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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무나 하나? 분명히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은. 상처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다. 그 상처에 공감하는 사람이 할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책의 제목만 보아서는 그저 연애소설 아니면 그런 유의 소설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첫 장으로 눈을 들이미는 순간부터 여지없이 무너진다. 연애소설의 ‘연’자 근처도 안 간다. 차라리 추리소설 쪽으로 당겨 넣는 게 더 낫다 싶다.

 

첫 장부터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기욤 뮈소의 소설이 거의 그렇다. 이전에 출판된 <구해줘>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그랬듯 <사랑하기 때문에> 역시 박진감 넘치는 스릴의 현장으로 독자를 던져 넣는 바람에 옴짝달싹 못하고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가슴 속에 눈물 듣는 사랑이야기

 

이 소설의 저자 기욤 뮈소는 말한다.

 

"나는 사랑 이야기가 없는 작품을 상상할 수 없다. 사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사랑 혹은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사랑이라는 독특한 감정을 기술하는 것은 나에겐 언제나 일종의 도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 속에는 가슴이 메는 애틋한 사랑이 있다. 어린 시절 가난과 친했던 커너와 그의 친구 마크의 우정은 점수를 아무리 후하게 줘도 지나치지 않다. 마약과 탈법이 성행하는 시카고의 사우스사이드 그린우드 뒷골목에서 자란 이들에게 희망이란 없었다.

 

그러나 마약범들에 의해 커너가 불 질러지면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치료과정에서 그들의 인생은 바뀐다. 만남, 그래 인생을 만남이라 했던가? 닥터 코리나 맥코믹과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커너는 살아날 수 있었을까? 가난뱅이 커너가 어찌하여 병원비를 냈는지는 미지수지만, 코리나 박사의 헌신적인 치료 덕에 커너는 살아난다. 사랑 없인 불가능한 이야기다.

 

마크와 커너, 마크와 니콜, 그리고 앨리슨 해리슨과 그의 아버지 리처드 해리슨, 에비와 어머니, 마크와 니콜의 딸에 대한 애정, 마크, 에비, 앨리슨, 커너로 이어지는 사랑은 그리 만만한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애절한 마음, 과거의 아픔, 동병상련의 마음이 아니면 결코 놓치고 말 것들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그랬다. 타락한 경찰은 무법천지를 그저 즐길 뿐이었다. 커너는 결국 무법천지의 그린우드의 심판관을 자청하여 나서고 결국 해낸다. 자신을 만신창이로 만든 그들을 직접 만나 자신이 당한 똑같은 방법으로 처형한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던가. 경찰의 추격을 피해 커너와 마크는 도망을 쳐 뉴욕에 이른다. 뉴욕은 과연 그들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뉴욕의 찬란한 불빛도 커너의 처절한 죄의식으로 덮인 천을 비추지는 못했다.

 

자기가 낳은 딸은 아니지만, 자기가 낳은 딸보다 더 사랑하는 딸 라일라를 잃고 뉴욕의 하수구를 거처 삼은 노숙자 마크, 그를 사랑하여 결코 놓지 못하는 그의 아내 바이올리니스트 니콜, 그들의 사랑 또한 사랑의 진면목을 말해 준다. 굳이 왜 노숙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소설이 모든 것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에 접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주인공

 

부유한 회장의 딸로 자라 유복하기만 할 것 같은 앨리슨 해리슨, 그러나 그가 사람을 차로 치고 도망간 뺑소니 범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 죄를 은폐한 공범이 되고 말았다. 누가 이 아버지를 욕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죄는 밤이면 밤대로, 낮이면 낮대로 나와 앨리슨을 괴롭힌다. 그래서 더 막가는 인생, 이 모녀도 사랑 때문에 병을 앓는 이들이다.

 

어머니의 간 이식을 가로채 결국 죽게 만든 살인자 크레이그 데이비스를 죽이려는 복수의 일념으로 산 에비는 또 어떤가? 그도 사랑 때문이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 어머니를 오해 속에 보낸 아픔, 자신의 일생이 망가지는 것보다 남을 향한 애절한 사랑 때문에 몸부림치는 사연들이 온 책을 가득 메운다.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삶의 발목을 잡고, 그 잡힌 발목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지지리도 못난 사랑 가득한 사람들의 사연, 소설은 그것을 묶었다.

 

그러나 그냥 묶은 것은 아니다. 분명한 목적 하에 묶었다. 모두가 생채기 난 사람들, 그들은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들, 그러기에 자신도 상처 가득하지만 정신과 의사인 커너는 최면요법이라는 특수한 가상 현장에 그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을 비행기라는 가상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그들은 각각의 과거 속으로 헤집고 들어갔다 나온다. 가장 아팠던 과거를 모두 홀가분하게 벗은 채로.

 

등장인물이 많지는 않지만 모두 주인공이다. 겸수현의 드라마가 히트를 치는 것은 주인공이나 조연이나 배역의 경중이 없이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맞다. 기욤 뮈소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바로 그 말을 들어야 할 소설이다. 그래서 더 주인공들이 나와 닮았다고 여겨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플래시백 기법과 인용문들

 

크리스마스라는 ‘오늘’에 커너의 병원이라는 ‘현재’만 현실일 뿐 모든 게 과거요, 환상이요, 가상이다. 그런데 글은 전혀 가상이며, 환상이요, 과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그걸 느끼며 읽을 똑똑한 독자는 없을 것이다. 나중에야 다 알게 되는 일이지만….

 

주인공들이 차례로 플래시백 한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 잊을 수 없는, 결코 잊으면 다음 이야기가 전개되지 못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작가가 인용한 문장이 이를 기가 막히게 말한다.

 

“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거든 어디서 오는지를 기억하라”- 아프리카 속담

 

과거 없는 현재란 없다! 현재는 미래의 얼굴을 결정한다! 이런 경구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플래시 백 기법이야말로 이 소설의 기묘한 끌림을 유도하는 막강한 힘이다. 상상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그 끝은 없다고 뮈소는 말하고 있다. 참으로 상상의 날개가 갸륵하다.

 

처음에 책을 펴 들었을 때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현실의 부당함을, 현실이 인간의 갈망ㆍ욕구ㆍ꿈을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데 소설만한 것은 없다.”- 마리오 바르가스 료사

 

생뚱맞지 않은가? 소설책이 무슨 소설에 대한 강의로 시작한단 말인가? 그런데 뮈소는 그렇게 시작한다. 한 장을 넘기면 또 이렇다.

 

1. 이야기가 시작되던 날 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로들에 신호등이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작가는 이렇게 철학적 명제를 말하고 나서 그 명제가 어떻게 소설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증명해낸다. 그의 이런 기발함이 전 세계의 독자들을 그리 짧은 시간에 빨려들게 하는 것이리라. 철학적 명제로 출발하지만 결코 철학적인 데서 머무르지 않는 소설적 수단이 뮈소를 재간꾼 소설가로 만들고 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앨리슨의 꼬리뼈 부근에 그려진 문신, 라일라가 그린 그림들 속의 기하학적 기호가 글쎄 커너가 입은 가운 호주머니에 새겨진 병원 로고였다는 것이다. 같은 모양으로 등장한 기호들은 글을 읽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한다.

 

무얼까?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현실로 돌아온 그 마크는 결국 병원 로고일 뿐이다. 좀은 맥 빠지지만 흥미를 자아내기에는 충분하다. 이는 소설가의 영화적 기법이 맘껏 발휘된 부분이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건 값이 없는 것이다.”(P.94)

 

소설 속에 있던 이 글귀가 자꾸 마음에 밟히는 것은 내가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이유 없이 당하는 고난이 부른 범죄, 행복하게 보이는 이의 자기만 가진 비밀 속의 죄의식, 스스로 정한 인생의 낮아짐, 이글거리는 분노와 복수심, 인생의 상실감 등은 모두 치료되어야 할 감정이다. 그 치료 기구는 사랑이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으로 치료받은 사람이 한다.

 

덧붙이는 글 | 기욤 뮈소, <사랑하기 때문에>, 밝은세상 간, 값 9,800원


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밝은세상(2007)


태그:#사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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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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