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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4: 영하 40도에서 소변을 보면?

새벽에 영하 40도까지 떨어졌다. 예전에 책을 보니 추운 날씨에서 소변을 보면 바로 얼어버린다고 했는데 정말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내가 궁금하면 참을 수 없는 성격이라 가장 추운 새벽에 소변을 보기로 마음 먹었다.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신비한 현상을 위해서 헤드랜턴과 카메라도 준비했다. 드디어 역사적인 기록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의식을 진행한다.

호흡 한번 가다듬고, 몸 안의 기를 모아 방광으로 전달한다.

나의 내공 가득 담긴 뜨거운 열기의 강력한 한줄기 소변이 영하 40도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른다. 그런데 너무 뜨거웠나? 아니면 날씨가 따뜻한가? 얼기는커녕 새하얀 눈 밭에 깊고 깊은 구멍(?)만 만들고 있었다. 부르르 떨려오는 반응에 괜스레 한기만 느껴진다.

어제 내가 도착하고 나서 한 시간 좀 넘은 후에 미호가 도착했다. 아시아 좀비 3인 방이 다시 부활한 거다. 아침에 운영요원들과 친한 선수들이 우리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인사들을 한다. 그리고 '스코트'가 어디선가 새로운 스노우 슈즈를 가져왔다. 드디어 3일만에 정상적인 레이스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속이 안 좋고 구토를 많이 해서인지 식도부터 위까지 거북하고 아프다. 어제 점심 이후로 먹은 음식물은 죄다 토했기에 배가 너무 고팠다. 하지만 무엇이든 먹기만 하면 구토를 하기에 아침 먹기도 힘들다. 메디컬 팀에게 소화제 좀 구해달랬더니 약 대신 진한 블랙커피가 좋다며 한 바가지 먹인다. '정말 의사 맞아?' 억지로 먹이는 커피, 마치 사약을 먹는 기분이었다.

난로에 젖은 장비들을 말린다. 그러다 태워먹기를 반복...
 난로에 젖은 장비들을 말린다. 그러다 태워먹기를 반복...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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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남들 출발하고 30분 후 우리가 출발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그 인간들은 원래 그래!"라는 분위기라 너무 편안했다. 이곳은 대회 시작전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우리들이 원하는 우리 방식의 레이스를 할 수 있는 흐름으로 변해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좀비 3인 방의 대회 진행에 대해서 주최측 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대회 운영에 지장을 미칠 정도로 후미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을 어찌해야 할지 토론을 펼쳤다는 것이다.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대다수 운영요원들의 절대적 지지로 우리가 완주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해주기로 결론이 났다. 현장 구조 요원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전담 관리를 책임지겠다고 할 정도로 우리의 도전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인지 코스에서 만나는 운영 요원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완주해달라고 말들을 했다. 우리의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자신들이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니 이젠 포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영하 40도, 모든게 얼어 버렸다.
 영하 40도, 모든게 얼어 버렸다.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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뱉고 또 뱉고 그리고 또 뱉고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출발하자마자 계속해서 구토가 나온다. 그나마 약간 먹었던 아침부터 시작해 한 바가지 마셨던 커피까지. 체내에 남아있는 온갖 것들로도 모자라 결국 위액까지 분출이 된다. 어젯밤부터 대략 50번 이상 구토를 했는데 이제는 지쳐서 더 이상 못 하겠다. 얼마나 뱉어 냈는지 뱃가죽이 등에 달라 붙는 느낌이 날 정도였다. 머리는 '빙빙' 돌아 어지럽지 배는 고프지, 될 때로 되라 하는 마음으로 뜨거운 물만 계속해서 들이켰다. 물론 5분을 못 가 죄다 뱉어냈지만 뱃속이 정화 되는 느낌은 받았다.

속이 안 좋아도 갈 길은 가야 한다. 오늘은 3명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씩씩하게 잘 가고 있다. 유카꼬의 경우 2002년부터 2006년까지는 내가 리드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확실히 나의 능력을 뛰어 넘는 무시무시한 여 전사로 변해있었다. 미호는 뭐 워낙 마라톤 고수라 굳이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상외로 고전을 하고 있다. 어쨌든 나는 두 명의 언니 덕분에 이곳 옐로우나이프 눈밭에서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체크포인트까지는 넓은 호수지역이라 눈을 동반한 강한 바람으로 인해 길을 가기 힘들었다. 제일 추운 날답게 주위의 모든 것이 얼어 버린 아침, 3명의 좀비들은 별다른 말없이 정면만 응시하고 꾸준하게 걸어간다. 이곳에 와서 우리는 달리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 하다. 프로선수는 아니더라도 오지 레이스 세계에서는 그래도 명색이 전문가 소리를 듣는데 사람이 이렇게 망가질 줄은 몰랐다.

미호, 유카꼬의 모습
 미호, 유카꼬의 모습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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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대회에서 내가 초창기 사막에서 만난 몇 수를 앞서가는 진짜 고수들을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프랑스의 제라드에게 물었다.
"제라드, 왜 요즘은 사막 레이스에서 얼굴 보기 힘들어요?"

제라드가 말한다.
"나는 이제 규모가 크고 상대적으로 쉬운 레이스보다 작으면서 특색 있는 좀더 어려운 대회를 찾아 다녀, 지난 몇 년간 세상의 구석구석 안 가 본 데가 없지…"
제라드와 장 시간의 대화 속에 또 다른 도전과 목표가 생긴다.

사람들은 나에게 모험을 즐기는 자유로운 인생이 부럽다고 말 한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비교할 수 없이 앞서가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내가 처음 사막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새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들을 알려줬다. 그들이 알려준 방법들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 스스로 나의 인생에 적용을 해보며 업그레이드를 시키고 있다. 우리들끼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에게 자극과 힘을 주는 에너지의 교류와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것이 오지 레이스를 사랑하고 인생을 즐겁게 살아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힘 아닐까?

영하 40도의 아침
 영하 40도의 아침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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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피자

이어지는 호수와 트레일 지역의 언덕을 내려가자 하얀 인디언 천막이 있는 두 번째 체크포인트가 나타난다. 약간의 온기가 남아있는 천막 안에 있으니 속 쓰림과 구토도 어느 정도 진정되고 여유가 생겼다. 오래간만에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는 제대로 된 휴식 시간이었다. 이제 우리들의 집, 메트릭스 빌리지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대회 3일째 캠프는 처음 출발했던 매트릭스 빌리지다. 오늘로 3일짜리 레이스인 케이 락 울트라(K-Rock Ultra)가 끝난다. 물론 우리는 앞으로 3일을 더 가야 하지만 메트릭스 빌리지에서 잠을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다.

직선의 호수 지역과 꽤 높고 복잡했던 트레일 코스를 벗어나니 시야가 확 트인 그레이트 슬레이브 레이크(Great Slave Lake)가 나타난다. 이제는 무조건 직선 방향으로 앞으로만 가면 캠프가 나타난다. 중간에 마지막 체크포인트가 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먹거리를 준비했다는 첩보까지 입수하니 힘이 절로 난다.

해는 이미 저물어 어두운 상태지만 멀리 옐로우나이프 시내와 가정집들의 불빛이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아무것도 없는 오지를 벗어나 다시금 인간 세상으로 들어 간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추운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캠프에서 유카꼬, 미호와 함께 달콤한 핫 초코 마시며 오손도손 수다 떨 생각을 하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물론 조건이 있다. 남들 자기 전에 골인해야 한다. 가능 할까?

유지성의 모습
 유지성의 모습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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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체크포인트에서 현지 자원봉사자 타미가 주최측에서 준비한 피자 외에 자신이 준비한 허브티 그리고 햄버거 등을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미는 하루만 달리는 콜드 풋 클래식(Cold Foot Classic) 부문 참가자였는데 대회 후 자원 봉사를 하고 있었다.

타미가 말하길, 매일매일 올라오는 대회 소식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아 자원 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만이 아니라 많이 사람들이 우리들의 악전고투 소식에 가슴 졸이며 놀라움과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따뜻한 나라에서 온 스노우 레이스 생 초보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모습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모습으로 보여진 것 같다. 모두 자기들 같았으면 몇 번이나 포기했다고 말한다. "사실 나도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지만 주최측에서 못하게 했다고요…"

타미의 음식이 엄청난 힘을 발휘한 것 같다. 마지막 6km는 처음으로 제대로 달렸다. 물론 오늘도 꼴찌였지만 모두가 잠들기 전이라 따뜻한 차 한잔과 약간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42km를 오는데 14시간 18분이 걸렸다니 역시나 기나긴 하루였다.

아름다운 오로라와 캠프 모습
 아름다운 오로라와 캠프 모습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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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4: 그레이트 슬레이브 레이크

어릴 적 많이 들었던 노래가 있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지만 나는 못 일어났다.

역시나 오늘도 남들 다 출발하고 한참 지난 후 느릿느릿 3명의 좀비가 출발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난리다. 우리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놓칠세라 촬영용 자리 싸움이 아주 치열하다. 어제와는 다르게 변화된 상황이 놀랍고 재미있다. 아무래도 리포트를 쓰는 해롤드가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잘 풀어 쓴 것 같다. 이제는 우리 3명의 좀비가 이번 대회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된 느낌이다.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 28도, 낮에는 영하 15도까지 따뜻해(?) 진다고 한다. 영하 40도를 견뎌보니 영하 28도가 얼마나 따뜻한지 알 수 있다. 첫날 출발 때 영하 25도의 날씨에 사람들이 환호를 보낸 이유를 알 것 같다. 낮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코 웃음이 나오며 괜한 여유와 오만함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까지 그레이트 슬레이브 레이크에서 만나게 될 진짜 바람을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 이틀간은 그레이트 슬레이브 레이크를 가로지르는 횡단 코스다. 호수가 얼마나 넓은지 우측의 숲 이외에는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뿐 이다. 그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북극의 강한 바람은 우리들이 그 동안 만난 그 어떤 바람보다 더욱 강력하고 메서웠다.

처음 출발은 좋았다. 코스도 29km로 짧고 어제 피자도 먹고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었기에 컨디션이 상승세였다. 지난 3일간 방전됐던 에너지를 다시 찾은 듯한 분위기에 발 걸음도 가벼워 가끔씩 사진을 찍는 여유를 부렸다. 이번 구간은 체크 포인트가 없기에 중간중간 우리끼리 간식도 먹고 '희희낙락' 즐거운 행진이었다.

유지성과 유카꼬의 세레모니
 유지성과 유카꼬의 세레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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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같은 모습의 세레모니 (사하라 사막)
 언제나 같은 모습의 세레모니 (사하라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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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40도보다 더 추운 영하 20도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대략 오후로 넘어가는 시점부터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는데 냉동창고가 따로 없었다. 난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영하 40도보다 영하 20도에서 바람 불 때가 더 춥다는 걸…

자켓과 바지로 보호되는 부위를 뺀 나머지 얼굴, 장갑, 신발 등에 준비해간 핫 팩을 집어 넣는다. 하지만 워낙 바람이 차갑기에 별 효과가 없다. 특히 모자를 쓰고 바라크라바, 고글로 가린 얼굴 부위는 어디로 바람이 들어오는지 안면에 감각이 없어 질 정도로 추위를 느낀다. 2중으로 된 고글도 얼어버려 앞이 안 보인다. 그렇다고 고글을 벗을 수도 없고, 고글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한다.

중간 임시 체크 포인트에 운영요원이 모닥불을 피워놨다. 미호가 추위에 떨며 몸을 녹인다. 입술이 파랗게 변해있어 보고 있는 내가 더욱 춥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도 옆에 앉아 얼어 버린 고글을 녹이며 괜찮냐고 물으니 무조건 괜찮다고 한다. 하기야 우리들 세계에선 무슨 문제가 생겨도 반사적으로 "OK!"란 단어가 튀어나온다.

미호는 좀더 있다 가기로 하고 나는 유카꼬의 뒤를 쫓아갔다. 그런데 유카꼬는 도대체 짐을 어떻게 챙겼기에 자꾸만 썰매가 옆으로 뒤집어진다. 내가 수시로 제자리를 찾게 만들지만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이 추위 속에 짐을 다시 정리할 수도 없고 방법이 없다 오늘은 그냥 그렇게 가야 한다.

Stage 4
 Stage 4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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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슬레이브 레이크의 얼음 두께는 수 미터 이상 된다고 한다. 마침 얼음 구간이 나타나 구경할 수 있었는데 대단했다. 그리고 얼음 지역은 마치 사막 같은 분위기다.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이 바람에 날려 사막의 스몰 듄(Small Dune)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눈 색깔도 태양과 바람의 영향인지 약간 회색 빛인데 마치 고비사막의 한 부분 같았다. 제한적인 고글의 시야로 인해 내가 지금 사막에 있는 건지 눈 밭에 있는 건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워낙 호수가 넓기에 약간의 트레일 지역은 섬으로 보인다. 마지막 트레일 코스에 들어서자 바람도 약해지고 어디선가 새 소리까지 들린다. 얼마 안가 코너를 돌자 오렌지 색의 텐트 촌이 눈 앞에 펼쳐진다. 시간을 보니 다섯 시 반이다. "야호!" 우리는 처음으로 해가 떠있는 대낮에 골인을 한 것이다.

운영요원들과 참가자들이 환한 얼굴로 맞이해 준다. 같은 텐트를 사용했지만 항상 밤에 만난 영국의 "잭"이 농담 한마디 날린다. "제씨(내 영어 이름), 밝은 데서 보니 난 네가 이렇게 잘 생긴 줄 몰랐어! 푸하하하."

만세, 도착했다~!
 만세,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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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출발해도 사진찍기에 바쁜 좀비 3인방
 남들 출발해도 사진찍기에 바쁜 좀비 3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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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모습, 바닥은 눈이다.
 텐트 모습, 바닥은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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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사막의 아들 유지성 / www.runxrun.com
사막, 트레일 레이스 및 오지 레이스 전문가. 칼럼니스트,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사막, 남극 레이스, 히말라야, 아마존 정글 마라톤, Rock and Ice 울트라 등의 한국 에이전트이며, 국내 유일의 어드벤처 레이스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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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월간 마운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옐로우나이프, #캐나다, #다이아몬드 울트라, #오로라,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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