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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6년초 겨울도 끝나갈 무렵 집사람과 함께 군산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서울 날씨만 생각하고 떠난지라 항구의 찬바람을 맞으며 군산 구(舊)시가지를 헤매던 추억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후배들과 함께 다시 군산을 찾았다. 전날 서천에 들러 친구의 후의로 푸짐한 저녁과 따뜻한 잠자리를 해결하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으며 군산으로 들어간다.

개정면사무소 곁 발산초등학교

책을 읽고 있는 소녀상이 있는 교사를 돌아가니 작은 정원에 석물들이 늘어서 있다. 다람쥐가 기어 올라가는 망주석, 탑신을 받치고 있던 귀부석, 오층석탑, 부도, 석등... 많이도 가져다 놓았다. 일제시대에는 지금의 전군(전주-군산)도로 주변 평야에 커다란 일인농장이 즐비하게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구마모토의 농장은 3000세대 2만 명의 식솔을 거느렸다고 하는 커다란 농장이고, 이 발산초등학교 자리가 곡물보관창고와 구마모토 가옥이 있던 자리라 한다.

오층석탑
 오층석탑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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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에는 3개의 발톱을 가진 용이 새겨져 있고 화사석에는 사천상이 새겨진 특이한 석등.
 석주에는 3개의 발톱을 가진 용이 새겨져 있고 화사석에는 사천상이 새겨진 특이한 석등.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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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석에 새겨진 사천왕상
 화사석에 새겨진 사천왕상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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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흥미를 끄는 것은 완주 봉림사에 있었다는 석등인데, 등불을 넣어두는 화사석은 귀퉁이에 사천왕을 새겨놓아 마치 불빛을 내비치는 창(窓)을 입으로 하고 양 볼에 사탕을 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사석(火舍石)에 사천왕을 새겨 넣은 것도 흥미롭지만 석주에는 세 개의 발톱을 가진 용이 금방이라도 승천할 태세로 양각되어 있어 더욱 신비롭다.

구마모토 개인금고. 금고를 밖에 따로 지어둔다는 것도 이채롭지만 그 속에 얼마만큼의 우리 문화유산을 쟁여 놓았었는지 궁금하다.
 구마모토 개인금고. 금고를 밖에 따로 지어둔다는 것도 이채롭지만 그 속에 얼마만큼의 우리 문화유산을 쟁여 놓았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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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 창문
 금고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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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주문한 철제문으로 계단이 있었던 흔적이 있다. 조선잡기에 조선은 일인을 혐오해서 왜인이라 칭하면서도 중화에 사대한다고 비아냥거리는데, 일본의 영미숭배를 누가 따를 수 있을까?
 미국에서 주문한 철제문으로 계단이 있었던 흔적이 있다. 조선잡기에 조선은 일인을 혐오해서 왜인이라 칭하면서도 중화에 사대한다고 비아냥거리는데, 일본의 영미숭배를 누가 따를 수 있을까?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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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구마모토 개인의 금고로 썼다는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이 있는데, 마당에만도 이런 보물급 문화재를 갖다 놓은 것을 보면, 과연 금고 속에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었을지 궁금하기만 한데 창고문을 미제 철제문으로 한 것을 보면 예사 물건이 아니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군산간호대학(이영춘 가옥)

이곳도 구마모토의 ‘나와바리’다. 2만 명이나 되는 인력을 원활하게 활용하기 위해 진료소를 개설했다면 ‘감사’를 해야 하는지 논외로 하더라도 아담하게 잘 지어진 건물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지붕은 편암 판석으로 너와집처럼 올리고 벽체 일부는 통나무집처럼 꾸며져서 일부 변형된 것처럼 보이고 현재 사람이 살고 있어 내부를 둘러볼 수가 없는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이영춘가옥 진입부
 이영춘가옥 진입부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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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는 티크로 바닥재를 써서 당시 조선총독부를 제외하고는 호화로움을 따를 건물이 없었다 한다.
 내부에는 티크로 바닥재를 써서 당시 조선총독부를 제외하고는 호화로움을 따를 건물이 없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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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조선은행

3년의 세월에 나카사키 18은행은 찾아 볼 길이 없고 조선은행은 문을 폐쇄하여 들어 갈 수 조차 없는데 문을 막은 합판에는 무단출입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엄중한 경고문이 적혀 있다. 당시에도 퇴락했는데 이제는 지붕의 동판은 여기저기 뜯겨나가고 지붕골격을 이루었던 판자가 비바람에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다녀간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붕 동판은 벗겨져 아픈 상처를 들어내고 있다.
 다녀간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붕 동판은 벗겨져 아픈 상처를 들어내고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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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잔교(浮棧橋)

한자가 말해주듯이 물에 뜰 수 있는 부두에 다리를 엮어 수면 높이에 관계없이 배에 화물을 싣거나 나를 수 있도록 만든 다리이다. 내항에는 이런 부잔교가 여럿 있는데 아직도 쓰일 정도로 든든하게 만들었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역설적으로 이렇게 든든하고 과학적인 구조물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그만큼 수탈한 물량이 많았음을 반증하니 가슴이 쓰리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쓰이고 있는 부잔교. 이런 것을 보고 우리나라 산업에 이바지했다면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아직도 쓰이고 있는 부잔교. 이런 것을 보고 우리나라 산업에 이바지했다면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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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조선은행이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조선은행이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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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세관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건물인데 공무원 근무시간에 맞춰 관람시간을 정해놓아 오늘 같은 휴일에는 내부를 볼 수 없다. 붉은 벽돌 건물인데 이 건물을 보면서 서산 배방면 맹씨행단을 떠올리는 것은 좌우대칭 구조이면서도 양끝 건물 벽에 나있는 창문 모양을 서로 다르게 하여 시각적 건조함을 피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맹씨행단은 고려 때 지어진 건물이면서도 양 끝 창문의 위치를 살짝 변경하여 재미를 더했고, 군산세관은 왼쪽에는 아치 형태의 창문을 우측에는 직사각형의 세로로 긴 창문 두 개를 병렬로 배치해놓아 단조로움을 피해서 오랜 세월의 간극에서도 창작의 발상이 크게 다르지 않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좌우대칭형인데도 좌우 창문 형태를 달리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좌우대칭형인데도 좌우 창문 형태를 달리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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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배방면 맹씨행단. 몇백년의 차이가 나지만 예술가의 두뇌구조는 대동소이한 것 같아서 놀라울 뿐이다.
 서산 배방면 맹씨행단. 몇백년의 차이가 나지만 예술가의 두뇌구조는 대동소이한 것 같아서 놀라울 뿐이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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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건축가의 의도와 건물의 쓰임새의 상관관계는 어떠할까? 관청이라면 일반인은 으레 위축되기 마련인데 아무리 건물외양이 아름답다고 해도 피지배계급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더 큰 괴리감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동국사

마치 규모가 큰 일본식 일반주택을 보는 느낌이다. 단청이 없이 초콜릿 색깔에 가까운 검은 칠을 한 기둥과 가구구조, 가는 기둥, 가는 추녀, 부채살 펴지듯 펼쳐진 귀서까래가 아닌 평행 귀서까래이고, 공포(기둥이나 도리 위에서 지붕을 받쳐주는 구조물)가 없다. 들려진 추녀가 없으니 부드러운 곡선의 처마선은 없지만 대신 단정하다. 마당 한쪽에는 범종각이 있는데 기단을 빙 둘러 광배판을 한 석조보살상을 늘어놓았다. 동국사의 백미는 뒷마당 대나무숲과 요사채 처마의 조화이다. 곧게 뻗은 대나무와 간결한 처마는 풍성한 대나무잎의 부드러운 윤곽선과 절묘하게 호흡을 맞춘다.

왼쪽에는 대웅전 오른쪽에는 요사채가 있어 현관으로도 겸용되는 복도로 이어졌다.
 왼쪽에는 대웅전 오른쪽에는 요사채가 있어 현관으로도 겸용되는 복도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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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으로 병용되는 대웅전과 요사채간 복도
 현관으로 병용되는 대웅전과 요사채간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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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루를 장식하고 있는 광배판이 달린 석조보살상
 범종루를 장식하고 있는 광배판이 달린 석조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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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벋은 대나무와 처마선과 대나무 잎 윤곽선이 만들어내는 풍경
 죽 벋은 대나무와 처마선과 대나무 잎 윤곽선이 만들어내는 풍경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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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 규스케라는 일본인이 쓴 <조선잡기>를 보면 ‘문명국’ 일본의 시각으로 본 조선의 문물, 풍속이 잘 그려져 있다. 읽으면서 울화통이 터지기도 하고 자책도 느껴지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책인데 흔히 ‘엽전’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의 근거가 모두 집대성되어 있는 것 같은 책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다면 일본은 과연 문명국으로서 주변 후진국들에게 어떠한 처신을 했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각성제 같은 책이다. 군산의 근대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내내 조선잡기에 나오는 일본인의 시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적산가옥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일본식 주택.
 적산가옥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일본식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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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제지선 철로. 지금은 페이퍼 코리아로 명칭이 바뀐 제지공장과 군산항을 연결하는 철로.
 세풍제지선 철로. 지금은 페이퍼 코리아로 명칭이 바뀐 제지공장과 군산항을 연결하는 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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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敵産家屋)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도시 군산. 건축적인 흥미로 찾았든 식민사관 극복 목적으로 찾았든 피지배민족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 있어 자연스레 유성페인트로 두껍게 덧칠된 문짝 하나도 예사롭지가 않은 곳이다.

간장게장집 ‘대가’

일본의 영향은 많이 받은 군산은 그래서 특산품으로 올외장아찌도 유명하다. 흔히 ‘나라쓰케’라고 하는 것인데 일본사람들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밥 한 그릇 다 비운다 한다. 밥도둑이라고 불리는 간장게장집에서 ‘나라쓰케’를 부탁한다. 역시 ‘나라쓰케’는 반찬이 없을 때 짠지로 먹는 것이지 간장게장 같은 품격 있는 음식과는 애시당초 견주지 말았어야 했다.

발라주지 않아도 입으로 쪽 빨면 속살이 나오게 다듬어진 간장게장
 발라주지 않아도 입으로 쪽 빨면 속살이 나오게 다듬어진 간장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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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버무려 야채의 싱싱함이 살아있는 꽃게무침
 방금 버무려 야채의 싱싱함이 살아있는 꽃게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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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잎으로 장식한 생선회. 딸려나오는 반찬이다.
 동백잎으로 장식한 생선회. 딸려나오는 반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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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장국물로 밥을 비비고 장을 올려놓은 후 김으로 싸서 한입에 날름!
 게장국물로 밥을 비비고 장을 올려놓은 후 김으로 싸서 한입에 날름!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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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접시에 입에 넣고 빨기만 하면 속살이 당겨 나오게 다듬어 주는 게장, 방금 무친 꽃게무침(양념게장), 동백이파리로 장식한 신선한 생선회, 걸찍한 호박죽과 전북소주 하이트 소주로 마감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연세56치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산, #근대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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