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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6월항쟁 계승 및 민주회복 범국민대회'를 경찰이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집회를 불허한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청소년들이 시국선언을 하기 위해 광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6월항쟁 계승 및 민주회복 범국민대회'를 경찰이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집회를 불허한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청소년들이 시국선언을 하기 위해 광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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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범국민대회에 나와 시국선언을 하는 청소년들 손에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배운 대로 행동한다! 민주주의 지켜내자!"

그 플래카드를 보는 순간 교사인 내가 부끄러웠다. 학생은 배운 대로 하지 않아도, 교사는 가르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교육인데 아이들이 먼저 나선 것을 보고 차마 고개를 들 수 가 없었다. 이 시국이 아이들한테 미안하고 어른으로서 창피했다.

교사시국선언에 제일 관심있는 건 정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조합원들에게 시국선언이 준비되고 있다는 메일이 온 것은 지난 월요일(15일). 청소년 시국선언에 부끄러워했던 나였지만 막상 시국선언 메일을 받자 시국선언문에 적혀 있는 모든 내용에 내가 동의하고 있는가, 그리고 말 그대로 시국이 시국인데 여기에 참가한다면 내 안위에 어떤 영향이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수요일(17일)이 돼서야 전화를 걸어 이름을 올렸다.

그럼 다른 선생님들은 어땠을까. 일단 전교조 조합원이 아닌 교사들은 시국선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조합원 중에서도 메일을 확인하지 않고 듣지도 못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한국의 전체 교원수는 40만이 넘는다. 40만 중에 1만이면 100명 직원인 회사에서 약 2명 꼴. 100명 직원 중 2명이 어느 동호회에 가입한 것이 중요하지 않은 일인 것처럼,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주변 동료 교사들은 시국선언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17일 오후가 되어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시국선언 참여 교사에 대해 엄정 대처 방침을 밝히는 내용이 보도되고 공문이 내려오자 상황은 바로 달라졌다. 갑자기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인터넷 사이트들에는 '강경 징계'란 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국선언에 참석하는 교사들보다 정부가 더 시국선언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게는.

서명한다고 학습권 침해라니...

서울대학교 김인걸, 최갑수, 최영찬, 이준호 교수 등 124명 교수는 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신양인문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명의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진행된 국정 전반에 대해 깊은 우려를 밝히며,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김인걸, 최갑수, 최영찬, 이준호 교수 등 124명 교수는 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신양인문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명의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진행된 국정 전반에 대해 깊은 우려를 밝히며,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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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이 줄지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종교인 시국선언, 치과의사 시국선언, oo동 주민 시국선언, 작가 시국선언….

시국선언의 시작은 교사들과 똑같이 공무원 신분인 국립대인 서울대 교수들이었다. 교사 시국선언에 징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거야 원, 월급이야 차이가 나도 같은 공무원인데 이렇게 대우가 달라서야. 만만한 게 선생'이란 말인가.'

교사도 사람이고 국민인데 시국의 개탄스러움을 말할 수 없단 말인가. 심지어 교과부에서 시국선언에 서명하는 활동으로 인해 '학습권이 침해당한다'라며 징계운운하는 것을 보면서 황당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종이에 서명하는 것이 학습권 침해라면 학교 수업시간에 수없이 전달되는 공문과 회람들은 벌써 이전에 징역감이 돼야 맞다. 국정감사 기간이면 오전 10시에 팩스로 도착한 공문의 보고기한이 당일 오후 2시인 일이 다반사다. 당연히 그 시간은 수업시간이다. 결국 수업을 하지 말고 공문처리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이런 일상적인 학습권 침해는 시정하지 않고, 수업 외 시간에 서명 한 번 하는 게 학습권 침해란 말인가?

시국선언이 문제가 아니라 이 '시국'이 문제다

정부는 교사들이 시국선언을 한다고 "시국선언 및 서명운동은 교원노조의 정당한 활동범위와 국가공무원인 교원으로서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 공무원의 복무에 관한 질서를 훼손하고, 공무원이 준수해야 할 품위를 손상하는 집단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선언과 서명운동이 질서를 훼손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안 가지만, 지금 공무원이 준수해야 할 품위를 운운할 때인가. 교사든 누구든 시국선언을 한다고 입을 막고 징계를 하는 건 어쩌면 두 번째 문제다. 시국선언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국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이 '시국'이 문제다.

6월 교사시국선언은 공권력 남용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국정 쇄신, 언론·집회·양심의 자유 보장, 미디어법 강행 처리 및 한반도대운하(4대강 정비사업) 추진 중단, 사회적 약자 배려 정책 추진, 자립형사립고 등 경쟁 만능 학교정책 중단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할 말은 아직 더 많다.

① 미래형 교육과정

교육과정은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대한 내용으로 중요한 교육정책의 하나다. 그래서 교육과정은 원래 4년에 걸쳐 서서히 적용하여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개발도 5년 동안 이루어진다. 지금이 7차 교육과정이고, 수정된 교육과정이 내년에 초등 1, 2학년과 중학교 1학년에게 우선 도입될 예정이다. 그런데 6월 2일, 갑자기 '미래형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발표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까지도 모두 6교시 수업을 하도록 하는 등 교육 전체의 틀을 바꾸는 내용이었는데, 이 미래형 교육과정은 논의도 검토도 일체 거치지 않은채, 마치 깜짝파티처럼 갑자기 나타나 '비밀연구'라고 불리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새로 개발한 교육과정이 아직 도입되지도 않았는데 그걸 완전히 무시한 채 발표된 미래형교육과정, 이거 정말 문제다. (미래형 교육과정에 대한 반대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② 단위학교책임경영제

이번에 발표된 '학교단위 책임경영을 위한 학교자율화 추진방안' 중 인사분야 정책의 개요
▲ 교원인사분야 자율화 개요 이번에 발표된 '학교단위 책임경영을 위한 학교자율화 추진방안' 중 인사분야 정책의 개요
ⓒ 교육과학기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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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표된 '학교단위 책임경영을 위한 학교자율화 추진방안'에 따르면, 교장 인사권을 강화하여 '정원 20%에 달하는 교사 초빙권', '비정기 전보요청원', '기능직원 임용권'을 주겠다고 한다. 이건 마치 공립학교를 사립화하는 것과 같다. 그나마 사립학교는 재단이사회라는 조직이라도 있지, 이건 학교장 한 사람에게 입맛에 맞는 대로 교직원을 뽑을 수도, 자를 수도 있게 해주는 것이다. 더구나 반일 또는 격일제 근무형태로 강의료를 자율 책정하게 한다면 파트타임 교사들을 학교에 임용하겠다는 이야기인데 어떤 학부모가 파트타임 교사에게 자녀를 맡기고 싶겠는가? '단위학교 책임경영제'는 원래 영국 등에서 이루어지던 제도인데, 학교장에게 기업의 CEO처럼 학교를 경영하도록 하는 취지다. 그러나 학교교육이 지나치게 자본에 휘둘리는 등의 문제점들이 발생해 실패했다고 평가되는 제도다. 그런데 이런 제도를 갑자기 도입하겠다니, 정말 문제다.

오바마는 아는데 MB는 모르는 진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을 끝내려다가 갑자기 시계를 보며 예정에 없이 언급한 내용이 '오바마 시국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이란 사태에 대해 한마디한 내용인데, 한국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제가 재차 말씀드리고 싶고 또 어제도 말씀드렸던 건, 모든 평화적인 시위자들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걸 볼 때, 평화적인 반대표명이 억압받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어디에서 일어나건, 제가 우려하는 일이며, 미국 국민들이 우려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방식은 정부가 자국 국민들과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  더 큰 개방성과 더 큰 토론을 보기를 원하고 더 큰 민주주의를 보기를 원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  제가 강력히 지지하는 보편적인 원칙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며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작년과 올해, 일제고사 자율권을 준 교사들이 줄줄이 잘리거나, 징계가 예정돼 있다. 교대를 나온 나는 일반 회사에 들어가면 고졸자 대우를 받는다고 들었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서 일자리를 잃을까 싶어 공무원인 나는 아마도, 달달거리며 교과부의 징계논의를 매일 확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불안함보다도 가슴이 답답한 것은 오바마는 아는데 왜 MB는 모르냐는 것이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며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우리반 아이들도 아는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은 지금의 현실이 가슴 아프다.


태그:#시국선언, #전교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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