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9년 5월 23일 새벽. 나는 대구를 벗어나 길을 떠돌고 있었다. 잿빛으로 일렁이는 동해와 깊은 산줄기가 공존하는 칠보산 자락에 나는 자리하였다. 물설고 낯선 고장 탓이었을까, 아니면 신산한 나날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온몸에 치미는 신열과 까닭 모를 불안으로 밤을 하얗게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다고 알려진 봉화산 부엉이 바위가 사저 뒤로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다고 알려진 봉화산 부엉이 바위가 사저 뒤로 보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창문에 희뿌연 여명이 비치고, 작은 산새가 새벽이 왔음을 알릴 무렵에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새벽녘이 아침으로 달려갔으되, 나는 기억나지 않는 꿈에 시달리면서 자꾸만 허우적댔다. 그 시각, 노무현은 생의 마지막 편지를 쓰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일부로 살다가 종당에 그 자연에 몸을 맡기려했던 '인간' 노무현. 그는 이제 우리 곁에 없다. 그 스스로 우리와 작별을 선택했다. 무엇인가. 그로 하여금 이토록 비자연적인 결론을 강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가 지닌 엄격한 도덕률인가, 세상의 손가락질인가, 아니면 '그들의' 조직적인 타살인가.

잃어버린 십년 타령에 '놓쳐버린' 노무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11일 오후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잃어버린 10년을 끝내고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고자 하는 모든 세력의 깊은 관심과 지지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11일 오후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잃어버린 10년을 끝내고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고자 하는 모든 세력의 깊은 관심과 지지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밀짚모자를 쓰고 덜커덩거리는 자전거를 탄 초로의 '인간' 노무현을 죽음의 시커먼 입 안으로 몰아넣은 실체가 무엇인가, 생각한다. 기득권을 누렸던 인간들과 평행선을 그으면서 팽팽한 전선을 구축했던 그가 귀향으로 환해진 얼굴을 일그러뜨려야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생각한다. '인간' 노무현이 도달하고 싶었던 '아스라한' 높이를, 다시 생각한다.

2007년 대선은 한여름 열대야처럼 끈끈하고, 초원의 청소부 하이에나처럼 악랄했다. 이미 승패가 나버린 전장의 두 장수는 승리의 헹가래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들이 오래도록 내세운 구호는 "잃어버린 십년"이었다. 대한민국 우파가 그토록 경원한다는 일본에서 터져 나왔던 '잃어버린 십년' 타령이었다. 아시아 유일 선진국 일본의 자성적인 구호 '잃어버린 십 년' 타령이었다.

남한의 '뉴라이트'와 그 추종자들은 빼앗긴 권력 되찾기 전략의 일환으로 '조-중-동' 삼형제를 동원하여 끈질기게 한국판 "잃어버린 십 년"을 노래하였다. 정말로 '그들이' 잃어버린 것이 정치 권력 말고  무엇이 더 있는가.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로 온 나라를 아수라판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 정권으로 그토록 회귀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2008년 여름 '광우병 파동'이 일파만파로 대한민국 사회를 휩쓸고, 촛불이 강산을 덮을 무렵, 그들은 기막힌 반전의 묘수를 짜낸다. "잃어버린 십년"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법치'와 '부정부패척결'의 깃발을 힘차게 치켜든 것이다. 아니, 법치와 부정부패척결이라니?! 이 땅의 시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따라서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깃발을 든 것이다, 그들은.

그것은 1980년 '광주학살'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노태우 일당이 대표하는 학살자 신군부가 내세웠던 '정의사회구현'과 얼마나 닮았는가! 그 때 대한민국의 정의로운 검찰과 검사 나리들은 무엇을 하고 계셨던가?! 학살자들을 응당 처벌하고 감옥에 처넣어야 할 검찰과 대통령에게 대거리해대던 그 잘난 검사들은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나는 그들을 '학살자'라 말해왔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동족 학살을 마다하지 않았던 인간 같지 않은 인간, 박정희-전두환-노태우들을 가리켜 나는 언제나 '학살자'라 말했다. 학살자들이 내준 한없이 부끄럽고 보잘 것 없는 권력 한쪽 붙들고 기생해왔던 하수인 집단이 사정의 칼날을 '인간' 노무현에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노무현의 대척점에 있었던 나

지난 2007년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2007년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아주 멀리서, 하지만 아주 견고하게 옥죄어 오는 쇠사슬과 예리한 칼날을 그는 결국 피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인간다운 인간이자 비주류 고졸 출신 대통령 노무현의 탄생을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이 노심초사 했는지, 이제 와 새삼 말하지 말자. 내가 그를 얼마나 믿고 마음 속 깊이 따랐는지, 다시 되뇌지 말자.

다만 한 가지. 언제부턴가 그런 '인간' 노무현과 담벼락을 쌓아가는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다시 얼마나 불편하고 아팠는지는 말해야겠다. 아주 조금만(그래서 나는 그가 없는 이 세상과, 그가 버린 이 세상이 너무도 속절없는 것이다).

2007년 6월 29일 세종로를 기습적으로 점거한 한미FTA 저지 범국민총궐기대회 참가자들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2007년 6월 29일 세종로를 기습적으로 점거한 한미FTA 저지 범국민총궐기대회 참가자들이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그가 대통령이었을 때 나는 다시 거리에 있었다. '이라크 파병', '평택 미군기지 이전확장', '한미자유무역협정', 그 모든 것의 와중에 나는 노무현의 대척점에 있었다. 그것은 내가 추구한 가치이자 그것의 상징처럼 환하게 빛났던 '인간' 노무현의 선택일 수 없었다. 하여 나는 30년 전에 그랬듯 다시 거리에 서 있었다.

그것이 이제 송곳처럼 비수처럼 내 심장을 아프게 찔러오고 있다. 내가 거리에 서서 '인간' 노무현과 대립하고 있던 그 시각. '그들은' 단단하게 결속하면서 대회전을 예비하고 있었다. 거리에 있던 나는 '그들의' 오랜 기획과 더러운 야망의 덫을 알지 못했다. "잃어버린 십 년"을 주문처럼 외치면서 그들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권력을 접수하였다.

그리곤 굳건하게 다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앞으로 진보에게, 비주류에게, 무지몽매한 대중에게, 무지하고 철없는 '고졸들'에게 다시는 나라를 맡기지는 않겠노라고. 그들의 선봉에 검찰이, 그들의 배후에 수구정당이, 든든한 이데올로기로 '뉴라이트'들이, 그리고 막강한 국가권력기관이 후방요원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김수영 시인이 일갈했듯,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선다!" 바람이 바람 같으면 풀은 그 바람을 기다리고 존중하면서 때를 기다릴 줄 안다. 그러나 광풍이거나 백해무익한 태풍일진대 풀은 바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풀이 바람을 기다리지 못하는 시각이 나는 두렵다. 바람이 바람답지 못한 21세기 대한민국이 나는 두렵다. 그래서다. '인간' 노무현의 급작스런 대오이탈과 허허로운 출행이 이토록 불안한 까닭은.

'인간' 노무현, 안녕

노무현 전 대통령이 5일 오후 봉하마을 만남의광장에서 방문객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5일 오후 봉하마을 만남의광장에서 방문객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 사람사는세상

관련사진보기


5월 23일 오후 천축산 비구도량 '불영사' 대웅전에서 '인간' 노무현의 명복을 빌면서 오래도록 묵상에 잠겼다. 천지간에 홀로 죽음과 맞섰던 끝까지 고독했을 그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온몸에 밀려드는 오한과 자꾸만 먹먹해지는 심장의 나직한 고동소리를 느끼며 소리죽여 흐느꼈다. 대구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베란다에는 오죽(烏竹)이며, 치자, 가시오가피가 해말간 낯빛으로 인사한다. 저토록 찬란하게 봄날의 도래를 노래하는 놈들이 또 있을까. 멀리서 장엄하게 솟구치는 산악의 거목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생의 약동을 환희 작약하는 어린것들의 아우성에 잠시 눈길을 준다. 하지만 지진에 무너진 담장처럼 무겁고 텅 비어버린 흉중을 견디기엔 너무도 턱없다.

부지불식간에 찾아드는 오열과 눈물을 나는 오늘도 감연히 견디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닥친 숙명이라 생각하고 꿋꿋하게 참으려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숙명을 잊지 않으리. 마지막 그날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빛나는 새아침을 기다리리. 역사의 완성은 그것을 망각하지 아니하고, 대를 물려가면서 기억하고 되살리는 데서 시작하는 법이므로.

하지만 이제 우리는 작별해야 한다. '인간' 노무현이 마침내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가 영면하기 바라면서 이제 그만 작별하려고 한다. 임이여, 편히 쉬소서! 그리고 기억하소서! 이 땅의 슬픔과 언젠가 찾아올 광명의 빛을!


태그:#대통령 서거, #노무현 서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터넷 상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아름답고 새로운 세상 만들기에 참여하고 싶어서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개인 블로그에 영화와 세상, 책과 문학, 일상과 관련한 글을 대략 3,000편 넘게 올려놓고 있으며, 앞으로도 글쓰기를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