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여년 째 서울 시내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해 온 김경배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은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운영하는 기업형 수퍼마켓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기 위해 소상공인들과 연대해 대형마트 저지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20여년 째 서울 시내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해 온 김경배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은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운영하는 기업형 수퍼마켓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기 위해 소상공인들과 연대해 대형마트 저지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27 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코사마트' 양재점. 그는 이날 오전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사온 콩나물, 상추, 배추 등을 차에서 내려 매장 한 쪽에 진열하기 시작했다. 진열이 끝나면 매직과 종이를 꺼내 가격표를 적어 붙이는 일까지 마쳐야 한다.

작업복 차림이던 그는 양복 정장을 챙겨들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서초동 '예술의 전당' 앞에 위치한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이하 KOSA) 사무실로 가기 위해서다. 그가 떠난 매장에는 그의 부인과 직원들이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다.

김경배(51) KOSA 회장의 하루는 아침 6시에 농수산물시장에서 물건을 떼어 오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오후에는 오로지 연합회 일에만 매달려야 한다.

공산품 중심이던 그의 매장에 농산물이 50%를 차지하게 된 것은 1996년 유통시장 개방 때부터다.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하던 대형 할인마트가 벌써 1킬로미터 반경 내에 5개나 된다. 매출이 40% 가까이 줄자, 대형마트와 경쟁하기 위해 1차 상품을 대폭 늘렸다. 그뿐이 아니다. 원래 밤 9시면 매장 문을 닫았지만 지금은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한다. 결국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구멍가게' 생존 위협하는 '공룡마켓'

지난 3월 김 회장은 8차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 추대로 연임에 성공(?)했다. 지난 1997년 회장을 맡은 이래 2012년까지 5연임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불꽃을 태워서라도 눈앞의 현안들을 해결해 중소유통업계의 권익을 보호해 나가도록 하겠다"는 게 그가 밝힌 포부였다.

예전엔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 할인마트와 싸웠지만, 지금은 대형 할인마트의 분신인 대형 수퍼마켓(SSM.Super Supermarket), 이른바 '공룡마켓'과 골목 상권을 두고 한판 전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유통업계 1위인 이마트마저 SSM 진출을 선언한 가운데 이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131개, 롯데슈퍼 110개, GS슈퍼 107개 등 300여개가 넘는 SSM이 골목 깊숙이 들어와 '구멍가게'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SSM는 3300m²(1000평) 이상인 대형 할인마트와 달리 330~3300m²(100평 이상 1000평 이하)의 소규모이기에 입지에 구애를 받지 않고, 주택가나 아파트 상가 등 근린 상권에 출점이 용이해 수익성이 높다. 이 SSM이 들어서는 곳은 인근 중소유통상인들이 50% 이상의 매출 감소를 겪고 있으며, 출점 과정에서 좋은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임차시장 가격을 부풀려 기존 점포를 퇴출시키는 수단도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대기업이 콩나물·두부까지 만들어 중소기업을 다 죽이더니, 이젠 콩나물·두부까지 팔아서 골목상권을 빗자루 대고 싹 쓸어버리듯 휩쓸어간다면 중소 유통상인들은 길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며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투쟁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KOSA는 전국적으로 'SSM 확산저지 소상공인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5월 중순까지 'SSM 규제' 등 정부의 대책 마련이 없을 경우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김 회장은 이미 2년 전 재래시장 상인단체와 연대해 서울역 앞에서 3000명이 참석한 '대형 할인마트 규탄' 집회를 이끌어낸 바 있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01년 백화점의 편법 셔틀버스 운행으로 지역 중소유통업체들이 타격을 입자, 비대위 위원장을 맡아 2년 반 동안 싸운 끝에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 금지' 입법화에 성공했다. 또한 카드사의 불공정한 수수료 문제를 제기하며 수년째 수수료 인하 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 회장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해가 안 되거나 불합리하면 참을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책을 한 권 썼는데, 제목이 '내가 현대판 독립군"이었다. 철학이 없으면 이 일도 못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합당치가 않을 경우, 잘못하면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라며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와 직접 관련이 안돼 있으면 참여도 안하고 생각도 안 하는데, 그게 결국은 자기와 관계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경배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7일 낮 양재동 매장과 KOSA 회장실 등에서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이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대기업이 콩나물·두부까지 팔아서..."

KOSA, "전근대적인 유통구조 개선"
전국 수퍼마켓 상인들로 구성된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KOSA)는 국내 중소유통인들의 조직화, 협업화로 소매업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을 위해 1990년 5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전국에 걸쳐 권역별로 45개의 지역조합으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조합원은 5000여명(준 조합원 포함시 약 3만명)에 달한다.

KOSA는 1993년 '소매점포의 네트워크'를 위해 공동브랜드 '코사마트'를 개발, 공동구매와 공동판매, 공동배송을 추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코사마트'를 중국에까지 진출시켜 중소유통업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OSA는 "중소유통인들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사업을 상부상조 정신을 바탕으로 한 협동사업을 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KOSA는 유통산업 정책개발 및 중소상인 보호육성을 위한 정부건의는 물론 전근대적인 유통구조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 홈플러스, 롯데마트에 이어 이마트도 대형 수퍼마켓(SSM) 진출을 선언했다. SSM의 문제점은?
"대형마트나 SSM을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 다만 중소유통업체들이 그들과 같이 상생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중소상인 육성을 위한 획기적인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고 방치하면 사회의 중산층이 붕괴해서 영세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사회 문제화 되고, 국가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자본주의 시장논리로만 대응할 것이 아니라, 소상공인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 줘야 한다.

해외로 진출하고, 또 좋은 물건 만들어서 외국에 수출해야 할 대기업이 유통의 골목상권까지 싹쓸이 한다면 도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 지금은 완전히 빗자루 대고 쓸어가듯이, 쓰나미가 휩쓸고 가듯이 골목상권까지 쓸어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소상공인들은 길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생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정부가 중간에서 잘 조율해야 한다. 대기업이 콩나물·두부까지 만들어 중소기업을 다 죽이더니, 이젠 콩나물·두부까지 팔아서 소상공인까지 다 죽이겠다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이마트는 "이미 다른 대기업들이 소규모 업태 사업에 모두 진출해있는 상황이고 신세계는 오히려 가장 뒤늦게 시작했다"는 입장이다. KOSA에서 좀 더 일찍 대처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대형마트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문제제기를 했다. SSM은 1~2년 전부터 갑자기 증가했다. 대형마트가 포화상태가 되니까, 갑자기 SSM으로 돌아선 것이다. 중소유통업체의 가장 큰 장점이 소비자와 가깝다는 것이다. 대형마트가 있었어도 그런 틈새를 가지고 나름대로 버티고 있는데, 대형 자본이 골목까지 들어오면 완전히 초토화되는 것이다."

- 소비자 입장에서는 좀 더 저렴한 상품을 쾌적한 공간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유리한 것 아닌가?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시적으로 SSM이 깨끗한 환경에 저렴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대형마트에 의해서 상품의 규격이 많지 줄었다. 두루마리 화장지의 길이는 원래 70미터였는데, 대형마트가 제품 단가를 내리면서 35미터까지 줄었다. 소비자는 그저 24매라고만 생각하지, 몇 미터인지는 생각 못한다. 우유도 전부 1L였는데,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900ml가 생겼다. 설탕 역시 원래 3kg 외에는 없었는데, 대형마트 때문에 2.7kg이 만들어졌다. 과자도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세밀하게 안 봐서 그렇지, 가격은 실질적으로 6% 정도 차이에 불과하다. 물론 야채, 과일은 대형마트가 훨씬 비싸다.

특히 대형마트가 들어가 있는 주변은 순간적으로 물가가 내렸지만, 주변 상인들이 몰락하면서 다시 가격이 오르게 된다. 제주도의 경우 대형마트가 배추를 육지에서 가져다가 500원에 팔았다. 그러니까 현지 농민들이 타산이 맞지 않아 배추밭을 갈아엎었다. 배추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없어지니까, 대형마트는 결국 값을 올리게 된다. 다만 좋은 시설에 깔끔한 것은 맞다. 그래서 우리도 변해가는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주변 상가가 죽으면 대형유통업체에서 가격을 올리고 있고, 국가 전체적으로 봐서도 그런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 그렇다고 무조건 SSM의 진출을 막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이 많기 때문에 애당초 유통시장을 개방할 때 조금 더 신중하게 충분한 전략과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일본은 상품 품목을 까다롭게 하고, 프랑스는 주변 상인들과 충분히 협의를 한다. 프랑스는 대형마트가 시내 매장을 내려고 할 때, 주변 중소 상가의 매출 감소가 20%만 나와도 허가를 취소시킨다. 외국의 경우 꼭 중소유통업체 보호 때문이 아니더라도 노동법이나 환경영향평가 등으로 엄격하게 규제한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하나도 없다.

SSM은 무조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사회가 같이 더불어 가는 것이지, 자본주의 시장 논리만으로 살 수 있나. WTO와의 협상안을 보면 우리 경제의 한 축에 급격한 위기가 오면 3년 후에 재협상을 하기로 돼 있는데 안했다. 지금 우리 법만으로도 SSM 만들 때 신고제를 허가제로 할 수도 있고,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고, 판매 상품도 조정이 가능하다."

"'공정한 룰' 만드는 게 규제? 그럼, 부동산·물가는 왜 규제하나?"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 정부에서는 SSM의 진출을 제도적으로 막을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공정위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경쟁으로 인해 도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인데.
"아직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다. 재래시장이 5000개에서 3500개가 문 닫고, 근래 자영업이 40만~50만개가 문 닫았다. 수퍼 업종도 96년부터 4만개가 없어졌다. 그런데도 정부가 규제라는 편견을 대입해 개입을 안 하고 있다. 그게 규제라면 부동산이나 물가는 왜 규제를 하나? 시장 논리로 놔두지. 규제를 하는 것은 경제의 한 축이 불리하니까 하는 것이다.

자영업이 1인 기업까지 따지면 600만개다. 그 사람들이 직업을 잃으면 모두 어디에 고용되나? 대기업은 갈수록 고용이 줄고, 퇴출된 사람은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창업 성공률은 10% 밖에 안 된다. 이렇게 반복되는 것을 정부가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미국에서 금융위기 일어난 것 봐라. 결국 공적자금까지 들어가지 않았나. 대형마트가 마구잡이식으로 싹쓸이 하는 것을 방치하면 결국 국가의 부담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내가 깜짝 놀란 게 국무총리실 산하에 있는 규제개혁위원회를 가보니까, 대기업에서 전부 나와 상주를 하더라. 그런 곳에 중소기업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정부가 양쪽 얘기도 들어봐야 하는데, 매일 대기업쪽 사람들하고만 얘기하고, 밥 먹고, 술 마시니까, 그쪽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

- 중소유통업체가 SSM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무엇인가?
"큰 곳은 큰 것만 팔고, 작은 곳도 먹고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적어도 대기업이 두부·콩나물은 안 팔아야 하는 것 아닌가. 독일은 실제 그렇게 하고 있고, 대형마트가 헌법소원 냈다가 졌다. 3~5년 정도 중소유통업체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단계별로 접근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틈새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대형마트는 저녁 8시까지만 영업을 한다든가, 주말은 무조건 쉬게 해야 한다. 꼭 중소유통업체를 위해서가 아니다. 외국은 노동법을 가지고도 그렇게 한다. 소상공인을 위해서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럼 노동법으로 보자는 것이다. 전 세계에 시내 한복판에서 24시간, 365일 두부·콩나물까지 파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공정한 게임은 룰이 있어야 하는데, 룰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는 말이다."

- 해결이 안 될 경우, 향후 계획은?
"전국적으로 소상공인, 재래시장, 지역경제 살리기 본부,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 '대형마트 및 SSM 확산저지를 위한 비대위'를 구성하고 있다. 28일 대전에서 처음 발족한다. 지방이 모두 구성되면 서울에서 대대적으로 집회를 할 것이다. 5월 중순경이 될 것이다. 지역별 참여 단체가 50여개 정도 된다.  대형마트, 국회 각 정당, 정부 측을 상대로 항의 방문도 준비하고 있다."

-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나?
"보람도 있지만, 불이익이 더 컸다. 내가 쓴 책의 제목이 '내가 현대판 독립군'이다. 철학이 없으면 못한다.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합당치가 않을 경우, 잘못하면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와 직접 관련이 안돼 있으면 참여도 안하고 생각도 안한다. 그런데 그게 결국은 자기 일이다. 어떤 법과 제도도 상식선 안에 있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해가 안 되거나 불합리하면 참을 수 없는 것 아닌가."


태그:#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KOSA, #대형 수퍼마켓(SSM), #김경배 회장, #공룡마켓, #구멍가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