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동점골의 주인공 라돈치치가 경남의 주장 김대건 등 두 명에게 붙들려 있다.

극적인 동점골의 주인공 라돈치치가 경남의 주장 김대건 등 두 명에게 붙들려 있다. ⓒ 심재철

 

봄비 그친 밤 문학벌, 칼바람이 불었다. 늦은 저녁 이 시간까지 진정한 봄기운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 이른가보다. 함께 간 친구는 모처럼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딸을 데리고 왔다. 감기 걸리지 않게 따뜻하게 입혀 오라고 미리 연락했더니 정말로 겹겹이 싸매어 옆에 앉혔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은 동쪽 관중석에 앉은 우리를 포함하여 4천 3백여 인천 팬들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다. 아직 경험이 모자란 가운데 미드필더들이 방문팀의 노련한 미드필더에게 오랜 시간을 끌려다녔기 때문이었다.

 

장외룡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2일 저녁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08 K-리그 컵 대회 A조 두 번째 경기에서 종료 직전에 터진 골잡이 라돈치치의 극적인 동점골에 힘입어 경남 FC와 1-1로 비겼다.

 

비슷한 지점을 본 감독의 눈과 관중의 눈

 

전반전이 끝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은 동쪽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불만스런 탄식이 터져나왔다. 0-1로 뒤지고 있는 탓도 있었지만 허리에서 공격과 수비의 연결 고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부분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장외룡 감독은 인천 특유의 '3-4-3' 틀 속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가운데 미드필더로 새 얼굴 '박창헌-김태진'을 내세웠다. 3승 무패로 단독 선두를 내달리고 있는 정규리그 경기가 아니라 컵 대회 일정이었기 때문에 맨 앞의 세 공격수(김상록-라돈치치-보르코)를 빼고는 안방 팬들에게도 비교적 낯선 얼굴들이었다.

 

 경남 골잡이 실바가 인천 미드필더 김태진 앞에서 공을 몰고 있다.

경남 골잡이 실바가 인천 미드필더 김태진 앞에서 공을 몰고 있다. ⓒ 심재철

 

특히, 올해부터 수비수 이정열과 함께 FC 서울에서 옮겨온 미드필더 김태진은 공격의 실질적인 출발점 역할을 해내고자 전반전 내내 의욕적으로 움직였지만 그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공몰기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할 공간에서 공을 끌고 있었고 어쩌다가 찔러주기를 앞으로 보내면 동료 공격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원에서 공을 빼앗기는 바람에 역습에 휘말린 적이 많았다. 31분, 경남 미드필더 김성길의 왼발 직접프리킥 골이 터지기까지 그는 불명예스러운 조력자였다. 바로 전 가운데 쪽에서 공격을 전개하려다가 빼앗긴 공을 되찾기 위해 무리하게 상대 골잡이 실바를 밀어 넘어뜨려 위험지역에서 프리킥을 내줬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관중석에서는 그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전반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는 일부 관중들이 후반전에는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정말로 날개공격수 박재현이 바람을 가르며 뛰어들어왔고 김태진은 보이지 않았다. 감독의 눈과 관중의 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장외룡 감독은 후반전에 적잖은 변화를 주었다. '3-4-3'에서 '4-3-3'으로 그 틀을 크게 바꾸었고 69분에 이장관이 나가고 이준영이 들어오면서부터는 가운데 수비를 보던 이정열을 오른쪽 측면으로 돌려서 이준영과 이정열을 중심으로 측면에서 공격의 실마리를 다시 풀고자 안간힘을 썼다. 노련한 김상록이 날개공격수에서 미드필더로 내려와 공-수를 조율하는 것도 그리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경남의 조광래 감독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한 골을 지키기 위해서 재미없는 수비 축구를 고집했다. 지난 달 26일 상하이에서 우리 국가대표팀과 비긴 북한 대표팀보다 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겹수비를 택했다. 특히, 주장 완장을 차고 나온 김대건은 라돈치치를 찰거머리처럼 따라다니며 공격의 맥을 잘 끊어놓았다.

 

 인천의 세 공격수(파란 옷 왼쪽부터 김상록, 라돈치치, 보르코)를 묶고 있는 경남의 수비수 셋(왼쪽부터 박혁순, 김대건, 송기복)

인천의 세 공격수(파란 옷 왼쪽부터 김상록, 라돈치치, 보르코)를 묶고 있는 경남의 수비수 셋(왼쪽부터 박혁순, 김대건, 송기복) ⓒ 심재철

 

이렇게 한 골을 지키기로 작정한 방문팀을 흔들기 위해서는 과감한 변화가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장외룡 감독이 짚는 맥은 정말로 경남의 수비 조직을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이 '변화 모색'은 칼바람을 맞으며 밤 10시가 다 되도록 기다린 관중들에게 결국 '보람'을 안겨주었다. 후반전 추가 시간 2분이 흘러갈 무렵 왼쪽에서 경남 수비수 한 명을 따돌린 보르코가 공을 띄웠고 이를 향해 골문 앞에서 솟구친 라돈치치의 이마가 빛났다.

 

정규리그를 포함하여 이번 시즌 개인 3호골이며 지난 달 16일 열린 안방 개막전 벼락골(41초)에 이어 안방에서 터진 연속골 덕분에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애칭 '라돈'을 여러 차례 외치는 서포터즈의 재미있는 노랫말이 더욱 크게 들렸다.

 

환호하던 관중들 사이에서는 지키는 축구를 고집하던 조광래 감독 들으라고 '그것 정말 쌤통이다'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로 봄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끝까지 기다린 보람을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덧붙이는 글 | ※ 2008 K-리그 컵 대회 A조 두 번째 경기 결과, 2일 인천

★ 인천 유나이티드 FC 1-1 경남 FC [득점 : 라돈치치(90+2분, 도움-보르코) / 김성길(31분)]

◎ 인천 선수들
FW : 김상록(79분↔최영훈), 라돈치치, 보르코
MF : 윤원일, 박창헌, 김태진(46분↔박재현), 이장관(69분↔아준영)
DF : 이정열, 안재준, 안현식
GK : 송유걸

◎ 경남 선수들
FW : 이용승, 실바(67분↔김진용)
MF : 박희철, 박혁순, 김성길(79분↔김영근), 서상민(87분↔김영우), 이지남
DF : 김종훈, 송기복, 김대건
GK : 성경일

2008.04.03 09:31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2008 K-리그 컵 대회 A조 두 번째 경기 결과, 2일 인천

★ 인천 유나이티드 FC 1-1 경남 FC [득점 : 라돈치치(90+2분, 도움-보르코) / 김성길(31분)]

◎ 인천 선수들
FW : 김상록(79분↔최영훈), 라돈치치, 보르코
MF : 윤원일, 박창헌, 김태진(46분↔박재현), 이장관(69분↔아준영)
DF : 이정열, 안재준, 안현식
GK : 송유걸

◎ 경남 선수들
FW : 이용승, 실바(67분↔김진용)
MF : 박희철, 박혁순, 김성길(79분↔김영근), 서상민(87분↔김영우), 이지남
DF : 김종훈, 송기복, 김대건
GK : 성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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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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