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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사당역근처에 있는 구벨기에영사관이었던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전경과 '자아-이미지전' 포스터
 지하철사당역근처에 있는 구벨기에영사관이었던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전경과 '자아-이미지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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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이미지:거울시선'전이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에서 10월 5일까지 열린다. 유명작가와 젊은 작가들 26명의 자화상을 여러 장르로 형상화한 47점을 선보이는 기획전이다.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은 고전주의양식을 띤 구(舊)벨기에 공사관이었던 곳에 있으며 드물게 보는 단아한 유럽식 건물로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유럽의 귀족별장에 들어선 착각이 든다. 지하철 사당역 6번 출구에서 멀지 않아 가기도 편하다.

이번 전 주제는 '자화상', 한 인간의 삶을 얼굴에 고스란히 조각한 그림 아닌가. 자화상 하니 화가 중 윤두서, 렘브란트, 고흐, 베이컨 등이 떠오른다. 부제로 '얼굴에 담긴 소우주'라고 붙였는데 정말 얼굴엔 눈, 코, 귀, 입, 두뇌 등 중요부위가 집중되어 있다. 이를 집약한 그림이 자화상이라면 모든 화가가 탐하는 장르일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인간이 되고자하면 평생 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대답을 얻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만큼 어려운 질문이다. 작가에겐 더 절박한 문제다. 자신의 정체성 없이 그림을 그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과 제2세대 권옥연의 자화상

고희동 I '부채를 든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61×46cm 1915. 권옥연 I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53×40cm 1970(아래)
 고희동 I '부채를 든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61×46cm 1915. 권옥연 I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53×40cm 1970(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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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첫 전시실에 들어서면 우선 고희동(1886~1965)의 자화상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도쿄(東京)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한국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프랑스어를 잘 하는 궁궐 통역관이기도 했다. 

그의 모습은 한말 사대부출신답게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한여름 더위를 피하려고 가슴까지 드러내놓은 모습이 자연스럽다. 부채질하는 자세도 여유롭다. 1915년에 유화도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이런 그림을 그렸다니 놀랍다.  

권옥연(1923~)은 도쿄와 파리에서 수학한 제2세대 한국근대미술의 선각자다. 1970년 작인 이 작품은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작가의 내면세계를 세련된 색채와 안정된 구조로 그린다. 그런 미묘한 분위기로 관객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서구적 멋이 물씬 풍기고 복장이나 표정이 먼 이국세계를 동경하는 청년 같기도 하고, 깊은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시 한국인의 서구에 대한 열망과 향수를 엿볼 수 있다. 하여간 그의 자화상에서 그런 시대적 배경이 깔려있다.

거친 칼질과 자유분방한 붓질로 그린 유근택의 자화상

유근택 I '자화상' 종이에 수묵채색 160×130cm 1987-2007. '자화상' 목판화 49×35cm 1998(아래)
 유근택 I '자화상' 종이에 수묵채색 160×130cm 1987-2007. '자화상' 목판화 49×35cm 1998(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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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동양화과와 대학원에서 수학한 유근택(1965~)의 자화상은 수묵과 목판화로 그린 것이다. 거친 칼질과 자유분방한 붓질이 예사롭지 않다. 세평에는 연연하지 않되 자신의 예술에 대한 자부심은 커 보인다. 그의 표정에는 기억 저편의 세상에 대한 향수와 한국적 전통에 대한 열망 등으로 넘친다. 

작가로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지그시 웃는 모습이 여유롭게 보인다. 그의 자화상은 친근감을 주면서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면도 있다. 세상을 보는 눈길도 따사로움과 날카로움이 같이 있다. 그는 자화상에는 인간적 면모와 풍채를 갖추고 있어 관객을 쉽게 빨려 들게 한다.

70년대 생인 변웅필과 김우임의 까칠한 자화상

변웅필 I '한사람으로서의 자화상-61' 캔버스에 유화 180×150cm 2008. 김우임 I '한국인 오이마사지' 장지에 채색 162×130cm 2007(가운데)
 변웅필 I '한사람으로서의 자화상-61' 캔버스에 유화 180×150cm 2008. 김우임 I '한국인 오이마사지' 장지에 채색 162×130cm 2007(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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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도 공부한 1970년생인 변웅필은 이전 세대와는 화풍이 다르다. 가식적이거나 권위적인 면이 없다. 있는 그대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솔직성이라고 할까 돌발성이라고 할까. 자신을 신비화하기는커녕 해체시키고 개그화한다. 하지만 디테일한 극사실적 필치는 가히 수준급이다.

여자얼굴에 오이를 붙이는 모습을 그린 김우임은 일상에서 그냥 놓치거나 스쳐버리기 쉬운 소재를 그의 자화상에 끌어들인다. 어쩌면 우리가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나 그림에선 찾기 힘들었다. 하여간 이런 그만의 착안으로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모순을 해소하려는 발칙한 시도가 신선하다.

이런 소재는 사실 그 속에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전의 예쁜 그림 같은 것으로는 각성되고 진화한 현대여성의 내적 심경을 담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하여간 노출을 꺼리는 이런 모습을 담은 그의 자화상은 확실히 한 시대의 터부를 깬 것이다.

인간실존을 주제로 풍속화를 패러디한 권여현의 자화상

권여현 I '설교 후의 환영' 사진에 유화 120×156cm 2006. 폴 고갱의 원화(아래)
 권여현 I '설교 후의 환영' 사진에 유화 120×156cm 2006. 폴 고갱의 원화(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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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석남미술상수상자이기도 한 권여현(1961~)은 인간실존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을 해 왔다. 최근에는 풍속화나 명화를 패러디하며 '나'를 탐구하고 있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 '남'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보기도 하고 또는 직접 '남'이 되어봄으로써 '나'의 외연을 확대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설교 후의 환영'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고갱의 그림에 작가의 세계를 대비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하여간 작가는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변장욕구를 그림을 통해 대리만족시켜주어 관객을 즐겁게 한다. 또한 작가처럼 고갱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게 한다.

도시인간을 다룬 황주리와 고뇌하는 인간을 그린 하인두의 자화상

황주리 I '자화상' 캔버스에 아크릴물감과 오일 파스텔 91×117cm 2000. 하인두 I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87×61cm 1957
 황주리 I '자화상' 캔버스에 아크릴물감과 오일 파스텔 91×117cm 2000. 하인두 I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87×61cm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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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1957~)는 15년간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작업을 해온 도시작가다. 그는 문명의 이기와 그 명암을 훤히 꿰뚫고 있다. 또한 그 이면에 서린 쓸쓸함과 외로움도 응시한다. 그림 속 인물이 한쪽 눈만 뜬 것은 주위를 더 예리하게 보겠다는 역설적 장치가 아닌가싶다.

그는 80년대부터 신구상주의의 뉴페인팅을 도입하여 모더니티를 추구하였다. 80년대 후반 변혁기와 민주화의 와중에서 놓치기 쉬운 사소한 일상에서 우리의 내면에 진정 행복이 도사리고 있는지 객관적 타자의 시선과 시대의 풍속화를 통해 비춰보고 있다.

황주리의 아버지 세대인 하인두(1930~1989)는 입체파 기법으로 독창적 자화상을 시도했다. 색채나 형태나 조형이 그 당대로는 획기적인 것으로 작가적 고뇌와 열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대의 어둠을 뚫고 나오려고 몸부림치는 것 같다. 회화라기보단 조각 같은 이 작품은 사유하는 인간의 정신적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주목받는 조각가 천성명과 미디어작가 김승영의 자화상

천성명 I '그림자를 삼키다' 유리섬유보강플라스틱에 아크릴 58×76×55cm 2007. 김승영 I '자화상' 싱글 채널비디오 가변크기 1999(아래)
 천성명 I '그림자를 삼키다' 유리섬유보강플라스틱에 아크릴 58×76×55cm 2007. 김승영 I '자화상' 싱글 채널비디오 가변크기 1999(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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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아르코아트페어 출품작이 매진되기도 했던 천성명은 요즘 주목받는 작가다. 부조리연극의 주인공 같은 그의 인물은 천지 같기도 하고 천재 같기도 하여 이상야릇한 매력을 준다. 야만과 문명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작가는 진정 우리가 제대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물으며 우리시대의 우화를 들려주는 것 같다. 

'그림자를 삼킨 사나이'라고 제목이 붙은 걸 보면 상처받는 인간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 처방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물질의 풍요가 오히려 정신의 빈곤을 낳고 상처를 남긴다. 작가는 이런 상처가 빨리 아물려면 숨기는 것이 아니라 밝은 곳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래는 미디어작가 김승영(1963~)의 자화상,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벽에 걸려있던 자화상이 무게를 못 이겨 떨어지면 12번이나 다시 거는 퍼포먼스를 비디오로 담았다. 조금은 우스꽝스럽지만 작가는 이런 반복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찾아감을 보여준다. 이렇게 자화상도 이젠 평면을 넘어 비디오로 확대된다.

'셀프카메라'와 '도장찍기', 유럽파인 박형근과 이소연의 자화상

이훈 I '셀프카메라'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7. 박형근 I '여행-5, 낮의 달' C-프린트 103×130cm 2008. 이소연 I '아쿠아리움(수족관)' 캔버스에 유화 130×200cm 2007. 최지만 I '자화상' 혼합재료 98×180×60cm 2003
 이훈 I '셀프카메라' 혼합재료 가변설치 2007. 박형근 I '여행-5, 낮의 달' C-프린트 103×130cm 2008. 이소연 I '아쿠아리움(수족관)' 캔버스에 유화 130×200cm 2007. 최지만 I '자화상' 혼합재료 98×180×60cm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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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으로 각기 개성이 다른 네 작가를 보자. 첫째로 미디어작가 이훈, 그는 액자거울 위에 캠코더를 걸어 관객이 작품 앞에 서면 얼굴을 보이게 한다. 제목도 '셀프카메라'다. 일종의 쌍방형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다. 그리고 해상도나 소리도 조정이 된다.

둘째로 사진작가 박형근, 그는 런던대학에서 공부했고 영국에서 인기가 높다. 위에서 본  대낮의 '인공 달(artificial moon)'같은 자신만의 생각을 느끼게 하는 오브제를 통해 사진을 재구성하여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거기서 이상향을 찾는다.

셋째로 이소연은 뮌스터에서 공부했다. 그는 독일에서 2004년 '엠프라이즈상'까지 받은 블루칩작가로 자신의 삶과 관련된 물건을 그림에 끌어들여 독창적 화풍을 낳았다. 넷째로 최지만, 그의 자화상은 상체는 부조(浮彫)고 하체는 도장이다. 작품이 복수라 그 수만큼 다른 자화상이 찍힌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도 관객을 작품에 참여시킨다.

자화상도 이젠 평면에서 비디오, 사진, 셀프카메라, 도장으로 찍는 방식까지 다양하다. 그런 변천사를 시대별로 한눈에 볼 수 있으니 이번 전이 특별나고 재미있다. 올 가을에 이런 전시는 자신을 한번 돌이켜보게 하는 멋진 나들이가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 무료 02)2124-8800, 8934. www.seoulmoa.org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082 남현동 1059-13. 2,4호선 사당역 6번 출구에서 100미터거리



태그:#자화상, #고희동, #권옥연, #황주리, #하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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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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