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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가정법원이 모여 있는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건물.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가정법원이 모여 있는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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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지난 22일 서울고법이 동일여고에서 해고된 조연희 교사에게 던진 한 마디다. 담당 판사는 선고 예정 시간인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당사자도 변호사도 없는 자리에서 "기각한다"라는 단 한 마디로 조 교사의 해고를 확인했다.

일명 '동일여고 사태'로 알려져 있는 이 사건은 5년 전인 2003년에 시작됐다. 동일여고 교사인 조연희, 박승진, 음영소 등은 2003년 2월, 학교법인 동일학원의 동창회비·급식비 관련 비리를 제보했다. 이후 서울시교육청에서 동일학원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15억 5000여만원의 재정비리가 밝혀졌다.

서울시교육청은 동일학원에 대해 74건의 신분상 조치와 61건의 행정상 조치를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에는 이사 승인을 취소하겠다'는 계고를 수차례 내렸다. 동일학원은 "교육청의 감사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지만 모두 패소했다.

'비리 사학' 손 '번쩍' 들어준 '고등법원'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일학원은 세 교사를 '학원재단의 비리를 공개한 혐의(명예훼손) 및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하지만 조연희 교사는 '집시법위반혐의'만 인정돼, 벌금 50만원을 선고 받았다. 그 뒤 동일학원 측에서 항소, 같은해 8월 25일 서울남부지법에서 항소심 공판이 열렸지만, 학교측이 제기한 공소 대부분이 기각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세 교사는 2006년 6월 동일학원으로부터 파면 당했다. 이후 이들은 곧바로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파면을 취소해 달라"는 소청심사를 신청하지만, 교육부는 조연희 교사에겐 해임 결정을, 나머지 두 교사에겐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

결국 길고 지루한 싸움이 고등법원까지 왔고, 조연희 교사가 낸 항소는 지난 22일 '기각'됐다. 대한민국 사법부마저도 '비리'를 고발한 교사의 손이 아닌, '비리'를 저지른 사립학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법부는 있지도 않은 유령 동창회를 통해 학생들의 코묻은 동창회비를 횡령한 동일학원 이사장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대법원의 판결문을 읽어보기나 했을까. 이외에도 사법부가 읽어야 할 자료는 많다. 이사장과 학교장이 동일여고 교사들의 정당한 민원을 징계로 협박하고, 아무 이유없이 담임도 배제하여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다는 노동위원회의 결정문과 대법원 판결문, 서울교육청이 동일학원에 비리의 책임을 물어 임시이사를 파견하지 않은 것으로 국가기관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감사원의 감사보고서 등등.

조연희 교사가 파면된 후 많은 학생들이 복직을 바라며 수천 마리의 학을 접었고, 서명을 했다. 동일여고가 위치한 금천구 주민들은 "학생 편이 되어주어 고맙다"며 조 교사의 복직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조 교사는 지난 2005년, 국가청렴위원회가 후원하고 한국투명성 기구가 수여하는 '제5회 투명사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과연 사법부가 알고 있을까.

강의석 패소 판결, 대한민국 헌법 부정하는 것

한편, 지난 8일 고등법원은 사학재단의 일방적인 종교 수업과 예배 강요를 거부해 퇴학을 당했던 강의석(22)씨가 학교와 교육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사학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2004년 당시 기독교 사학인 대광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강의석씨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종교수업에 대한 선택권을 주지 않고 예배활동에 강제로 참가하게 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에 학교측이 강씨에게 다른 학교로 전학 갈 것을 강요했으나, 강씨는 이를 거부, 퇴학을 당했다.

강씨는 당시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45일간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강씨는 지난 2007년 10월5일 열린 1심에선 승소했지만, 지난 8일 열린 2심에선 패소했다.

사법부는 "대광학원 측이 종교과목 이외 대체 과목을 개설하지 않아 교육부 고시를 위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강씨의 행복추구권과 신앙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 위법 행위로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강씨가 고3 재학중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종교의식과 교육에 대해 명백한 반대의사를 밝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교 교육에 반대한다면 전학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 

대한민국 헌법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는 당연히 종교 선택을 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강의석 판결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서울 고등법원 판결에 따르면 종교 과목에 대한 반대는 입학과 동시에 줄기차고 명백하게 해야 하며 그게 정 싫은 학생은 전학을 가야 한다. 또 사학재단이 퇴학을 시켜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입시문제 유출로 물의를 일으킨 김포외고를 교육청이 감사한 결과, 16억원의 회계비리 등 각종 비리가 밝혀졌다. 감사 결과를 토대로 경기도교육청은 22일 김포외고 재단에 교장과 교감을 파면하도록 요구했지만 김포외고는 난색을 표했다. 결국 이미 제출된 교장의 사표를 수리해 사직으로 처리하고 교감은 평교사로 직위 강등, 행정실장은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은 "법인측이 교장교감에 대한 파면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행 법률상 이 학교법인에 대해 추가 제재할 수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행 '비위공직자의 의원면직에 대한 제한 규정'에 따르면 파면 등 징계 요구를 받은 공직자의 사표를 수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또 사립학교법은 '(사학법인이) 관할청의 학교의 장 징계 요구를 거부할 때'를 임원승인 취소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김포외고 재단이 비리를 저지른 학교장을 파면이 아닌 사직으로 처리하겠다고 한 것은 충분히 문제가 된다. 하지만 경기교육청은 어쩔 수 없다며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포외고에서 나타난 이 현상은 조연희 교사 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서울교육청은 동일여고에 대한 감사를 통해 회계비리 책임자들에게 중징계를 요구했지만 학교는 이들에게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고 지금도 학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근무하고 있다. 심지어 대법원에서 동창회비 횡령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이사장도 아무렇지도 않게 근무하고 있다.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사학재단 단죄해야

서울시교육청은 조연희 교사가 비리를 폭로하자, 동일학원측에 '보복징계로 보일 수 있으니, 교사 징계를 재고하고 신중을 가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연희 교사를 비롯한 교사 3명은 한꺼번에 해고됐다.

종교의 자유를 외치는 학생을 '교육의 이름'으로 퇴학시키고 비리를 고발한 교사를 '보복 해고'하는 사학재단은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해야 한다. 이제 사학재단에 의해 유린된 교육의 정의, 서울고법에 의해 유린당한 법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곳은 대법원밖에 안 남았다. 

대법원이 최소한의 상식과 법의 정의에 입각하여 잘못된 사립학교관을 바로 잡고 대한민국 교육을 바로 세우는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을 기대한다. 그것은 조연희 교사를 다시 학교로 돌려보내는 것에서 시작함을 대법원은 재판을 통해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동일여고 조연희 교사와 대광고 강의석 사건으로 대표되는 서울고법의 이해 안 되는 사립학교관과 재판 결과에 대한 글입니다. 여러분들은 이해되세요?



태그:#조연희, #동일여고, #서울고법, #강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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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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