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골잡이 강수일이 몸을 내던지며 오른발로 결승골을 터뜨리는 순간!

인천 골잡이 강수일이 몸을 내던지며 오른발로 결승골을 터뜨리는 순간! ⓒ 심재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 탓인지는 몰라도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는 겨우 3,240명 밖에 들어오지 못했다. 8라운드 일곱 경기 중에서 가장 적은 숫자였다. 그래도 강수일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게 여겨졌다.

종료 직후 동쪽 관중석 앞으로 다가와 인사할 때는 안방에서의 첫 골이라는 그 기쁨과 고마움을 담아 연거푸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엄지 손가락 두 개를 모아 자신의 유니폼에 써 있는 이름을 가리켰다. 꼭 기억해달라는 뜻으로 보였다. 그곳에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팬들은 이미 많았다.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2일 낮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09 K-리그 8라운드 대구 FC와의 맞대결에서 후반전 끝무렵 터진 강수일의 짜릿한 결승골에 힘입어 2-1로 이겼다.

2005년의 '슈퍼 서브' 마니치를 떠올리다!

2007년 10월 10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07 K-리그 25라운드 FC 서울-인천 유나이티드 FC 경기에서 당시 박이천 감독(현 부단장)의 부름을 받고 18분(75분~90+3분)을 뛴 인천의 강수일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프로축구 1군 무대를 처음 밟아본 것이었다.

그리고 18개월 이상이 흐르는 동안 강수일에게 K-리그 1군 무대는 그저 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꿈만 같은 곳이었다. 2009년 5월 2일, 2009 K-리그 8라운드 대구 FC와의 안방 경기 56분에 그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잡았다. '박창헌, 장원석, 김영빈, 송유걸'과 나란히 옆줄 밖에서 몸을 풀던 그를 페트코비치 감독이 부른 것이었다.

프로축구에 들어와 세 시즌을 보내면서 겨우 10번째 경험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몸놀림도 특유의 탄력이 느껴질만큼 가벼웠다. 들어오자마자 상대 벌칙구역 반원 안에서 유병수의 발 앞에 이마로 공을 떨어뜨려주는 동작이 인상적이었다. 뭔가 일을 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취골의 주인공 카디코프스키가 대구 미드필더 백영철(오른쪽)을 따돌리고 있다.

선취골의 주인공 카디코프스키가 대구 미드필더 백영철(오른쪽)을 따돌리고 있다. ⓒ 심재철


그는 결국 큰 일을 내고 말았다. 85분, 또 다른 교체 선수 박재현이 오른쪽 측면을 시원스럽게 뚫고 낮게 깔아준 공을 향해 온몸을 내던져 기막힌 결승골을 터뜨린 것. 상대 문지기는 옛 부천 SK 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노련한 조준호였지만 그의 탁월한 득점 감각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더구나 지난 달 26일 창원에서 벌어진 경남 FC와의 방문 경기(경남 0-2 인천) 83분 쐐기골에 이은 두 경기 연속골 기록이어서 더욱 뜻깊은 일이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연습생-2군' 생활을 거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끝에 처음으로 안방 관중들 앞에서 득점 뒤풀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4-2005 두 시즌을 인천에서 뛰며 한국에서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라디보예 마니치가 떠올랐다. 9득점 5실점의 인상적인 기록을 남기고 떠난 마니치는 인천이 창단 두 번째 시즌만에 전후기 통합순위 1위(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의 기적을 만들어내던 2005년에 주로 후반전 교체 선수로 뛰었다.

마니치가 선수 교체를 위해 대기 심판 옆에 서는 순간,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는 영화 '슈퍼맨'의 경쾌한 배경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른바 '슈퍼 서브'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거짓말처럼 바람을 가르며 달려들어가 결정적인 골을 종종 터뜨렸다.

이제 인천 구단에서는 또 하나의 슈퍼 서브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강수일만을 위해 배경 음악을 붙여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별명을 따서 배경 음악 제목도 '문학동 오바마를 위하여' 정도면 어떨까 싶다.

인천이니까 '짠물 수비'?

 인천의 주장 임중용이 대구의 김민균을 따돌리며 왼발로 공을 처리하고 있다.

인천의 주장 임중용이 대구의 김민균을 따돌리며 왼발로 공을 처리하고 있다. ⓒ 심재철


올 시즌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는 절대적인 관중수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반면에 진정으로 축구를 즐기는 팬들은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시민구단으로 창단 후 여섯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선수들의 실력이 기대를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5년 많은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던 시민구단의 '비상(飛翔)'이 생생하게 재연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우선, 인천은 올 시즌 안방에서 열린 다섯 경기(컵 대회 1경기 포함)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4승 1무(6득점 1실점)의 안정된 실력을 자랑하고 있는 중이다. 방문 경기 기록들까지 포함해도 웬만한 팀들에 비해 모자라지 않아 현재 정규리그 4위(4승 2무 1패, 8득점 3실점)에 올라 있다. 순위표 바로 위에 있는 FC 서울보다 한 경기 덜 치른 것을 감안하면 전북-광주와 함께 3강 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천이 이렇게 순항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로 '새내기 골잡이 유병수-미드필더 도화성, 김민수'등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안정된 수비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심에 가운데 수비수 '임중용, 안재준'이 뛰고 있다. 오른쪽의 윤원일(제이드 노스)과 왼쪽의 전재호가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운데 수비수 둘이 안정된 호흡을 보이지 못하면 이 정도 성적(7경기 3실점)을 낼 수 없는 일이다. 현재 K-리그 최고의 짠물 수비팀 이미지를 계속 심어주고 있는 셈이다.

 73분, 대구 골잡이 한정화가 오른발로 골을 노리고 있다. 이 공은 인천의 골문 오른쪽 기둥을 때렸다.

73분, 대구 골잡이 한정화가 오른발로 골을 노리고 있다. 이 공은 인천의 골문 오른쪽 기둥을 때렸다. ⓒ 심재철


이 경기 전까지 인천 수비진은 올 시즌 안방에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겨우 다섯 경기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허무하게 골을 내주던 수비라인과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전재호-임중용-안재준-윤원일'로 짜여진 포 백 시스템은 지난 해부터 종종 써 오던 것이기 때문에 새로울 것도 없지만 그만큼 많은 경기를 통해 안정감을 찾았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데뷔 2년차 수비수 안재준은 상대 공격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눈을 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로채기에 능하다. 아직까지 공을 소유한 뒤 제2 동작(드리블, 공격 전환 패스)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노련한 쌍둥이 아빠 임중용과의 상호보완적 몸놀림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여기에 몸을 아끼지 않는 임중용의 커버 플레이는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대구의 '쉬메릭' 선수 ㅋㅋ

경기 시작 전부터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계절의 여왕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문학경기장 동쪽 관중석에는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조촐한 즐거움이 넘쳤다.

관중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선물한 강수일 말고도 특이한 즐거움을 선물한 두 선수가 양팀에 나란히 한 명씩 있었다. 한정화-김민균과 함께 대구 FC의 공격을 이끌려고 했던 조형익이 그 첫 번째 주인공이다.

 인천 수비수 안재준(왼쪽)이 대구 골잡이 김민균을 앞에 두고 공을 걷어내는 순간.

인천 수비수 안재준(왼쪽)이 대구 골잡이 김민균을 앞에 두고 공을 걷어내는 순간. ⓒ 심재철


지난 달 19일 같은 곳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 수원 블루윙즈의 맞대결이 득점 없이 끝나는 바람에 관중들 입장에서는 몹시 아쉬웠지만 내용 자체를 즐긴 사람들에게는 방문 팀의 골잡이 이상호가 눈에 띄었다. 그 이유는 수원의 빠른 공격이 이어지다가도 그에게 공이 가면 느린 화면 모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후반전 중반 미드필더 백지훈과 교체되기 전까지 이상호는 정말로 인천 수비수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셈이었다.

그리고 2일에도 대구 FC의 골잡이 조형익이 그 불명예를 이어받은 듯 공이 그의 발에 걸리는 족족 대구의 소유권과는 멀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드리블부터 패스, 킥 모두 안 되는 바로 그 날이었다.

1-1로 팽팽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던 후반전 끝무렵 그는 엉뚱하게 주심으로부터 노란딱지까지 받고 말았다. 옆줄 밖으로 나간 공을 빨리 던지기로 처리하지 않고 어슬렁거렸다는 홍진호 주심의 지적이었다. 이렇게 그는 상대팀 수비수들을 여러 차례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인천 팬들의 박수를 가장 많이 받은 대구 선수가 되고 말았다.

관중석에 큰 웃음을 준 또 하나의 선수는 올 시즌부터 인천의 간판 골잡이로 자리잡고 있는 드라간 카디코프스키다. '챠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나란히 뛰는 골잡이 유병수, 측면 미드필더 김민수 등과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라돈치치(성남)가 떠난 인천의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뛰고 있다.

그는 이 경기에서도 시작 후 5분만에 유병수의 수준 높은 찔러주기를 받아 왼발로 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전광판 느린 화면으로 이 골 장면을 지켜본 인천 관중들은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발등에 잘 맞기 보다는 잘못 맞은 공이 상대 문지기 조준호의 가랑이 사이로 느리게 굴러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골프로 치면 기막히게 퍼팅 라인을 읽었다고 할까?

그런데, 챠디의 이런 골 장면은 경기 직전에 예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천 구단은 킥 오프 직전에 11명의 선수들이 기념 사인볼을 두 개씩 들고 옆줄까지 나가서 관중석에 질러준다. 챠디도 두 개를 들고와 한 번은 오른발로 한 번은 왼발로 공을 걷어찼다. 그런데 우습게도 두 개가 다 관중석에 미치지 못하고 떨어졌다.

190cm의 키에 80kg가 넘어가는 거구가 찬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약했다. 더 웃긴 일은 벽에 맞고 자신의 앞에 굴러온 공 하나를 다시 주워 찬 것까지 관중석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축구 전용구장이 아니라 종합경기장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과연 저 정도의 힘으로 상대 수비수들과 문지기를 따돌리며 골을 넣을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그런데, 딱 그 정도의 힘과 속도로 정말 골이 들어가는 장면을 보니 더욱 기막힌 웃음이 나온 것이다.

간혹 들리는 관중들의 촌철살인은 축구장에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어드밴티지 룰을 적용하지도 못하는 심판의 바보같은 경기 운영을 보다가 참지 못해, "야! 심판, 너!..."라는 말은 이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대구 FC 경기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명 대사를 들을 수도 있었다. 대구 FC 유니폼 뒤 번호 위쪽에는 '쉬메릭'이라는 세 글자가 찍혀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선수들의 이름을 새겨 넣는 곳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외국인 선수 이름인 것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오죽하면 국내의 일부 언론사에서는 대구 FC의 경기 장면 사진을 설명하는 글에서도 공공연히 '대구 FC의 쉬메릭 선수가...'라는 말을 썼겠는가? 축구에 관심이 없는 언론 때문에 팬들이 고생이 많은 것이다. 쉬메릭은 대구시가 섬유, 안경테, 제화 등 중소업체들의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창안한 공동 브랜드 이름이다.

이 날 문학경기장 관중석에서도 어김없이 '쉬메릭' 선수에 대한 궁금증이 터져나왔다. 매치데이 프로그램 'The United'에 찾아봐도 그런 이름의 방문 팀 선수는 없었다. 아무리 봐도 토종 선수만 열 세 명이 뛴 대구 FC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실제로 골잡이 포포비치나 음밤바는 90분 경기 내내 옆줄 밖에서 몸만 풀다가 끝나고 말았다.

바로 뒤에 앉은 관중들이 자꾸 '쉬메릭' 선수를 불러대는 통에 씹던 껌을 삼킬 뻔 했다.

덧붙이는 글 ※ 2009 K-리그 8라운드 경기 결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

★ 인천 유나이티드 FC 2-1 대구 FC [득점 : 카디코프스키(5분,도움-유병수), 강수일(85분,도움-박재현) / 이슬기(12분,도움-백영철)]

◎ 인천 선수들
FW : 카디코프스키, 유병수
MF : 김상록(46분↔박재현), 도화성, 노종건(69분↔김영빈), 보르코(56분↔강수일)
DF : 전재호, 임중용, 안재준, 윤원일
GK : 김이섭

◎ 대구 선수들
FW : 한정화, 김민균(78분↔남현성), 조형익
MF : 백영철, 최종혁(68분↔장상원), 이슬기, 김주환
DF : 윤여산, 펑샤오팅, 방대종
GK : 조준호
강수일 유병수 카디코프스키 인천 유나이티드 FC 대구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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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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