적 소수자 모임인 '붉은 이반'이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정은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자들이 꿈꾸는 가장 '거창한' 일탈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으로 가장 '올바른' 행동이다. 하지만 용기가 없는 탓에 그들은 노회찬 의원을 맨 앞줄에 세워두고 그를 따라 가고 싶어 한다.

간담회가 전부 끝날 무렵 한 참가자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혹시 <밀양> 보셨어요? 신애(전도연)의 동생이 '밀양이 어떤 곳이에요'라고 묻자 종찬(송강호)이 이런 말 하잖아요. '똑같아예, 딴 데하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예'라고요."

그가 말을 이었다. "저희도 똑같습니다. 그냥 다 똑같아요."

▲ 노회찬 의원과 홍석천씨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민주노동당 박성수

태그:#노회찬, #홍석천, #성적 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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