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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적으로 정부방침에 맞춘 조직개편 방안을 준비해 온 전라남도지만 예상 외로 정원 조정 폭이 큰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전남도청 종합민원실의 모습이다.
 내부적으로 정부방침에 맞춘 조직개편 방안을 준비해 온 전라남도지만 예상 외로 정원 조정 폭이 큰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전남도청 종합민원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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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많다면 뽑아내야죠. 벼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그러나 피는 놔두고 멀쩡한 벼를 뽑아내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지자체의 조직개편안을 내놓은 것과 관련, 공직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그 동안 내부적으로 정부방침에 맞춘 조직개편 방안을 준비하고, 총액인건비와 정원을 관리해 온 전라남도는 정원 조정 폭이 예상 외로 큰 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 지역의 특성상 인위적인 인력감축 우려도 흘러나오고 있다.

전라남도의 경우 이번 개편안에 맞춰 볼 때 본청과 22개 시·군에서 830여 명이 감축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총액인건비와 정원의 테두리를 넘어선 일부 시·군의 경우 인위적인 인력감축이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공무원노조의 반발이 클 것이란 예상이다. 말이 '권고'이지 감축비율에 따라 예산(교부세)을 차등 지원하는 것은 '강제'에 다름 아니라며 일률적인 인력 감축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현재 전라남도는 정원을 줄이는 방법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기존 조직의 감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명예퇴직 등 자연감소 유지와 신규채용 자제, 민간 위탁이나 부서 통폐합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조직관리 부서의 방침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공무원들은 정원감축 방법과 규모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인위적인 퇴출까지 단행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방조직의 군살빼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중복되거나 비슷한 조직을 통폐합시켜 예산 낭비적 요소를 없앤다는 측면에서 환영하고 있다.

'투입 대비 산출' 논리는 행정 공공성을 무시한 처사

이번 지방조직의 개편안으로 당분간 공무원 신규 채용이 어려워져 공무원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수험생들의 실망이 클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해 전라남도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모습이다.
 이번 지방조직의 개편안으로 당분간 공무원 신규 채용이 어려워져 공무원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수험생들의 실망이 클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해 전라남도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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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 권아무개씨는 "갈수록 새로운 일이 생기고 사람도 늘어 부서가 커진 게 사실"이라면서 "비대해진 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아무개씨는 "원래 조직의 속성이 그런 것 같다"며 "새로운 일이 생기면서 업무가 계속 늘기만 할뿐 좀체 줄지 않는다"면서 인력과 업무의 군살빼기 필요성을 일정부분 인정했다.

그렇더라도 외부 압력이나 강제에 의한 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데 이견이 없다.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밀어붙이려 한다는 비판과 함께 일률적인 인력감축은 숫자놀음이고 전시행정의 표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아무개씨는 "모든 문제는 스스로 찾아서 치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강제에 의한 조정은 또 다른 문제를 낳고, 또 다른 강제를 불러올 뿐"이라며 정부 개편안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는 또 "지자체에 자율권을 준다며 총액인건비제를 실시해 놓고 지금 와서 중앙정부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협박"이라고 규정했다.

정아무개씨는 "공무원사회의 인력 감축은 일차적으로 공무원의 생존권 문제이지만 궁극적으로 행정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아무개씨는 "공무원조직은 행정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번 조직개편 권고안은 이 서비스의 질을 전혀 고려치 않은 것 같다"면서 "숫자놀음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전남도청 공무원노조의 한 관계자는 "행정은 시스템"이라면서 "국민의 필요에 따라 적재적소에 공무원을 배치해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게 행정"이라고 했다. "10명이 살고 있는 소외된 시골 마을에도 행정수요가 있다면 효율성을 따지기 이전에 행정서비스가 있어야 한다"면서 "행정서비스에 '투입 대비 산출' 논리는 행정의 공공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조직 슬림화가 소수 힘없는 이들에 집중될까 걱정

행정안전부의 지자체 조직개편안은 공무원 신규 채용을 어렵게 해 지방공무원은 물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해온 수험생들의 낙심과 반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공무원시험 인터넷 접수가 이뤄지기 전인 지난 2006년 전남지방직 공무원시험 원서접수를 하려는 수험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행정안전부의 지자체 조직개편안은 공무원 신규 채용을 어렵게 해 지방공무원은 물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해온 수험생들의 낙심과 반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공무원시험 인터넷 접수가 이뤄지기 전인 지난 2006년 전남지방직 공무원시험 원서접수를 하려는 수험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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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조직을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직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인력 조정이나 감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더라도 그 과정에서 부작용을 낳아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명분과 생색내기보다 실속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김아무개씨는 "전문적인 분석과 합리적인 판단을 토대로 시간을 갖고 조직개편이 추진돼야 한다"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아무개씨는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남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조정이 돼야 한다"며 원칙론을 강조했다. 안아무개씨는 "공무원들의 생존전쟁이 시작됐다"면서 "피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건강한 모까지 뽑히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른바 비정규직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 크다. 김아무개씨는 "솔직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면서 "조직개편 과정에서 인원감축 회오리가 불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직개편과 인력감축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는 박아무개씨는 "개편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구체적으로 몰라 더 불안하다"면서 "조직의 슬림화가 소수 힘없는 인력들에 집중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개편 방향과 관련해서도 천편일률적인 접근보다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안목을 갖고 지역특성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행을 벗어나 획기적이고 독창적인 안을 도출해 내야 한다는 것.

김아무개씨는 "전남은 농도이자 해양수산도"라고 전제하고 "내륙의 다른 시·도와 함께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박아무개씨는 "전남은 노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가고 있다"면서 "지역특성을 감안한 조직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로 당분간 공무원 신규 채용이 어려워져 공무원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수험생들의 실망이 클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승급을 앞두고 있는 기존 인력의 인사도 더뎌져 이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여하튼 조직의 현황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낭비요인이 있다면 바로잡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능력과 소양, 사명감에 관계없이 숫자에만 맞춰 감원의 칼날을 휘두르다 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지난 1일 지자체 공무원 1만 명 감축을 통해 총액인건비 10%를 줄이는 것을 뼈대로 한 조직개편안을 내놓았다. 중앙정부의 '대국-대과체제'를 지방정부도 채택해 1국은 3∼4과로, 1과는 20∼30명 이상으로 구성하고, 인구 2만 명 미만, 면적 3㎢ 미만, 소규모 동 통폐합도 추진토록 권고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돈삼 기자는 전남도청에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입니다.



태그:#공무원 조직개편, #전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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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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