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르게 살자> 중 은행 강도 역을 맡은 배우 정재영이 은행 직원(이영은)을 총으로 겨누고 잇다.

▲ 영화 <바르게 살자> 중 은행 강도 역을 맡은 배우 정재영이 은행 직원(이영은)을 총으로 겨누고 잇다. ⓒ CJ엔터테인먼트(주)

영화 <바르게 살자>(감독 라희찬, 각본 장진)는 뭔가 다르다. 과장된 몸 개그, '쌍시옷'이 가득한 육두문자(肉頭文字)로 관객을 무리하게 웃기려 들지 않는다. 초를 다투는 긴장감도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 유쾌함의 비밀, 알고 보면 더 재밌다.

 

[웃음 코드 1] 상식은 이제 그만!


영화는 '은행 강도' 이야기다. 거친 몸싸움, 욕지거리는 강도의 기본. 그러나 주인공 '정도만'은 아주 예의바르다. "최선을 다해 바닥에 엎드리십시오", "어르신 죄송하지만, 옆으로 가주시겠어요?" '정도만'역을 맡은 배우 정재영 특유의 낮게 깔린 목소리는 다정하기까지 하다.
 
폭력은 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 은행에 놓은 소파를 발로 차는 게 전부다. 총을 쏘고, 격투기를 하는 장면이 약간 있지만, 모두 상상하는 장면으로 짧게 처리돼 기억도 잘 안 난다. 조직폭력배를 다루는 다른 코미디 영화와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다.

 

[웃음 코드 2] 복잡한 건 싫어~
 

만화적인 소재에 맞게, 쓸 데 없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 영화 중반에 나온 "우슈하고 복싱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는 질문에 대한 답도 그랬다. 자칫 누구 한쪽 편을 들었다가는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민감한 질문.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감독이 걱정됐다. '이거 이러다 게시판이 안좋은 소리로 도배되는 거 아니야?'
 
쓸 데 없는 고민이었다. 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바로 이것. "총 든 놈이 이기겠죠", 정답이다. 이보다 더 깔끔한 답은 없다.

 

교통 경찰이자 은행 강도 '정도만'의 어머니(이용이 분)도 아주 화끈하다. "이제 그만 하고 자수하라"고 설득하러 와 마지막엔 "인감 도장 어디에 뒀냐"며 엉뚱한 질문을 한다. 입담도 저리가라다. 아들에게 안 좋은 소리 좀 하려들면 "우리 아들은 찢어지는 가슴을 '오버로크'(천의 가장자리 실이 풀리지 않게 실로 꼼꼼히 박음질하는 것, 주로 군대에서 쓰는 용어) 쳐가며 일을 하는데…"라며 두둔한다. 그 아들에 그 어머니다. 
 
[웃음 코드 3] 친절한 감독
 

영화엔 실제 모습이 아주 꼼꼼하게 담겨 있다. 새로 부임한 신임 경찰 서장(손병호, 극 중 이름 이승우)의 계급은 '무궁화 3개'(경정)다. 보통 광역시 이상에선 '무궁화 4개'(총경)가 서장 직을 맡는다. 반면 규모가 작은 지방은 한 단계 계급이 낮은 경정이 이를 대신 한다. 강원도 삼포시(가상의 도시)도 지방이라는 것을 감안, 경정으로 계급을 단 것으로 풀이된다.

 

관할(이른바 속칭 '나와바리')에 유난히 민감한 경찰의 모습도 실제와 닮았다. 은행 강도 사건을 브리핑하던 장면에서 나온 "곧 우리 관할을 벗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말은 단순한 웃음 코드에 머물지 않는다. 관할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경찰의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일본 드라마 '춤추는 대수사선'(踊る大搜査線)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강물에 시신 한 구가 떠올랐지만, 경찰은 기다란 막대기로 서로 밀어내기에 바쁘다. 강물을 사이로 두고 관할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헛갈린다.
 

[웃음 코드4] 이 '정도만'이라도 살자


감독은 경찰을 마냥 헐뜯기만 하진 않는다. 나름의 대안을 보여줬다. 교통순경 '정도만'은 융통성이란 눈곱만큼도 없지만, 사람 냄새가 난다. 한가한 시골 마을, 경운기를 타고 가는 노인들에게도 원칙대로 음주단속기를 들이댄다. 하지만 단속에 그치지 않는다. 혹여 술에 취해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해 그는 집까지 직접 경운기를 몬다.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모습엔 '정'(情)이 담겨 있다. 살갑고, 정겹다. 그에게 '정도만'이란 이름을 붙여준 이유도 이'정도만'만 해도 '바르게 사는 것'임을 일깨워주고 싶어서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2007년 10월 18일 개봉. 이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0.12 15:58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2007년 10월 18일 개봉. 이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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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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