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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이 끝났다. 많은 말들이 난무했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민의의 심판은 내려졌고 삶은 계속되고 있다.

나는 특히 총선 정국에서 지역의 공공병원 즉, 대전의료원에 대한 각 당 및 각 후보자의 정책공약에 관심이 있어서 유심히 모니터링을 했었다.

총선기간 대전의료원 설립 문제가 대전시에 작은 이슈가 되었고, 예상대로 많은 후보자가 정책공약으로 대전의료원 설립 및 유치를 선언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과 달리 4월 4일 대전시가 대전의료원 설립을 위한 시민단체의 활동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더구나 총선에 출마하는 각 당 후보자들의 공약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여서 여론의 관심이 되었다.

[대전시 주장 ①] 대전시, 특히 동구에 더 이상 병원이 필요 없다

우선 대전시는 대전에 특히 동구에 더 이상 병원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구 1000명당 병상수 9.8개로 전국 최고의 병상 밀집지역에 무슨 병원이 더 필요하냐고 반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의원 및 요양병원 병상수를 모두 포함한 숫자로 대전의료원의 기능인 종합병원 기능을 검토하는 측면에서 부적절한 수치이다.

종합병원 병상수만 고려하면 강원도가 1위이고, 대전시는 광주에 이어 부산과 같은 수준이다. 하지만 단순 병상수가 아니라 얼마나 편중되어 있는지, 그리고 의료 이용이 얼마나 활발한지에 대한 질적 기능적 측면을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06년도에 대전시가 직접 펴낸 제4기 지역보건의료계획에 의하면 유성구와 동구가 병원 필요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유성구는 2007년도에 약 500병상의 유성선병원이 새롭게 문을 열어 의료수급문제가 해결되었으나 동구는 아직도 해결되고 있지 않다. 동구는 인구 1000명당 종합벼원 병상수가 1.2개로 전국 평균 2.6개에 절반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07년도에 펴낸 광역자치단체별 병상수급 분석 자료는 단순 병상수가 아닌 실제 의료 이용을 고려한 병상수를 계산하였는데 급성기 병상이 과잉인 부산, 대구, 광주, 울산과 달리 대전은 급성기 병상 과잉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대전시는 전국에서 경기도 다음으로 인구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도시이기 때문에 향후 늘어나는 인구에 따른 수요를 고려한다면 대전시에 병원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주장이 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전시는 민선1기 시장이었던 홍선기 시장 시절 동구의 의료 수요를 이미 예측하고 동구 가오지구에 약 7000평의 의료용지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 용지는 2007년 12월에 대전시 도시계획심의위원회를 거쳐 대전 동구청 이전 용지로 전환하여 준 후 아무런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더 이상 병원이 필요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전시 주장 ②] 대전에 공공병원 필요 업다

다음으로 대전시는 대전에 공공병원이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대전에는 이미 공공병원(충남대병원, 중앙병원, 보훈병원, 시립정신병원 등)이 많이 있고 이들과 연계한 공공보건의료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민간병원의 공공보건의료사업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밝혀야 할 일이 있다. 우선 대전시가 공공병원이라고 주장하는 충남대병원, 중앙병원, 보훈병원, 시립정신병원은 모두 특수 공공병원으로서, 예를 들어 충남대병원은 대전뿐 아니라 충남북 지역의 중증환자에 대한 3차 병원 기능과 연구 및 교육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교육부 산하 병원이다. 중앙병원은 산재전문병원, 보훈병원은 보훈대상자에 대한 병원, 기타 정신병원 등도 역시 특수 목적 병원인 것이다.

서울, 인천, 대구, 부산에 다 있는 지방의료원은 2차 병원으로서 대학병원에 갈 정도의 중증 질병이 아닌 환자들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반 민간병원에서 담당하기 곤란한 환자 예컨대 결핵 등 전염병 환자, 치과 진료가 필요한 장애인 환자, 장기적 집중치료가 요구되어 본인부담 비용이 높은 저소득계층 환자 등에 대해 공익적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지방의료원과 같은 기능을 가지게 될 대전의료원이 앞에서 열거한 특수 목적 공공병원(충남대병원, 중앙병원, 보훈병원, 시립정신병원 등)과는 그 기능과 위상이 현저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대전시가 공공보건의료사업이라고 주장한 내용도 저소득계층의 인공관절 수술 등 단순한 진료비 지원일 뿐 민간병원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예방과 재활 등 보건사업에 대해서는 내용이 매우 빈약하다.

지방의료원이 있는 타 지역에서는 지방의료원이 보건소와 연계하여 주민을 대상으로 한 보건교육에 참여하거나 당뇨, 치매 등 만성질환 의심환자에 대한 검사 지원 등 다양한 예방 재활 사업에 참여하여 지역사회 주민의 만성병 조기발견 조기치료에 기여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사업을 잘 하면 중앙정부에서 매년 평가를 통해 시상을 하고 표창을 하고 있지만 대전시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병원이 없다.

이외에도 지방의료원은 선택진료비를 받지 않는 등 진료비 본인부담 비용이 낮고 건강검진, 장례식장 이용 등에서 타 민간병원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므로 서민들의 생활에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전시의 지방의료원 설립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문제이다. 대전의료원의 설립은 당연히 엄벙덤벙 졸속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보건의료 환경변화를 예측하고 현재 대전시에 가장 필요한 공익적 사업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따져보고 하나씩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신중한 접근이 터무니없는 설립 비용을 내세우며 '현실성'이라는 변명으로 대전의료원 설립을 하지 말자고 주장한다면 분명 문제다.

[대전시 주장 ③] 대전의료원 설립에 1000억~1500억원 든다

대전시는 지난 3월 20일 대전시의회가 주관한 정책토론회에서 대전의료원 설립에 1000억원에서 1500억원이 든다고 주장하며 대전의료원 설립이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왜 그러한 액수가 나오는가에 대한 근거 제시가 없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 펴낸 '2008년도 지방의료원 신규사업지침'에 의하면 병원 신축시 300병상 규모를 가정할 경우 병상당 25평(82.63㎡)으로 계산해서 최대 450억원의 시설비가 들어갈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비지원액이 최대 225억원(법정 국비 투자비율 50%)이 들어가니까 시가 투자할 액수는 225억원이 된다. 이 액수로 천안의료원도 새롭게 이전 신축하고 마산의료원도 현 부지에 완전히 새롭게 건물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물론 대전은 병원설립을 위한 용지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부지구입에 들어가는 액수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지역에 부지를 확보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100억에서 200억의 부지구입비를 고려하더라도 350억에서 450억이면 대전의료원을 설립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비용이 한꺼번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연차별로 단계적인 투자가 필요하므로 계획을 잘 세우면 얼마든지 현실적으로 대전의료원을 설립할 수 있다.

대전시가 염려하는 지방의료원의 운영적자 문제도 기존 지방의료원들에서 점차 적자 폭이 줄어들고 있으며 적자에 허덕이는 지방의료원 숫자도 감소하여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전향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대전시는 거대한 흐름으로 주장되고 있는 대전의료원 설립 주장을 더 이상 외면하고 거부해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 출마자들이 현장에 다니며 민의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정책공약으로 제시하였던 현실을 고려하여 새롭게 선출된 이 지역 국회의원들과 대전시민이 진정 원하는 대전의료원 설립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즉각 작성 제시해주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나백주 기자는 건양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입니다.

이 기사는 breaknew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지방의료원, #대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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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초빙교수입니다. 공공의료 현안 및 정책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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