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독한 마음을 품게 된 것은 교수가 너무 괘씸해서였다. 학과 이름만 갖고 학생들을 차별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은근히 깔본다는 인상이 자꾸만 생기는 것이었다. 직접적으로 당하는 순간 들었던 느낌은 황당함.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기본적인 수준 차이는 인정하고자 했다. 어느 정도의 차별은 그러려니 여기고 싶었다. 그러던 것이 불똥이 내게 떨어지는 순간, 더 이상 차별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묵묵히 열심히 애쓰는 사람들이 무시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 그래서 아주 살떨리는 복수를 생각했다.

 

단지 '기계과'라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차별의 추억, 그 전말은 이랬다.

 

차별 교수에 독한 마음을 품다

 

10여 년 전. IMF 구제금융 위기로 인해 현장 생활을 정리하고 공부를 위해 아주 늦게 들어간 학교, 현장 경험이 바탕인지라 기계 전공은 당연했다. 이론보다는 실무에 자신이 있기에 여러모로 내게는 유리한 선택이었다. 주경야독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공부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아주 오랜만에 앉아보는 책상과 강의가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했다.

 

전공이야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하는 과목이었고,  교양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은연중에 교양과목 교수들의 태도가 전공 교수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교양국어가 심했다. 마치 '공고나 현장 공돌이 출신들에게 국어를 가르쳐 봤자 얼마나 알겠냐'는 듯 조금은 수준 낮게 보는 인상이 짙게 들었다.

 

'기계과'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인식을 그렇게 만드는 것도 같았다. 그해 학과명이 현대적 감각에 맞게 '컴퓨터응용설계과'로 바뀌었지만 겉포장만 변했을 뿐, '기계과'라는 바탕은 변하지 않았다. 여학생은 거의 없고 거친 인상의 남학생들만이 잔뜩 모여있는 학과.

 

오래 굳어진 '기계과'라는 이름 탓에 교양 교수들에게는 학생들도 기계 이미지로 보였던 모양이다. 어느 교수는 수업 중에 "00 책 읽어 봤냐? 읽은 사람 손들어 봐라?"라고 물어보다가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자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사실 교수가 말한 문학책들은 오래 전에 대부분 섭렵한 책들이었다. 고교시절부터 불온서적이라 불리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기에 그 와중에 곁들여 읽은 책들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굳이 그런 물음에 손을 들고 싶지가 않았다. 

 

늦게 공부하는 마당에 기계나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이전에 읽은 문학책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 아무도 손들지 않는데 혼자 손들기가 '뻘쭘'하기도 했다. 나이 들어 학교 다니는 사람이 괜히 이전 경력 생색내기보다는 일반적인 수준에 묻혀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기계 전공하는 무리들을 낮은 시선으로 보려는 데야 뭐라 할 필요 있겠는가!

 

빨간색 글씨로 첨삭 지도해 주던 여교수

 

그런데, 다음 학기에 만난 여교수(시간강사)는 이전과는 달리 조금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는 학생들의 과제물에 친절한 첨삭지도를 해주고 있었다. 빨간색 글씨로 이러이러한 내용이 잘못됐으니 고치라느니, 오자나 문법이 잘못됐다느니 하고 써놓았다.

 

처음에는 친절하게도 보였다. 물론 '중고등학생도 아닌데 이렇게 세세하게 써놓을 필요까지 있을까?'라 의문을 품기도 했다. 

 

수업도 책 한 번 읽고 칠판에 간단히 쓰면서 일방적인 설명으로 끝내는 식. 대학이라는 곳도 교양과목 수업방식은 중고등학교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물론 끝에 "질문 있느냐?"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고, 손드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교수는 살짝 미소 지으며 수업을 끝내고는 했다. 사실 그 미소는 '기계과 수준이 뻔하지. 가르쳐줘도 알겠어?'라는 비웃음이었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우연히 그 교수가 담당하고 있는 다른 학과의 수업 실태를 알게 되면서 교수의 차별을 인지했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국어 교수실, 미처 제출 못한 과제물을 내러 갔다가 책상 위에 다른 과 과제물을 살펴보게 됐다. 그런데 다른 학과 과제물에는 빨간색 첨삭지도가 없었다. 아무런 표시도 없이 A+, A, B+, B, C, D 등 과제물 평가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학과 학생들을 통해 수업방식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쪽 학과는 수업이 토론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발제와 질의 답변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책 한 번 읽고 간단히 설명하고 밑줄 치고 하는 수업방식은 기계과가 유일한 듯했다. 전공 때문에 교양 수업을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그리 기분좋지는 않았다. 전공이 아니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교양국어 수업을 들을 때면 괜히 떨떠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가 나를 건드리고야 말았다. 과제물 첨삭지도를 통해 나의 자존심을 긁어 놓은 것. 연극이나 영화, 각종 공연 등 문화 행사를 하나씩 보고 감상평을 제출하라는 과제에 맞춰 한 편의 연극을 본 후 감상평을 제출했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사실 이전부터 연극, 뮤지컬 등에 꽤 많은 돈을 투자했고 즐겨보던 가락이 있는지라 과제물은 내게 너무 쉬운 것이었다. 더욱이 전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유명 연출가의 작품을 보고 감상평을 작성한 덕분에, 연출가의 작품 흐름을 비교적 많이 알고 있던 나로서는 과제물 작성하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의기양양 제출한 후 되돌려 받은 과제물에는 첨삭지도용 빨간색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과제물은 본인이 작성해야지 신문이나 다른 자료에 나와 있는 내용을 베끼지 마세요.'

 

순간 머리가 '띵'하니 울려왔다. 맥박이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머리 꼭대기로 김이 서리고, 분노의 역류가 이는 듯 온몸에 전기가 찌릿찌릿 올라왔다. 내가 쓴 글을 남의 글을 베낀 것으로 안 듯했다. 한숨을 쉬며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나이든 고학생인 내게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었다.

 

빨간 글씨를 몇 번씩 읽으며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내가 쓴 글임이 분명한데도 이게 내 글이 아니라는 것인가!" 내 글을 내 글이라 인정받지 못함을 보며, 호부호형을 못한 홍길동의 심정이 느껴졌다.

 

남의 글 베끼지 마라?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기계과. 특히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을 보는 교수의 시선이 여실히 느껴졌다. 한 줄의 첨삭지도 속에 교양 교수가 어떤 시선으로 학과를 바라보는지가 절절히 다가왔다. '자기 수준에 맞는 글은 쓰지 않고 남의 글 베껴 온다'는 교수의 판단.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가뜩이나 차별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여간 탐탁지 않았는데, 도무지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기계과도 다양한 특색의 여러 학과 중 하나일진데, '단지 우리가 기계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시당하는 것이 불쾌하기까지 했다. 저런 시선은 반드시 고쳐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겨났다.  '그래, 복수를 하는 거야!'

 

어떻게 복수를 해야 잘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지 며칠을 고심했다. 교수를 찾아가 '이 과제물 제가 쓴 것 맞습니다'라고 항의할까도 생각했지만 그것은 강도가 너무 약했다. 그 정도로는 속이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적어도 기계과도 나름 제대로 된 국어 교양을 갖추고 있음을 똑바로 알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차별은 지속될 것이었다.

 

마침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한 편의 연극을 봤고, 장문의 감상평을 작성했다. 아주 세세하게. 지극 정성을 들여 지난번보다 더 나은 과제물을 만들었다. 전문 용어도 섞어 가면서. 물론 그 과제물은 교수가 내주지 않은 것. 내가 임의대로 작성했을 뿐이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일부러 한 것이다.

 

깔끔하게 완성한 후 직접 교수를 찾아가 과제물을 제출했다. 의아해 하는 교수에게 "지난번 과제를 못 내서 뒤늦게 내는 것입니다"라고 둘러대고는 책상 위에 놓고 나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과제물을 읽은 후 교수가 지을 표정을 생각하니 온갖 상상이 다 들었다.

 

정성들인 과제물 맨 마지막에 내가 써 넣은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지난번 과제물에서 내가 쓴 글을 남의 글로 오인 받으며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잘 쓴 글이라면 그러려니 하겠건만 그런 형편없는 글을 베낀 글로 오인하는 교수님의 평가를 받고, 나는 국어 교수의 수준이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찌 국어에 문외한인 나이든 기계과 학생인 나보다도 못한 수준이란 말인가! 내가 과연 이런 교양 국어 수업을 계속 받아야 할까? 심각한 의문이 든다."

 

"사과한다, 그러나 살 떨렸다"

 

며칠 뒤 교양 과목 수업시간. 강의실로 들어온 교수는 제일 먼저 내 이름을 부르며 누군지를 찾았다. 묵묵히 손을 들었고 나를 확인한 그의 첫마디는 '사과하겠다'는 것.

 

"제가 지난번 과제물을 평가하면서 실수한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불쾌하게 만든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이 자리에서 공개 사과하겠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였다 드는 교수님.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그런데 어떻게 그런 표현을 쓸 수가 있어요? 아무리 내가 잘못은 했지만 읽는 순간 살 떨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하여튼 섬뜩했습니다. 표현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 안 들어요?"

 

영문을 모르는 듯 나와 교수 사이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학과 사람들. 나는 짧게 "네"하며 씩 엷은 웃음으로 대꾸했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기계과라고 너무 우습게 보지 마세요. 수준 낮다고 차별하시니까 그런 거지요 뭐."

 

이후 수업방식이 바뀌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차별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뒷감당은 해야 했다. 학점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교수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교양 수업 준비에 많은 신경을 써야 했던 것. 영문을 모르는 학과 동생들은 간혹 내가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속 모르는 소리를 한마디씩하고는 했다.

 

"형은 무슨 전공도 아닌 교양 수업 준비를 그렇게 열심히 하신데요? 우리가 국문과도 아니고…"

 

그럴 때면 나는 그저 씩 떫은 웃음으로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내 속을 어찌 알랴!

 

[최근 주요 기사]
☞ "광우병 걸려도 내가"-"광우병 때문에 비싸도 한우를"
☞ '명박산성' 쌓은 어청수 청장이 존경받는 CEO?
☞ [현장 - '반공' 역사 특강] "박정희 대통령 덕에 오늘날 한국 있다"
☞ [인터뷰] "'간첩자식' 낙인, 벌이 아니라 저주였다"

덧붙이는 글 | '차별의 기억' 응모글


태그:#차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