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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요즘의 최고 화두는 단연 '신종플루'. 이젠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 하지만, 아직도 엄연한 현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우리 국민들, 특히 학교들.

 

안성에 있는 조그만 시골초등학교인 개산초등학교(http://gaesan.es.kr/)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성 지역 신문에 "'신종플루' 때문에 어느 학교가 휴교하고, 학생 몇 명이 걸렸다"는 식의 보도가 연일 오르락내리락 했다. 굳이 신문을 들추지 않아도 그리 크지 않은 안성에선 입소문으로도 누가 아픈지를 대략 아는 처지였다.

 

개산 초등학교도 바야흐로 진퇴양난. 좀 다른 게 있다면, '신종플루' 때문에 학교를 휴교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는 것. '신종플루' 때문에 해마다 치러온 '은행나무 축제(학예발표회)'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것. 교직원도 학생도 부모도 모두 고심거리였다.

 

 

"상급기관에서 휴교를 고려하는 등의 '신종플루' 대책에 힘쓰라는 이야기를 들었죠. 무엇보다 아이들의 건강과 가정의 건강이 직결된 것이라 고민이 되었죠. 교직원 간에도 설왕설래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6학년 졸업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결정을 내렸죠.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이 학교 이덕재 교장의 축제 개회사다.

 

그렇다면, '신종플루' 때문에 축제를 못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6학년 아이들이 대체 무슨 말을 했을까.

 

"안돼요. 교장 선생님. 우리가 해마다 해오는 전통이고, 또한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 추억인데 포기할 수 없어요"라고.

 

그렇게 해서 결국 축제는 하기로 결정이 났고, 축제를 한다는 안내문이 각 가정에 배달되었다. 안내문을 받은 학부형들의 반응은 가지각색. 그 중에서 부정적인 반응이라면 단연 "축제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아이들 건강을 담보로 강행하느냐. '신종플루'에 감염되면 책임지느냐"는 것. 각오했던 것이긴 하지만, 따끔하고 뜨끔했다.

 

 

반면 아이들은, 특히 6학년 아이들은 신나게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초등학교 시절, 무엇보다 청소년이 아닌 아동으로서의 마지막 추억을 상상하면서.

 

드디어 10월 30일 D-day. 학부형들이 과연 몇 명이나 올까. '신종플루'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은 생기지 않을까. 이런 우려는 우려였을 뿐. 학부형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물론 입구부터 철저한 '신종플루' 확산 방지 행위가 이루어졌다. 입장하는 가족들 모두를 일일이 열을 체크하고, 소독기로 손을 씻은 후에야 입장하게 했다.

 

'신종플루'를 의식했는지 이덕재 교장의 개회사도 길어진다. 발표회 마지막 순서인 콩트도 '신종플루' 오진으로 인해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었다. 콩트 마지막 부분에선 "잘 입고,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면 거뜬히 '신종플루'도 이길 수 있어요"라는 대사가 흘러나왔다. 이 축제가 '신종플루'에게 주는 메시지인 듯이.

 

 

80여 명 되는 전교생과 십수 명 되는 병설유치원생들은 유감없이 자신들의 끼를 발산했다. 마치 "아무리 '신종플루'라도 우리의 끼를 막을 순 없다"는 듯. 평소 방과 후 교실 등에서 배운 바이올린, 가야금, 영어 등의 실력도 한껏 뽐냈다. 6학년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아쉬운 듯 순서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다. 이런 노력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교장과 교직원 일동이 순서에도 없는 '노래 부르기'를 하기도 했다. 학부형 엄마들의 '댄스 걸 그룹'들의 댄스는 아이들에게 크나큰 웃음과 힘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학교 마당 입구에 아이들의 작품과 편지 등이 여기 저기 걸려 있다. 만들기 작품, 그리기 작품, 시화, 편지쓰기 등. 아이들의 다재다능한 끼들이 작품에서도 발산되었다. 학부형들은 들어오면서부터 벌써 자신들의 자녀 때문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혹 '신종플루'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지라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혹 생길 일 때문에 받을 문책보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다는 따가운 눈총보다도, 학생들의 건강을 담보로 무리한 모험을 하는 것 아니냐는 예리한 비판보다도, 어쨌든 아이들의 추억과 의견을 존중하여 축제를 열어준 교장과 교직원들이 대단하다. 그 문제로 아이들에게 진지하게 의견을 물었다는 교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당인 축제를 위해 노래와 춤을 함께해준 어른들의 넉넉함이 학교 마당에 노랗게 물들어 있는 은행나무 같아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덧붙이는 글 | 은행나무 축제는 안성 개산초등학교 교정과 강당 등에서 작품전시 및 예능 발표로 이루어졌다. 


태그:#신종플루, #개산초등학교, #은행나무 축제, #학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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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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