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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일거리 대기가 쉽지가 않다. 날마다 원기가 왕성하시다. 아침에 눈 뜨시면 "오늘 뭐 학꼬?"가 첫 마디시다.

내가 먼저 상황을 주도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일거리를 만드신다. 어머니가 일거리를 만드시기 전에 나는 일거리, 놀거리, (마실) 갈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머리를 짜 낸다. 오늘은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라 스스로 흡족했다.

새끼 꼬기.
▲ 새끼 새끼 꼬기.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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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꼬기였다. 우리 엄니 오래오래 잘 사십사 하는 기원도 담고 일거리가 오래 지속되는 이중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착상을 해낸 내 머리가 기특하기 짝이 없다고 자찬해 가며 짚단을 추려서 물을 꼽꼽하게 축여 드렸다.

"새끼 그 까이꺼. 내가 가마니 새끼도 많이 꼬았다 아이가. 새끼 중에서는 가마니 새끼가 제일 힘든기라. 이음새 없이 가늘가늘하게 꼬아야 하거등."

정말 잘 꼬으셨다. 나뭇단 묶기에는 어림도 없지만 마당에 오이나 참외 올릴 울타리 새끼로는 손색이 없었다. 잘한다고 추어 드리자 신나하시면서 40년 50년 전으로 돌아가서 흥겨운 옛 기억을 솔솔 새끼줄처럼 풀어 내셨다.

새끼 꼬다 주무신다.
▲ 새끼 새끼 꼬다 주무신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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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오니 새끼줄을 겨우 서너 발 사려 놓고는 주무신다.

"어머니. 새끼 다 꼬와야지요? 일 하시다 말면 어떡해요?"

새끼보다도 겨우겨우 자화자찬하며 마련한 어머니 기막힌 일거리가 이렇게 허망하게 퇴짜 당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더 컸다. 매일 매일 일거리 마련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아이고. 내가 이 나이 되어 가지고 뭔 놈의 새끼줄이나 꼬고 앉았것노. 할 짓이 그리 없더나?"

하신다. 허 참. 뭐 할일이 그리 많으시다고.

복지센터에서 검진 중
▲ 복지센터 복지센터에서 검진 중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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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을 앞두고 장수군 내 해당 기관을 두루 방문하였다. 어머니 모시고 첫번째로 간 곳이 천천면에 있는 '하늘내 노인 복지센터'. 간병요양 담당 간호사님이 우리 어머니 혈압과 당뇨를 점검하셨는데 젊은이 같다고 하셨다. 우리 엄니. 홧팅~

오이지를 만드신다.
▲ 오이 오이지를 만드신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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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를 동글동글 하게 잘라서 소금을 치고 짤짤 까부신다. 오이를 따오면 어머니가 다 하신다. 도마, 칼, 소금, 주욱 놔 드리고 손 씻을 물까지 놔 드리면 의당 '내 몫이려니' 싶으신지 씻어 오셔서 오이지를 만드신다. 

"마늘 찌농거 엄나? 고추까리는?"이라고 할 때까지 나는 모른 척한다. 어머니가 뭔가를 주도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다. "와요?"라고 되묻기라도 하면 "마늘이랑 꼬추까리 엄씨 오찌 하란말고???!!"라고 고함을 치신다. 그러면 나는 부랴부랴 대령한다. 주욱 차려 드리면 슥 나서면서 한 마디 하신다.

"말 안 해도 갖다 줘야지 그것도 말을 해야 되나?"

어머니는 기운이 더 좋아지신다. 근데  어떨 때는 껍질을 살짝 깎아 내시고 토막을 쳐서 네 등분하여 오이를 썰기도 하고 어떨 때는 이렇게 동글동글하게 쓴다. 담에 함 물어 봐야지. 기준이 뭔지를.

감자 깎기
▲ 감자 감자 깎기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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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가 상처 난 것이나 살짝 귀퉁이가 썩은 것을 어머니가 다 가리시고 깎으셨다. 마루에 차려 드린 작업대에서 어머니는 내게 다음 일거리를 명(!) 하신다. 강판을 이용하여 갈기도 하고 도마 위에서 얇게 썰은 다음 채 썰기도 한다.

강판에 갈기
▲ 강판 강판에 갈기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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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에 간 것은? 감자전!

장떡이다
▲ 장떡 장떡이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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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썬 것은 살짝 볶아서 감자반찬. 장떡 하자시기에 장독대 곁에 심어 놓은 제피잎을 따오고 된장과 풋고추를 따 와서 감자전 먹으면서 장떡을 만들었다. 엄청 짰다. 맵고. 어머니는 밥 한 공기를 이 장떡 한장으로 다 드시면서 "장떡은 밥이랑 묵응게 짜도 괜찮응기라"고 하셨다. 내가 이렇게 만들었으면 한 젓갈 뜨시고는 밥상을 밀치셨을 것이다.

일할 때 입는 겉옷
▲ 작업겉옷 일할 때 입는 겉옷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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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뭘까? 어머니 전용 작업겉옷이다. "아예 지 에미 부려 먹을려고 별 찌랄을 다 한다"라는 비난을 각오하고 어머니에게 갖다 드렸더니 변덕장이 우리 엄니가 너무도 반색을 하셨다.

"옷에 흙도 안 묻것네? 끄낵끼로 허리 깍 묵꼬."

풀매기
▲ 풀매기 풀매기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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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안에는 기저귀를 차셨고 옷 밖에는 이렇게 탈착식 작업복을 입으셨다. 저 멀리 탁자 아래로 깔린 풀들은 어머니가 다 매신 것이다. 골목까지 양쪽을 풀 매시면서 이번에는 여러마디 하신다.

"아여. 이걸 두 눈 뜨고 봄서로 오찌 그냥 너머 댕기여 댕기기를. 눈을 깜꼬 댕기나."
"집 안이 맬끔해야 파리도 없지. 오는 사람이나 적나. 이기 머이라 이기!"
"이거 깍꼬리로 거머다 거름 자리에 안 갖다 놓고 머하노?"

이덕에 우리 엄니 한 십년은 젊어지셨을 것이다.

진꼬와 성꼬
▲ 닭 진꼬와 성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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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랑 놀라고 닭장 문을 열어놨더니 진꼬와 성꼬가 어머니 곁에는 잠시 얼쩡거리더니만 바로 맛있는 채마밭으로 가서 양배추, 상치, 잡초씨앗 등을 쫀다. 예전 같으면 닭을 쫒아 내셨을 텐데 이 날은 다르다.

"너것들도 먹어라. 너것들이 먹어야 올매나 묵건노. 발모가지로 파헤직꺼리지나 말고 배 불리 먹으라."

잠드신 어머니
▲ 낮잠 잠드신 어머니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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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씻어 드리고 마루에 모기장을 쳐 드렸다. 닭들의 움직임을 쫓더니 곧 색색 잠이 드셨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치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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