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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장애인 차별 철폐 공동 투쟁단'이 주최하고 '탈시설 정책위원회'가 주관한 <탈시설 권리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박숙경 박숙경 장애와인권발바당행동 상임활동가, 김병철 장애 당사자, 박장용 인천민들레장애인야학 교육국장,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 교수, 김윤태 우석대 특수교육과 교수, 김경미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문희 서울장애인가족지원센터장.
 '420장애인 차별 철폐 공동 투쟁단'이 주최하고 '탈시설 정책위원회'가 주관한 <탈시설 권리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박숙경 박숙경 장애와인권발바당행동 상임활동가, 김병철 장애 당사자, 박장용 인천민들레장애인야학 교육국장,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 교수, 김윤태 우석대 특수교육과 교수, 김경미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문희 서울장애인가족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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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와 약간의 시각장애를 가진 김병철씨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장애인 시설에 입소하게 됐다. 두 차례 시설을 옮겼고, 이후 공동생활가정(그룹홈) 대상자로 선발돼 현재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다. 공동생활가정이란 '지역사회 주거지역 내에 위치한 일반주택에서 전문직원에 의해 최소한의 도움을 받으며 사회적 자립과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주거공간'으로 정의된다.

탈시설 권리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장애를 가진 당사자 패널로 나선 김씨는 "시설에서는 밤 9시쯤 되면 자야 하는데, 그룹홈에서는 자는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며, "처음으로 직업을 갖게 됐고, 용돈도 벌고 저금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김씨도 자립생활을 꿈꾸고 있었다. 토론을 위해 의사소통 보조를 받는 그는 구체적인 이유까지 설명할 수 없었지만, "내 꿈은 독립"이라고 또박또박 발음하며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단순히 '혼자 사는 것'이 독립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립에는 수많은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 그 선택이 긍정적 결과를 불러오든, 부정적 결과를 불러일으키든 선택의 몫은 온전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 식사, 가구배치 등 내 삶의 보다 많은 것들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장애를 가진 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에게나' 말이다.

탈시설 권리실현을 위한 토론회 열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하1층 강당에서는 '420장애인 차별 철폐 공동 투쟁단'이 주최하고 '탈시설 정책위원회'가 주관한 탈시설 권리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탈시설 정책위원회(위원장 곽노현)는 장애인 시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연구하는 자발적 모임으로서, 장애를 가진 당사자는 물론 사회복지·법학 전문가 및 장애·인권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03년부터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운동, 시설인권확보 및 시설 비리 척결과 민주화 운동을 지원해 왔다.

또한 '인간창고'라고 불리는 사회복지시설의 구조적인 문제에 주목하여, 시설 위주의 정부정책들을 극복하고 장애인들이 지역중심의 '탈시설·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적 사회복지정책을 모색하는 모임이다.

이 토론회도 그 연장선에서 장애인들의 '탈시설 권리의 법적 근거와 실현과제'에 대해, 특히 시설보호가 불가피하다고 이야기되는 '발달장애인들의 탈시설'을 주제로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에는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고, 김윤태 우석대 특수교육과 교수, 박장용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 교육국장, 발달장애인 당사자 등이 토론 패널로 나서 관련주제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나눴다.

인간창고형 수용시설에서 지역사회로 통합을

박숙경 장애와인권발바당행동 상임활동가에 의하면 사회복지시설은 흔히 수용보호의 형태에 따라 인간창고형(warehousing), 원예형(houticulture), 정상화형(normalization)으로 나눠진다. 이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생활시설은 '인간창고형'으로 창고 속 가구를 보관하는 것 같이 시설생활자들을 시설에만 붙들어 놓고 씻고, 먹이고, 대소변을 가리는 역할에만 치중하는 시설을 말한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이러한 시설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욕구와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 방향은 탈시설이며, 이들의 탈시설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행복추구권 등에 의거한 사회적 기본권"이라고 주장한다.

김명연 상지대 법학부 교수는 발제를 통해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고 해도 공동체와 분리된 생활이라는 점에서 헌법에 기초한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며 개인의 자기결정권 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공동체 참여가 가능한 장애인의 적격성 및 합리성 심사와 자립지원서비스 제공을 위해 행정체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에 관해 발제한 김윤태 우석대 특수교육과 교수.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에 관해 발제한 김윤태 우석대 특수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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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특히 '탈시설'의 지향과 원칙에 찬성하면서도 '중증발달장애인에 관해서도 탈시설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했다.

이와 관련해 발제한 김윤태 우석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흔히 발달장애라고 할 때 신체적·정서적·사회적 발달로 나눠볼 수 있는데 이러한 발달이 다 완벽하게 이뤄진 사람은 없다"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뜯어 봤을 때 미숙한 게 많다는 점에서 우린 모두 발달장애"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장애의 정도가 아주 심해 중증인 경우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모두 시설로 몰았다"는 점에 대해서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 장애를 가진 이들의 욕구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며 사고의 전환을 촉구했다. 또한 장애인들의 고용·주거·성·여가생활 등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며 "중증장애를 가진 이들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지원센터설립은 평생교육(진흥)원 설치 및 운영에 관련된 법안에 의거하여 현행법체계 안에서도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박장용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 교육국장과 박문희 서울장애인가족지원센터장은 실제 장애를 가진 이들과 부대끼고 살면서 알게 된 시설의 문제에 대해 생생한 사례를 통해 증언하기도 했다.

특히 박장용 교육국장은 시설에서 예산지원을 위해 장애인들을 다른 병명으로 위장하거나, 의사표시를 잘 할 수 없어 방치돼 시기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사례 등 시설의 각종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시설 밖의 생활이 자립생활과 동의어는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시설 밖의 생활이 생존과 자기결정권을 위협하지 않는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들을 형성해 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은 중요한 소수자

토론을 위해 의사소통을 도와준 박숙경 장애와인권발바당행동 상임활동와 발달 장애인 당사자로 나와 본인의 그룹홈 생활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밝혀 준 김병철 씨.
 토론을 위해 의사소통을 도와준 박숙경 장애와인권발바당행동 상임활동와 발달 장애인 당사자로 나와 본인의 그룹홈 생활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밝혀 준 김병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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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시설보호'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사회복지정책만은 아니다. 개인의 삶과 법적권리에 있어 생활시설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도 그 사람의 '차별의 경험'은 그 사회가 어떤 사회냐에 따라서 질적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어떤 장애를 가졌든지 삶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고, 자신의 장애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의 중요한 소수자라고 할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소수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그 사회가 '다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내 꿈은 독립"이라던 김병철씨의 꿈도 우리사회의 인식 및 정책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독립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장애의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독립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나 지역사회 내에서의 통합 등 각종 사회적 조건들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시혜의 관점으로 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4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김병철씨를 비롯한 이 땅의 수많은 장애를 가진 이들이 '지역사회로 통합되어 공동체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힘껏 내딛은 한걸음이다. 토론회를 주관했던 탈시설 정책위원회는 5월부터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오후 6~9시까지 서울 종로구 방송대학 연구1동 1층 회의실에서 '탈시설 정책 월례 세미나'를 가질 예정이다(문의 : 박숙경 psk328@hanmail.net).


태그:#탈시설, #장애인, #탈시설 정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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